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석 국회의장이 지난 17일 제헌절 기념사를 통해 “코로나 위기를 한고비 넘기는 대로 개헌 논의를 본격화하자”고 개헌론을 꺼내들었다. 박 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행사에서 “전환의 파도 앞에서 우리 국민을 지키고 미래를 열기 위해 우리 헌법의 개정이 불가피한 때다. 우리 사회는 오래 전부터 개헌의 필요성을 절감해 왔습니다. 국회 차원에서도 이미 수많은 개헌 논의가 있었다”며 이 같이 개헌론을 제안했다.
박 의장은 “이제 시대변화에 발맞춰 헌법을 개정할 때가 되었다”면서 “앞으로 있을 정치일정을 고려하면 내년까지가 개헌의 적기다. 미래를 직시하며 대전환의 파도를 헤쳐 나갈 사회적 합의를 이루자”고 강조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지난 17일 개헌론에 불을 지폈다. 정 총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돌이켜보면 지난 2016년 겨울 ‘촛불문화제’는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 국민의 간절함과 목마름을 확인했던 시간이었다”며 “매서운 추위를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광장에서 함께 외쳤던 헌법 제1조에서 시작됐다”고 글을 시작했다. 이어 “코로나19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이때 지난 4년 동안 우리 국민의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던 ‘헌법’을 다시금 꺼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촛불로 이룩한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키고, 변화된 시대 흐름에 맞게 경제·사회·문화·노동·환경 등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헌법 정신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시작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박병석 국회의장의 개헌론보다 정세균 국무총리의 개헌론 논의 제안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병석 국회의장의 경우 의장직 선출 전 이미 민주당에서 탈당한 만큼 민주당의 색깔을 지운데다 박 의장이 주변 지인에게 “의장 취임 후 여야의 중간자적 중립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한 만큼 박 의장의 개헌 논의 제안이 정치적 색채가 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범여권 의석 190석…지금이 골든타임
표면적으로 보면 민주당이 개헌 논의에 불을 지피는 것은 지금이 개헌을 위한 ‘골든타임’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우선 개헌에 필요한 의사정족수가 200명 의원의 찬성으로 이루어지고 가운데 민주당은 176석, 정의당 6석, 기본소득당 1석, 열린민주당 3석, 시대전환 1석, 민주당 출신 무소속 1석 등을 합하면 188석에 달한다. 여기에 미래통합당내 10여명의 의원의 찬성표만 끌어올 수 있다면 개헌 논의가 순항을 거듭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2022년 만료되는 만큼 2022년 대선에 앞서 개헌을 마무리 지어야 다음 대통령부터 바뀐 통치구조를 적용받는 대통령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 임기 초기에 개헌 논의가 이뤄지면 신임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해 취임과 동시에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며 “따라서 대통령의 임기가 중반 이후로 돌아섰을 때 개헌을 논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당내에서도 개헌 논의에 찬성하는 의견이 상당하다. 다만 개헌의 방향성은 다양하다. 송영길 의원은 개헌을 통해 대통령 단임제를 중임제로 바꾸고 책임 총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의원 내각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의원 내각제는 다수당 또는 연합한 정당이 총리를 선출하고 내각을 구성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통합당은 지난 총선에서 개헌 저지선(101석)을 확보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한 상황에서 개헌에 반대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여당이 176석의 의석수를 앞세워 국회의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의 개헌 논의는 자칫 여당의 장기집권의 발판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부동산 급등에 박원순 사태 모면을 위한 국면전환 카드 비판도
그러나 정치권에서 개런론에 불을 지핀 것은 부동산 급등 사태와 박원순 전 시장 사태로 지지율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민주당의 국면 전환용 카드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현 정부가 대북 및 부동산 정책에서 이뤄놓은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통치 구조의 변화를 가져올 개헌론은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카드라는 비판이다.
실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4·15총선 이후 닷세만인 4월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개헌이나 검찰총장 거취 같은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현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국난과 경제위기, 일자리 비상사태”라고 개헌론에 함구령을 내렸다. 이 대표의 이 같은 발언 이후 불과 세달 만에 개헌론이 부상하고 코로나19 사태와 경제위기, 일자리 비상사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개헌론은 국면전환용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국면전환용이라는 비판은 박근혜 전 대통령도 시도한 바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10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시정연설을 통해 “대한민국을 새롭게 도약시킬 2017년 체제를 구상하고 만들어야 할 때”라면서 “오늘부터 개헌을 주장하는 국민과 국회의 요구를 국정과제로 받아들이고 개헌 실무를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끝으로 “임기 내에 헌법 개정을 완수하기 위해 개헌을 위한 조직을 설치해 국민의 여망을 담은 개헌안을 마련하겠다”면서 “국회에서도 헌법 개정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개헌의 범위와 내용을 논의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김성주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은 한달 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직권남용 관련 공판에서 공개된 진술조서에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서 개헌 논의를 하자는 얘기가 나왔고, 그게 국면전환용이라는 얘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 “개헌 발표 이후 모든 언론이 그걸 쫓아가는 상황이어서 다들 ‘신의 한 수 였다‘고 했다”고 털어놓았다.
/김상용기자 kim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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