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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에 쪼그라든 조폭...'치졸한' 범죄 활개

과거 보호비 명목 자금줄 꽉막히자

조직유지 어렵고 대형범죄 힘들어

중고차 업체 등 하청 일감에 기대

서민 상대 협박·갈취 사례 증가세

문신 드러내며 호텔비 떼먹기도

“내가 칠성파야. 감옥에도 13년이나 있었어.”

지난달 부산의 한 호텔에서 직원이 호텔비를 청구하자 칠성파 행동대원인 A(40)씨는 문신을 드러내며 으름장을 놓았다. 지난 5월14일부터 8월1일까지 장기투숙했던 A씨의 미납요금은 850만여원. 한때 전국구 조폭으로 이름 날리던 칠성파 조직원이 호텔비 낼 돈이 없어 직원을 상대로 협박에 나선 것이다. 결국 A씨는 호텔비를 떼먹은 혐의(갈취)로 구속됐다.

9일 경찰 등에 따르면 국내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지면서 전통적인 불법 도박장이나 유흥업소 등으로 상대로 한 ‘규모’의 조직폭력배보다는 서민 대상 갈취나 특정 사업체의 ‘하청업자’로 활동하는 조직원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 등장하는 1990년대 이전 조폭들이 수백명의 조직원을 거느리고 불법 도박장이나 유흥업소 등을 기반으로 세를 과시하고 정치권과 연계되는 등의 일은 갈수록 ‘옛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조직폭력배는 2,694명으로 2년 새 16.4%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구속 인원도 518명에서 451명으로 감소했다. 윤우석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장기간 불황과 달라진 사회상으로 유흥업소 등 이권을 두고 폭력행위를 벌이는 대규모 조폭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일부 명맥을 잇는 조폭도 있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규모가 작아지고 범죄 양상도 생계형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조폭이 중고차·견인차 등 사업체 밑으로 들어가 껄끄러운 일을 처리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각종 도박·밀수 등 지하경제를 주도하던 조폭이 ‘하청업체’로 전락한 것이다. 지난달 22일에는 기업형 중고차 조직에 사채를 제공한 조직폭력배 일당이 인천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검거됐다. 이들은 중고차 업체의 허위 매물에 속아 “자금이 부족하다”며 구입을 거부하는 피해자에게 사채를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폭이 사업체가 주는 일감에 기댄 셈이다. 앞서 올 5월에는 렌터카·견인업체 등을 도와 폭행 등 위력을 행사한 조폭 일당이 수원서부경찰서에 붙잡혔다. 견인업체 대표에게 영입된 이들은 교통사고 현장에 몰려가 먼저 온 타 견인업체 기사를 쫓아내 일감을 빼앗았다. 이들은 한겨울인 2월임에도 문신을 드러내기 위해 반소매와 반바지를 입고 현장에 나타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생계형 조폭 범죄의 이면에는 ‘돈줄’인 보호비가 사라지고 깊어진 불황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과거 조폭들은 불법·유흥업소를 보호해준다는 명목으로 정기적 상납인 보호비를 받았는데 최근에는 ‘조폭이 상납받는다’는 신고만 들어와도 경찰 당국이 수사에 나선다”며 “안정적인 먹거리가 사라지다 보니 과거처럼 조폭이 규모를 유지하기도, 대형 범죄를 저지르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더군다나 계속된 불황과 달라진 사회 분위기로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보호비조차 사라져 조폭의 자금줄이 막힌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경찰은 조폭 범죄가 생계화되는 등 다소 수위가 낮아졌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주만 경찰청 마약조직범죄계장은 “올해도 전국 단위로 조직폭력 특별단속을 벌이는 등 전통적인 조직범죄는 물론 온라인 도박 등 지능형 조직범죄 단속에도 수사력을 집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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