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이 빠른 속도로 식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국내 양대 경매회사인 서울옥션(063170)과 케이옥션(102370)의 올해 첫 메이저경매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2021년·2022년과 비교했을 때 낙찰총액은 ‘반토막’ 수준으로 급락했다. 다만 “불황 시기가 그림 구매의 적기”라는 금언을 확인시키 듯 블루칩 작가의 작품이나 희귀작의 경우 합리적인 가격 수준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 달 28일 진행된 서울옥션의 올해 첫 메이저 경매가 낙찰총액 54억4530만원, 낙찰률 62%를 기록했다. 미술시장이 달아올랐던 2021년의 서울옥션 2월 첫 메이저 경매는 낙찰총액 약 110억원, 낙찰률 90%였고 지난해의 경우는 낙찰총액 약 173억원, 낙찰률 81%였다. 낙찰률 하락세는 시장 조정 국면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낙찰 총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0%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케이옥션의 지난 1월 올해 첫 메이저경매는 낙찰총액 40억5260만원, 낙찰률 65%였고 지난달 22일 진행된 경매는 낙찰총액 34억4270만원, 낙찰률 81%로 마감했다. 케이옥션의 지난해 연초 메이저경매 낙찰총액이 1월 74억원, 2월 87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을 밑돌고 있다. 다만 낙찰률의 소폭 상승은 시장 조정국면을 맞아 블루칩과 인기작가들의 경매 시작가가 낮춰진 시기를 ‘매수 적기’로 본 컬렉터들이 관심을 다시 갖게 됐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케이옥션이 내놓은 김환기의 1970년작 ‘무제’는 활황 때 2억원 이상 거래될 수 있는 작품이 9200만원에 낙찰됐다. 박수근의 대표작 ‘노상’은 낮은 추정가 수준인 4억6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아갔다.
서울옥션이 올해 첫 메이저경매의 대표작으로 내건 천경자의 작품 ‘정’(1955)은 5억5000만원으로 시작해 6억원에 낙찰됐다. 추정가가 9억~12억원이었지만 경합이 치열하지 않았기에, 낮은 추정가의 67% 수준이며 높은 추정가의 ‘반값’ 수준에서 거래가 성사됐다. 구매자 입장에서는 ‘탁월한 굿딜’이다. 유영국의 ‘작품’(1982)도 낮은 추정가 수준인 1억6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다만 고가 작품이 맥을 못 추는 것은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30억원 이상 고가 거래가 증발됐던 상황보다 더욱 심각하다. 고가 미술품의 대명사로 통하는 김환기는 20억원 이상의 점화(點畵)는 경매 거래 자체가 중단됐다.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도 고가의 캔버스 작품이 아닌 판화만 거래되고 있다. 미술시장 호황 때 가장 수요가 높았던 작가 중 하나인 알렉스 카츠, 아야코 록카쿠, 시오타 치하루, 멜 보크너 등도 찬바람을 피하지 못해 유찰이 많아졌다. 케이옥션이 내놓은 이우환의 ‘조응’ 연작도 추정가 3억원 이상은 모두 유찰됐다. 서울옥션이 고미술 대표작으로 내세운 불염재 김희겸의 사상 첫 경매 출품작이자 KBS ‘TV쇼 진품명품’에서 추정가 15억원으로 화제가 됐던 ‘석천한유도’는 경매 시작 당일 ‘출품취소’ 됐다. 겸재 정선의 ‘수송영지도’도 4억5000만~6억원의 추정가로 선보였으나 유찰됐다.
하지만 고미술은 현대미술에 비해 수요층이 안정적이다. 현대미술의 수요가 MZ세대를 위시한 젊은 연령대에 비교적 집중돼 있는 것과 달리 고미술은 베이비부머 세대 이상인 높은 연령대의 자산가 수요층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경기 변동에 따른 가격 탄력성도 더 작은 편이다. 10폭 병풍형태의 ‘서수낙원도’는 2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백자청화오리형연적’은 1935년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고적도보’ 도자편에 수록된 작품으로, 주먹보다 작은 크기지만 경쟁 끝에 8600만원에 낙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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