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학가에서 순대국밥 가게를 하는 사장 A 씨는 최근 국밥 가격을 7,000원에서 8,000원으로 1,000원 인상했다. 막걸리도 1,000원 올려 병당 4,000원을 받기로 했다. 이미 폭등한 쌀값뿐 아니라 최근 일회용 배달 용기 가격도 상승하고, 거래처에서는 돼지고기 가격을 10% 올린다는 통보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원가가 계속 올라도 고객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 가격 인상을 자제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식음료 자영업자들의 주요 비용인 식재료, 포장 용기 등의 원가 상승 압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익률이 계속 줄어 자영업자들의 경영이 악화되면서 결국 음식 가격 도미노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자영업자들은 국내 최대 배달 식자재 마트 배민상회가 배달 비품 가격을 인상하면서 주요 일회용품 제조·유통사들이 10% 안팎으로 가격을 올린 영향도 크다고 지적한다. 시장에서는 이번 가격 인상은 플라스틱, 종이 펄프, 택배비 등 원자재, 배송비 폭등에 따른 비용 상승이 도화선이 됐다고 분석한다. 여기에 코로나19 장기화 여파로 배달 부자재 가격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전망이다.
실제로 최근 한두 달 동안 주요 식자재의 두세 자릿수 가격 상승률은 예삿일이 됐다. 지난 4월 기준 대파 가격 상승률은 270%나 된다. 이 밖에 사과·달걀·고춧가루 역시 각각 51%, 36%, 35% 가격이 올랐다. 공깃밥이나 막걸리 원재료인 쌀 가격도 같은 기간 13% 오르며 지난해 12월부터 5개월 연속으로 두 자릿수 상승세를 보였다. 쇠고기(한우 지육 전등급), 돼지고기(탕박 전등급), 닭고기 등도 ㎏당 합산 가격이 5월 현재 평년 대비 2%가량 상승했다. 4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3% 올랐는데 2017년 8월 2.5% 상승한 후 약 4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이다. 통계청의 한 관계자는 “국제 유가 상승과 경제 심리 개선 등 상승 요인이 있고 지난해 2분기 물가가 굉장히 낮아서 기저 효과도 있었다”면서 “당분간 오름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며 하반기쯤 안정세를 찾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실물 물가 상승은 골목 상권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실제 서울 광진구의 한 한식 배달 가게의 경우 닭고기가 포함된 볶음밥을 만들려면 과거 기본 원재료(닭고기, 계란, 대파, 밥, 배달 용기 등)만 2,119원이 들었는데 이제는 기본 원가가 20% 이상 오른 2,600원까지 상승했다. 여기에 다른 원재료, 배달 대행료, 임대료, 인건비, 수도 광열비, 기타 잡비 등 상승분까지 포함하면 1만 2,000원 하는 제육볶음 도시락(500g)은 앞으로 2만 원(배달비 포함)에 육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 내 중심 상권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B 씨는 “지금처럼 식재료비와 배달비가 치솟으면 배달 제육볶음 도시락 가격이 2만 원대로 인상될 수밖에 없겠지만 다른 업체와의 경쟁을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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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들의 경영 비용에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 택배비 역시 고공 행진 중이다. CJ대한통운은 편의점 등 기업 고객에 300원가량 택배비를 올렸다. CJ대한통운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부터 추진해오고 있던 기업 고객 요금 정상화 차원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진과 롯데택배도 개인 고객 택배 가격을 잇따라 인상했다. 택배 업계의 한 관계자는 “택배 근로자 과로 방지 대책으로 인해 설비와 인력 투자 등이 이뤄지고 있어 비용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단기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자영업자들의 마진은 갈수록 박해지는데 코로나19로 인한 실업과 이에 따른 자영업 증가로 경쟁 정도는 더 심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 자영업자 수는 코로나19에도 올 1분기 408만 8,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만 명가량 증가했다. 특히 배달을 시작한 자영업자 상승 폭은 더 가파르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배달의민족 주문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자영업자 숫자는 올 4월 36만 명으로 지난 1년 사이 38%가량 더 많아졌다.
비용 상승에 따른 생활 식음료 소비자가격 인상은 하반기까지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미 올 초 들어 대형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외식 가격은 줄줄이 인상되고 있다. 새해 롯데리아·맥도날드·버거킹 등 프랜차이즈들이 대표 제품 가격을 1~2%가량 올린 데 이어 써브웨이도 이달 평균 1.6% 가격을 올렸다.
내년 최저임금도 오르면 식음료 물가는 한층 더 가파르게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날 민노총은 일부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사퇴를 촉구하며 올해 협상 테이블에서 지난해보다 더 높은 최저임금 인상안을 예고했다.
한국외식업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모든 물가가 오르기 때문에 아직 가격을 올리지 않은 외식업자들도 비용 상승분을 가격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며 “원재료 가격 상승은 그래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만 임금이 오르면 직원 월급뿐 아니라 농수산 식품 가격 인상까지 따라오기 때문에 더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호현 기자 greenlight@sedaily.com, 박형윤 기자 man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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