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10명당 6명은 내년도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를 심판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치러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를 놓고 여야가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국민은 양당 모두에 국정 및 의정 차질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유권자 10명 중 6명 "총선서 여야 모두 심판"
서울경제신문이 여론조사 기관인 한국갤럽에 의뢰해 12~13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내년 총선에서 정부 여당에 국정 운영 차질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동의한다’를 선택한 응답자가 61.5%로 집계됐다.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56.4%가 동의한다고 답변했다.
응답자의 거주 지역별로는 서울에서 정부 여당 책임론에 동의한 응답자가 61%, 민주당 책임론은 56.9%로 나타났다. 여야 모두 텃밭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내년 총선에서 책임을 묻겠다는 응답률이 절반 수준에 달했다. 대구·경북에서는 정부 여당 책임론에 동의한 응답자가 49.9%, 광주·전라에서는 민주당 책임론이 56%에 이르렀다. 여야 각 당의 전통적 지지층조차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여야 주요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혐오의 주요 원인으로 현 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의 입법 독주 및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여야 간 대립과 소통 단절로 대표되는 ‘정치의 실종’을 지목한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물갈이 여론이 높은 현상은 역대 총선마다 반복돼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여야 간 대립과 적대가 극심해지면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등돌리는 집토끼…"지지 정당 안뽑겠다" 민주 41%·국힘 36%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지지층에서 내년 총선을 통해 책임을 묻겠다는 응답이 30%를 넘었다. 유권자들의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이 큰 가운데 지지층의 민심 이반도 심각한 상황임을 나타낸다. 양당 모두 전통적 지지층에 기대어 가까스로 3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실제 투표에서는 지키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국민의힘의 경우 지지율 하락세가 지속돼 오차 범위 내에서 민주당에 추월 당했다.
특히 민주당 지지층의 41.4%가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에 국회 운영 차질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답했다. 또한 국민의힘 지지층 중 35.6%가 ‘내년 총선에서 정부 여당에 국정운영 차질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여당 심판론…중도층 69.3% 달해
정치 성향별로는 보수를 선택한 응답자가 정부 여당 심판론(국정 책임론)에 43.5% 동의했고 진보를 선택한 응답자는 민주당 심판론(의정 책임론)에 40.4%가 동의했다. 이러한 여야 지지층의 여론은 주요 정당에서 내부 쇄신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내년 총선에서 지지 철회 또는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에 여야 모두 내년 총선이 다가올수록 쇄신 압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도를 선택한 응답자 사이에서는 정부 여당 책임론이 69.3%로 민주당 책임론 53.3%보다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여야의 극한 대립 가운데 국정운영에 차질이 이어지면서 정부 여당에 그 책임이 크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주요 정당 지지율에서도 이러한 인식이 드러난다. 6월 실시된 1차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힘 38.0%, 민주당 32.8%로 국민의힘이 앞섰다. 그러나 8월 국민의힘 35.5%, 민주당 34.0%로 지지율 격차가 좁혀진 데 이어 이번 조사에서는 민주당 38.1%, 국민의힘 33.9%로 민주당이 오차 범위 내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을 역전했다.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한 평가 역시 오차 범위 내에서 부정 여론이 높아지는 추세다. ‘잘하고 있다’를 선택한 응답자는 6월 38.3%에서 이번 조사에서 32.3%로 하락한 반면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률은 56.7%에서 61.2%로 상승했다.
민주 지지율, 국힘 앞질러…尹 부정평가도 상승
주요 지역별로는 서울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6월 42.3%에서 이번에 34.2%로 하락한 반면 민주당 지지율은 27.2%에서 38.7%로 상승했다. 인천·경기에서는 같은 기간 국민의힘 지지율이 34.6%에서 34.3%, 민주당은 36.5%에서 36.8%로 비슷한 수준이 유지됐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지지 기반 지역에서도 위기가 나타났다. 대구·경북에서는 51.8%에서 42.4%로 오차범위 밖 하락세를 기록했고 부산·울산·경남에서는 46.3%에서 42.9%로 오차 범위 내 하락했다. 반면 민주당은 텃밭인 광주·전라에서 지지율이 54.9%에서 63.3%로 상승했다. 수도권과 함께 ‘캐스팅보터’ 역할을 하는 지역으로 평가되는 대전·세종·충청에서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39.9%에서 24.7%로 하락했고 민주당은 40.7%에서 47.4%로 상승했다.
정치 성향을 중도로 선택한 응답자들 사이에서는 같은 기간 국민의힘 지지율이 27.3%에서 22.0%로 오차 범위 내 하락한 반면 민주당은 29.5%에서 41.0%로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與 지지율 반등 가능성 남아 있어”
국민의힘·민주당 외에 정의당을 포함한 다른 정당에 대한 지지율은 미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정의당 지지율은 4.0%, ‘그 외 정당’은 2.7%에 각각 그쳤다. 6월 조사에서는 정의당이 4.5%, 그 외 정당이 1.3%였다. 민주당에서 탈당한 양향자 의원이 8월 말 ‘한국의희망’을, 역시 민주당 출신인 금태섭 전 의원이 9월 ‘새로운선택’ 창당을 각각 선언했지만 아직 주목 받지 못하고 있는 결과로 풀이된다.
