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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외환위기 가능성에 한·터키 FTA 파기 '위협'

年40억弗 ‘對韓무역적자’에 불만

인도도 “年100억弗 적자” 문제제기

터키가 연간 40억달러를 웃도는 대한(對韓) 무역수지 적자를 이유로 한·터키 자유무역협정(FTA) 파기를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수출의 최후 보루인 FTA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경기부양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보유외환이 넉넉지 않은 개발도상국들이 달러 유출을 막기 위해 FTA까지 철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1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터키는 최근 통상당국 협상에서 한·터키 FTA의 전면 재검토를 요청했다. FTA가 한국 측에 유리하게 설계돼 협상 발효 이후 매년 40억달러 이상의 외환이 한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초에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FTA를 파기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겠다며 통상당국을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단순히 투자를 더 유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몽니를 부리는 수준이 아닌 것 같다”며 “터키의 외환보유액이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상황이라 협상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FTA 파기까지) 진지하게 검토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터키가 협정 파기를 거론하며 이례적으로 압박 수위를 높이는 것은 최근 터키의 경제 상황이 급격히 악화하는 데 따른 것이다. 리라화 가치는 올 들어 달러 대비 20% 이상 떨어졌다. 중앙은행이 리라를 사들이며 방어에 나섰으나 외환보유액만 축냈을 뿐이다.





터키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은 9월 453억달러로 지난 1월(780억달러)보다 42% 급감했다. 설상가상 주요 외화수입원인 관광업마저 코로나19로 막혔다.

한국과 FTA 격인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을 맺고 있는 인도 역시 협정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협정이 불공정한 탓에 한국이 매년 100억달러 수준의 무역흑자를 보고 있다는 게 골자다.

통상당국은 터키와 인도의 행보를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터키나 인도가 최근 양자협정을 문제 삼고 있기는 하나 공식적으로 파기 요구까지는 하지 않고 있다”며 “자국에 투자를 좀 더 해달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내부 분위기는 심각하다. 정부 관계자는 “터키 측에서 무역적자를 이유로 FTA를 깨려는 시도가 있었다”며 “국가부도 얘기가 나올 정도로 현지 사정이 좋지 않은 탓인 듯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다른 관계자도 “터키만큼은 아니지만 인도도 양자협정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며 “한국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중국 다음 가는 수준이라 코로나발 보호무역의 타깃이 된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들 국가가 양자협정을 두고 이 정도로 압박 수위를 높인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수치에서 드러나듯 FTA로 양국이 모두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터키 FTA 발효 후(2013∼2017년) 대(對)터키 수입은 발효 전(2008∼2012년)보다 연평균 1억7,400만달러 증가했다. 터키와 인도 등은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를 문제 삼고 있으나 이 역시 국내 기업의 진출로 현지 투자와 중간재 수출이 늘어난 점을 고려하면 지나친 문제 제기라고 당국은 보고 있다. 실제 한국의 터키 직접투자는 한·터키 FTA 발효 전 연 1억3,000만달러에서 발효 후 연 2억7,000만달러로 두 배 넘게 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TA 파기까지 거론하며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강도 높은 압박이 이어지는 것은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기 악화 속도가 가팔라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터키 당국은 리라화 가치 급락세를 막기 위해 환율방어정책을 펼쳤으나 되레 외환보유액은 대폭 줄었고 여기에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관광업이 마비되면서 외화 리스크가 커졌다.

인도 타밀나두주 첸나이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인도 근로자들이 자동차를 조립하고 있다./서울경제DB


중간재 무역 등을 위해 해외자본을 조달해 외화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터키 기업들은 가동불능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만큼 한국을 포함한 무역수지 흑자 국가에 무역장벽을 쌓아 외화 유출을 막으려는 게 터키의 속내다. 인도가 최근 양자협정을 문제 삼는 동시에 상계관세 부과 품목을 넓혀가는 것도 국내에서 위기 극복을 위한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이 같은 요구를 달랠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대국에 투자를 확대해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방안 등이 거론되나 글로벌 경기 침체 상황에서 신규 투자 수요를 발굴하기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되레 무역수지 적자를 키울 수 있다. 김흥종 대외경제연구원장은 “인도가 무역적자를 얘기하지만 이 중 상당 부분은 인도 측 요구에 맞춰 현대자동차를 포함한 국내 기업이 현지에 진출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며 “상대를 달래기 위해 투자를 늘리면 현지 공장으로 중간재 수출이 늘어나 적자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다른 개발도상국들도 보호무역조치를 확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들이 시중에 유동성을 대거 공급하면서 자국 통화 가치를 끌어내리는 가운데 신흥국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져 경제위기가 심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인도처럼 상대적으로 힘이 센 개도국이 아니면 쉽사리 보호무역 카드를 꺼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개도국들의 목소리를 그나마 반영하던 세계무역기구(WTO)마저 기능이 마비되면서 브라질·이집트·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불만이 커지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다. /세종=김우보·조양준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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