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가 개원했다. 3당 체제의 여소야대 국회에 대한 국민의 바람은 제발 싸우지 말고 생산적인 정치를 하라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협치(協治)를 하라는 것이다. 토론하고 설득해 합의를 만들어내는 정치를 하라는 요구다. 국회의원들이 특권을 내려놓고 일반 서민들 속으로 다가오라는 목소리도 강하다. 때마침 언론에서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이 보여주는 정치와 정치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많이 얘기하고 있다. 왜 우리나라는 그런 수준 높은 민주주의를 하지 못할까. 정치인들의 자질 탓을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교육 수준이나 사회경제적 지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금껏 사람을 바꾸고 또 바꿔봐도 결과는 항상 실망이었다. 문제의 원인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고질적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제도 때문이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정치 제도들을 뒤죽박죽 섞어놓았기 때문이다. 학술적 용어를 빌리자면 정치 제도들 사이에 제도적 상보성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48년 헌법을 제정할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한민당의 대립으로 제헌의회는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혼합한 어중간한 권력구조를 만들었다. 아홉 번째 개헌으로 만들어진 지금의 소위 ‘87년 체제’도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선거 때마다 바뀌다시피 한 선거와 정당 관련 법률도 우리가 어떤 민주주의를 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국민적 합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기보다 당시 권력자들의 편의와 이익에 따라 고쳐졌다. 그러다 보니 선진국의 좋다는 제도를 많이 수입하기도 했지만 방향성과 일관성이 결여돼 있었다. 그 결과 상보성이 결여된 정치 제도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한국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이제 우리의 정치 제도들이 서로 잘 어울리면서 일관성을 가지도록 고쳐야 한다. 민주정치는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다. 여기서 국민이 누구인가. 다수(과반수)의 사람인가 아니면 거의 모든 사람인가.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는 다수제 원리를 따르고 있다. 누구든 한 표라도 많이 득표한 사람이 당선된다. 소위 민주주의의 다수제 모델이다. 그런데 선출은 이렇게 해놓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서로 협력해 국민 전체를 위한 생산적인 정치를 하라고 한다. 소위 합의제 모델의 원리에 따라 정치를 하라는 주문이다. 그렇게 될 리가 없다. 다수제 모델은 다수파에 권력을 주고 책임을 지게 하는 정치 유형이다. 그런데 우리는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도 원내교섭단체들이 나눠 갖고 국회선진화법이라고 해 60% 이상의 찬성을 받지 못하면 법안을 상정조차 못 하게 만들어놓았다.
20대 국회는 한국 민주주의에 관한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 대통령제 정부 형태를 유지하려면 다음 세 가지는 반드시 해야 한다. 첫째, 상향식 공천제를 법제화하고 당론 투표를 없애야 한다. 이 논리에 따라 비례대표 국회의원도 없애야 한다. 둘째, 대통령의 법안 제출권을 없애고 의원과 장관의 겸직도 금해야 한다. 셋째, 국회선진화법을 없애고 다수결 원리에 따라 국회가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한국의 대통령제 민주주의가 원리에 맞게 돌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할 수 없으면 대통령제를 포기하고 내각제 또는 이원정부제(준대통령제)로 개헌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부러워하는 북유럽 나라들의 합의제 민주주의 모델을 추구하려면 ‘대선거구-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갖가지 이념정당들이 우후죽순처럼 돋아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정당 내부의 파벌 싸움이나 정당들 사이의 이합집산이 정치적 불안정을 야기하겠지만 정당 체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며 수용해야 한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아름다운 민주주의를 추구해가는 과정에 치러야 하는 대가다. 다만 지금까지 대통령제를 하다가 내각제로 전환해 성공한 나라는 없다. 우리도 제2공화국 실패 경험이 있다.
정진영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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