다만 내년 총선까지 남은 기간 동안 여당의 지지율은 반등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의견도 있다. 최수영 정치평론가는 “그동안 여야 모두에 실망한 중도층이 정부 여당의 민생 경제 성과에 따라 여당 지지로 돌아설 수 있다”면서 “총선 1~2개월 전에 야당의 정권 심판론, 여당의 국정 지원론 중 어느 쪽에 더 힘이 실리느냐가 총선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정치 실종에 '현역의원 물갈이' 경고장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자신의 현재 지역구 국회의원 교체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현임 지역구 국회의원의 재선을 지지하는 유권자는 26.9%에 불과했다. 여야의 전통적 텃밭인 호남과 대구·경북(TK) 지역에서조차 현역 의원을 교체해야 한다는 물갈이 의견이 절반 이상의 비율을 기록했다. 이는 현역 의원들이 당내 계파 다툼과 여야 간 정쟁에 몰두해 지역 유권자들의 현안 사업과 민생 해소 문제를 국회에서 풀어내지 못한 데 따른 실망감의 표출로 풀이된다. 극한 정쟁으로 정치력을 실종시킨 현역 금배지들에 대한 ‘물갈이 경고장’인 셈이다.
서울경제신문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3차 정례 여론조사에서 응답자가 속해 있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재선 지지 여부를 물어본 결과 51.6%가 ‘다른 사람이 당선되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현 국회의원이 다시 당선되면 좋겠다’는 응답은 26.9%에 그쳤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재선 지지 의향은 1차 정례 조사였던 6월 28.6%, 2차 조사인 8월 30.3%였던 것과 비교했을 때 이번 조사에서 최저치를 찍었다.
호남 19%·TK 24%만 "재선 지지"
특히 여야의 텃밭 지역에서 현역 재선 지지 의견이 크게 떨어졌다. 더불어민주당 강세 지역인 광주·전라에서는 현역 의원 재선을 지지하는 비율이 19%로 지난 1·2차 조사에서 각각 25.3%, 24.7%를 기록했던 것에 비해 5%포인트 넘게 하락했다. 국민의힘 기반 지역인 대구·경북에서도 현역 의원 유지론이 24.1%로 1·2차 조사(27.2%, 36.4%)보다 내려갔다. 반면 교체론을 선택한 응답자의 비율은 광주·전라 56.5%, 대구·경북 53.3%로 절반을 넘겼다. 국민의힘 우세 지역인 부산·울산·경남 역시 교체론이 55.3%로 유지론(27.7%)의 2배에 달했다.
총선 승부처 수도권도 '위기론 심화'
내년 총선의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도 현역 의원 물갈이 여론이 우세했다. 서울과 인천·경기 지역에서의 재선 지지 의견은 각각 32%, 28.1%로 저조했다. 지역구 의원 교체를 희망하는 응답이 서울 50.1%, 인천·경기 48%로 유권자의 절반에 달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중간 지대로 각종 선거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던 충청·대전·세종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현재 의원의 재선을 희망하는 비율은 24.3%에 그친 반면 새로운 인물의 당선을 바라는 비율은 55%로 높았다.
이처럼 물갈이 여론이 거세지는 것은 여야 모두 당권을 둘러싼 내홍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 대한 민심의 견제구로 해석된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친윤(친윤석열)계, 민주당은 친명(친이재명)계가 당 주도권을 휘두르며 계파 갈등이 분출해왔다. 여기에다 내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여당에서는 ‘친윤 낙하산 공천’, 야당에서는 ‘비명(비이재명)계 공천 학살’에 대한 우려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강한 물갈이 여론은 현역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강한 불신이 나타난 결과”라며 “여당은 윤석열 대통령만, 야당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만 보이고 소속 국회의원들은 이들의 행동 부대로 전락한 듯한 모습에 유권자들이 실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3선 이상 중진 ‘험지 출마론’ 재점화 가능성
실제로 정치권에서도 3선 이상 중진들의 험지 출마론 혹은 차출론이 재점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국민의힘에서는 총선 전초전으로 여겨졌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17%포인트 차로 패배한 뒤 영남권 중진들이 험지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새어나오고 있다. 부산 해운대에서 3선을 지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미 서울 출마 선언을 한 상태다. 민주당도 덩달아 영향을 받는 모양새다. 초·재선 의원들과 친명계 위주로 ‘동일 지역구 3선 연임 초과 금지’ 등의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박 평론가는 “총선이 다가올수록 정치권에서는 여야 현역 의원들을 대상으로 호남·영남 등 ‘개혁 공천’을 요구하는 압박이 줄을 이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한편 ‘내일이 국회의원 선거일이라면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어느 정당 후보에 투표하겠냐’는 질문에서는 국민의힘 후보를 선택한 유권자가 32.8%, 민주당 후보를 뽑겠다는 응답자가 42%로 조사됐다.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도 국민의힘 33.9%에 비해 민주당이 38.1%로 앞서며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의 추이가 재확인됐다.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지지율은 32.3%로 30%대의 박스권에 갇혀 있는 모습이다.
올 6·8월에 이은 이번 3차 여론조사의 오차 범위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다. 조사는 국내 통신 3사가 제공한 휴대폰 가상(안심)번호 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진행됐으며 응답률은 10.1%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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