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길 메인 거리 1층 점포 중에 보이는 공실은 10여개 정도지만 임대계약 만료 전에 나가려는 곳까지 포함하면 그 두 배가 넘습니다. 올해가 정말 걱정이죠. 이런 속도로 공실이 쏟아지면 이 거리가 슬럼화될지도 모릅니다.” (신사동 D공인중개소 대표)
지난 주말 찾은 서울 강남의 대표적인 상권인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만난 중개업소 대표는 수심이 가득했다. 일대 상권이 빠르게 식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가로수길과 청담동 명품거리는 ‘임대’를 내붙인 빈 점포가 눈에 띄게 늘었다. 반면 쇠락한 후 재기를 노리는 강남 상권도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초토화 되다시피 했던 압구정 로데오 거리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착한 임대료’ 사업으로 일부 거리를 중심으로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신사동 가로수길·청담동 명품거리
온라인 구매 늘며 발길 뜸한데
건물주는 고수익 월세 고집
메인도로 양쪽 ‘임대’ 수두룩
지난 14일 찾은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는 메인 도로 주변으로만 10여개의 점포가 비어있었다. 임대료 부담을 이기지 못한 상점주인들이 가게를 비우고 하나둘 떠났기 때문이다.
일대 부동산중개업소에 따르면 메인 가로수길 임대료는 전용면적 3.3㎡당 월세가 100만~150만원 수준이고 뒤쪽 세로수길은 3.3㎡당 월세 50만~60만원선이다. 10여 년 간 꾸준히 오르다가 최근에야 정체된 상태다. 신사동의 정재훈 명가부동산 이사는 “가로수길 메인 거리 상점은 80% 이상 적자일 것”이라며 “플래그쉽스토어인 대기업 직영점도 5곳이나 발을 빼려고 한다”고 전했다.
문제는 공실이 늘어나고 대기업 임차인까지 떠나는데도 임대료를 조정할 건물주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가로수길을 20여년 지키고 있는 D중개사무소 대표는 “외국계 부동산 컨설팅 회사와 은행 PB 부동산 팀이 시세 거품을 주도한다”면서 “펀드에서 투자한 건물은 시장가격은 무시한 채 7%대 수익 보장을 위해 역산한 월세만 고집한다”고 지적했다.
강남구 청담동 명품거리도 청담사거리 쪽에서 갤러리아백화점에 가까울수록 ‘FOR LEASE’란 문구가 늘었다. 매장에서는 구경만 하고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쇼루밍’ 때문에 현재 임대료 수준으로는 들어올 만한 명품 브랜드가 없는 게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청담동 G공인중개소 대표는 “3년 전만 해도 231㎡ 기준으로 월세가 3,000만~4,000만원 수준이었는데 요즘 7,000만~8,000만원으로 올랐다. 하나둘씩 시작해 지금은 공실만 10개고 건물 통째로 빈 곳도 있다”고 말했다.
●압구정로데오
건물주·임차인·주민 힘합쳐
작년부터 ‘착한 임대료’ 사업
특색있는 ‘핫플레이스’ 형성
한편 오랜 기간 침체 됐던 압구정 로데오는 올해 들어 일부 거리를 중심으로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이른바 ‘뒷구정’으로 불리는 도산공원 주변 골목 상권이 그곳이다. 이곳은 지난해 초 건물주, 임차인, 지역주민 등으로 구성된 압구정로데오 상권 활성화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가 출범해 ‘착한 임대료 사업’을 시작하며 임대료를 낮췄다. 인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압구정 로데오 메인 거리는 권리금 없이 월세가 3.3㎡당 35만~45만원 선으로 낮아졌고 도산공원 쪽도 메인 도로는 3.3㎡당 30만~40만원대 중반으로, 골목은 3.3㎡에 15만~20만원, 비싼 곳도 30만원선으로 떨어졌다.
송성원 사단법인 압구정 로데오 이사장은 “임대료를 많게는 과거 최대치의 절반 수준으로 내리자고 합의했다”며 “상권활성화를 위해 압구정 전체가 노력하고 있고 한번 어려움을 겪었으니까 앞으로 다시는 무작정 임대료를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권리금에 낮아진 임대료, 그리고 특색있는 맛집을 따라 ’핫플레이스‘가 형성되고 있다. 1년 반여 전부터 도산공원 근처 골목에 들어와 아우어베이커리, 아우어 다이닝에 이어 지난달 도산분식을 오픈한 CNP푸드의 신동민 실장은 “임대료에 맞춰 골목에서 시작해 여러 브랜드로 시너지를 내고 있다”며 “맛집들로 상권이 살아나고 있으니 임대료만 오르지 않으면 이제 들어오는 후발주자는 더 메리트가 있을 것”이라 말했다. 4일 전 문을 열었다는 타코, 샐러드 가게 대표는 “66㎡를 권리금 없이 월세 250만원 정도로 싸게 들어왔다”며 “알아보니 세로수길은 33㎡짜리 점포가 공실인데도 권리금 5,000만원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박대원 상가정보연구소 소장은 “상권이 서울 전역에 분산되다 보니까 골목상권에 대한 집중도가 과거와 다르다”며 “건물주와 지자체가 함께 합리적인 수준의 임대료가 어느 수준인지, 또 해당 지역의 상권을 살릴 수 있는 특화된 콘텐츠가 무엇인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재명기자 now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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