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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대훈, 음악을 바라온 시간만 31년 "그래도 너무 보고싶어"



24일 서울경제 본사에서 가수 김대훈씨가 인터뷰를 마친 뒤 활짝 미소짓고 있다. /사진=이호재기자






“내 가슴이 다 헤어진대도 아프니까 사랑입니다. 나를 달래며 참아볼 겁니다. 기다릴 겁니다. 그래도 너무 보고 싶어”

한 장의 앨범을 내기 위해 9년의 시간을 보냈다. 생선 나르기, 샤시, 꽃 배달, 방수 아르바이트, 문화센터 공연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2001년부터 차곡차곡 한 곡씩 쌓아올렸다. 첫 앨범을 냈던 2010년 1월 1일 새벽, 고향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노래를 가슴에 품고 일생을 살아온 남자, KBS 2TV ‘그래도 푸르른 날에’의 OST ‘그래도 너무 보고 싶어’ 목소리의 주인공, 가수 김대훈을 만났다.

처음 가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던 건 20년 전인 초등학교 4학년. 계기는 특별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신승훈을 굉장히 좋아해서 무작정 따라 했어요. 성당에서 형들과 노래를 부르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가수를 꿈꿨던 건 아니었어요. 그러다 김광석이란 가수를 알게 됐는데 노래를 접하다 보니 하모니카를 잘 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기타 등등 악기를 하나씩 배우며 가수, 그것도 작곡까지 겸하는 싱어송라이터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첫 앨범을 내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해병대 출신의 엄한 아버지 성격상 가수는 꿈도 꾸기 어려웠고 결국 재능을 키우기 위한 준비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김대훈씨의 몫이었다. 2001년부터 한 곡 한 곡 씩 작곡하기 시작해 2010년 초 그렇게 원하던 첫 앨범을 냈다. 기쁨도 잠시. 통장 잔고가 0원으로 바닥이 났다. “새벽 4시에 나가서 6시까지 했던 생선장수가 제일 힘들었어요. 전주 남부시장이 6시에 생선을 내다 파는데 그 전에 생선을 오토바이로 나눠주고 거래처에 박스로 갖다 주는 일이었어요. 일을 잘해서 사장님이 2만원 더 줄 테니 같이 하자고도 했지만 오래 하진 않았어요. 옥상 방수 아르바이트도 했어요. 옛날 집들에 비가 많이 새서 페인트 코팅을 해 옥상에 비가 안 새도록 하는 건데 목소리에 무리가 갈 것 같아 그만뒀습니다. 그것 말고도 경제적인 어려움이 올 때마다 벼룩시장을 찾았어요. 2004년도엔 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150개 넘는 꽃도 공부하고, 문화센터에서 1주일에 15번 이상 강의도 하면서 계속 돈을 모았죠.”



노래가 아닌 다른 일을 할수록 곡에 대한 간절함은 더욱 커졌다. 첫 앨범이 나오던 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 “그때가 2009년 12월 말 밤 8시 9시였어요. 서울에서 작업을 마치고 고향인 전주로 내려가니 새벽 2시였어요. 해가 바뀌어 새벽이 되었을 때 차 안에서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지난 날의 힘들었던 시간이 생각나기도 했고 과연 이 곡이 어떤 반응이 있을지도 궁금했습니다. 소주 몇 잔 먹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날 제일 많이 울었죠.”





진심과 노력이 통했던 걸까. 첫 앨범을 계기로 전주 지역에서 그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KBS와 MBC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2년씩 진행하기도 했다. “행사를 다니고 강의를 많이 하다 보니 말을 잘하게 됐고, 전주지역 공중파 방송에서 2년간 교통방송 라이브 코너도 진행하게 됐어요. ‘6시 내 고향’에서 리포터도 하고, 인간극장도 3번 나갔죠. 사연이 많아서인가 인물을 다루는 코너에는 절 먼저 불러주더라고요.”

꿈을 향한 전진은 계속 이어졌다. 2015년에 발매된 3번째 앨범 삽입곡 ‘그래도 너무 보고 싶어’가 KBS 2TV 드라마 OST에 삽입돼 OST 가수란 타이틀도 생애 처음으로 얻어냈다. 이 일이 가수로서 처음 얼굴을 알린 시발점이 됐다. 첫 방송부터 시청자 게시판에 음원 요청이 빗발쳤고 노래가 삽입된 방영 분은 자체 최고의 사청률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드라마가 삽입되는 날 벨소리와 음원차트의 일종인 링벨 순위가 1위에 랭킹되는 등 상당한 파급력을 보여줬다. “노래가 나온 즉시 시청률이 1등으로 올라가고 실시간 검색어, 네이버, 멜론, 다음 모두 1위로 올라왔어요. 시청자 게시판이 뜨거워졌는데 모두 음악과 글이 너무 잘 맞았다고 하더라고요. 드라마가 총 80부작이었는데 런칭된 11곡 중 5번째인 이 곡으로 드라마를 엔딩까지 끌고 갔어요. 너무 감사한 일이죠.”

2015년 3월 2일부터 2015년 8월 28일까지 평일 오전 9시에 KBS 2TV로 방송됐던 TV소설 ‘그래도 푸르른 날에’ 스틸컷.


처음 꿈을 꾸고 노래로 대중에게 알려지기까지 20년. 노래를 불렀던 시간보다 무대를 가슴에 품었던 시간이 더 길었는데 힘든 시간은 없었을까. “한 곡을 녹음하기 위해 매번 전주에서 서울로 올라왔고, 8곡을 녹음하기 위해 8개월이 걸렸어요. 1곡을 녹음하면 1달 뒤에 들어볼 수 있어 한 곡 한 곡 만들어내기 힘은 들었지만 그동안 꿈을 키워온 시간에 비하면 힘든 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한 계단씩 잘 해나가면 결국 될거란 믿음도 있었고요. 그것보다 노래방 기계에 음원을 넣기까지가 조금 힘들었습니다. 노래방 기계는 어지간히 유명한 사람 아니고는 무조건 못 들어갑니다. 노래방 기준이 방송출연은 몇 회 이상, 라디오 몇 회 이상 등 기준이 있는데 그 방송도 공영이 아닌 이상 인정되기도 어렵구요. 그래서 무명 가수들에게 노래방 선정은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저도 그렇게 방송을 해도 안되다가 두 번째 앨범 ‘목숨 건 남자’때 노래방에 처음 들어갔어요. 정말 또 한번 펑펑 울었습니다.”

그의 나이 서른 여덟 살. 아이돌로 뜰 나이는 훨씬 지난 나이다. 하지만 언젠가 뜰 거란 기대엔 변함이 없다. “포기는 바로 앞에 와서 포기한다고 하잖아요. 내일 될 건데 오늘 포기하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포기를 못하는 것 같아요. 이왕 시작한 것 언젠가 좋은 일이 있을 것이고, 다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음악은 발라드에요. 개인적으로 임재범을 제일 좋아합니다. 귀해서 쉽게 살 수 없는 보석 같아요. 저도 임재범 같은 가수가 됐으면 좋겠고 나이가 많이 들어도 관리를 참 잘해서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꿈의 주파수가 세상에 빨리 닿지 않아 가끔 위태로워도 시종일관 유쾌하게 한 길을 걸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려온 가수 김대훈씨. 말 한마디, 가사 한 줄 속에 진심이 스며있는 그의 불꽃 같은 인생에서 노래를 진정 사랑하는 한 사람의 진한 향기를 맡았다.

/정수현기자 valu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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