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아트바젤이나 런던 프리즈 못지 않은데요? 코로나19 때문에 해외여행도 못하는데 세계적 화랑과 작품들을 서울에서 만나니 감격입니다.”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40대의 미술품 컬렉터 A씨는 전시장 초입에서부터 감탄을 터뜨렸다. 13일 VVIP오픈을 시작으로 서울 강남구 코엑스 A·B홀에서 닷새간의 항해를 시작한 키아프 서울(KIAF SEOUL·이하 키아프)에서다. 코로나 19 여파로 지난해 오프라인 전시 없이 '온라인 뷰잉룸’만 운영된 탓에 2년 만에 열리는 행사다. 전 세계 10개국 170개 참여 화랑 중에는 독일 최대 화랑인 스프루스 마거스(Spruth Magers)를 비롯해 베를린의 쾨닉(Konig)갤러리, 뉴욕의 글래드스톤 갤러리(Gladstone Gallery)와 투팜스(Two Palms), 홍콩의 오버더인플루언스(Over the Influence) 등이 첫 참가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하는 국내 최대규모 아트페어인 키아프는 문 열기도 전부터 한껏 달아올랐다. 코로나 이후 위축됐던 문화소비가 미술시장을 향한 ‘보복쇼핑’의 형태로 나타난 데다 재택근무 등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미술작품을 통한 인테리어 욕구도 높아졌다. 특히 올해는 유동성 완화로 풀린 시중 자금이 부동산·주식 시장에 이어 미술투자로 유입되면서 90% 이상의 낙찰률, 240억원 이상의 낙찰 총액 등 진기록이 쏟아지는 중이다. 지난 5월 열린 아트부산은 나흘간 행사를 통해 약 350억원 어치의 작품을 판매해 국내 아트페어 사상 최대 매출액을 기록했다.
강세(Bull Market)의 기세가 키아프로 이어졌다. 독일계 스프루스 마거스가 대표작으로 선보인 조지 콘도의 최신작은 키아프 개막도 하기 전에 팔렸다. 콘도는 지난해 7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2010년작 ‘역장(Force Field)’(208.3×208.3㎝)’이 약 76억원에 낙찰됐고 대형 그림은 20억원을 호가하는 등 현재 글로벌 아트마켓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하나다. 이곳에서 선보인 사진작가 안드레아 거스키의 ‘평양’ 시리즈는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으로도 친숙한 작품이라 눈길을 끌었다.
서울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에 처음 참가한 미국 갤러리 페레스 프로젝트는 온라인 뷰잉룸을 통해 작품 상당수가 판매된 상태다. 아트부산에서 ‘완판’됐던 도나 후앙카, 오스트리아의 전위예술가 헤르만 니치, 국내에 소개된 적 없는 라파 실바레즈 등은 한국 관객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이름임에도 판매 예약이 이어졌다. 조은혜 페레스 프로젝트 아시아 디렉터는 “SNS를 통해 꾸준히 작품과 작가를 홍보해 온 까닭에 대중적이진 않아도 골수팬이 확보됐다”면서 “신규 고객들 중에는 1990년대생 등 젊은 컬렉터들이 눈에 띈다”고 귀띔했다.
가나아트갤러리는 10억원 이상에 거래되는 알렉스 카츠의 대형 회화를 선보였고, 비매로 내놓은 일본작가 시오타 치하루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원로 화가 노은님, 내년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한국의 아방가르드’ 특별전이 예정된 작가 김구림의 작품을 문의하는 방문객이 많았다.
갤러리현대와 페이스갤러리가 출품한 이건용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아방가르드’로 애호가는 물론 미술투자자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아라리오갤러리가 내놓은 김순기는 ‘미술관급 작가’인 명성에 비해 가격적으로 저평가돼 있다. 아라리오가 현재 런던 프리즈 아트페어에서도 선보인 김순기의 작품은 현지 테이트미술관이 구입 문의를 할 정도로 높이 평가 받는다.
한국 미술시장을 달군 ‘단색화’의 인기도 여전히 뜨겁다. 갤러리현대의 이우환·정상화, 국제갤러리의 박서보·하종현 등의 작품이 사전 판매를 통해 주인을 찾아갔다. 20주년을 맞은 올해 키아프는 VVIP제도를 신설해 작품 선택의 우선권인 ‘퍼스트 룩(First Look)’의 기회를 2,000명 이하로 제한한 고객들에게 먼저 제공했다. 14일에는 VIP관람, 이후 17일까지 일반관람이 이어진다. 키아프는 내년부터 세계 정상급 아트페어인 프리즈(Frieze)와 공동주최 형태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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