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진료 후 환자가 지정한 장소에서 의약품을 수령할 수 있도록 한 의료법 개정안이 첫 발의됐다. 정부가 야간이나 주말에는 초진, 재진 여부나 연령에 관계 없이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면서도 대한약사회 등 약사단체의 반발을 의식해 손대지 않았던 약배송을 허용한 것이다. 21대 국회 임기가 오는 29일로 다가오면서 법안이 심사될 가능성은 낮지만 시범사업 시행 이후 따라붙던 ‘반쪽짜리 법안’ 꼬리표를 뗄 계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분위기가 반전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21대 국회 임기 2주 남겨두고 ‘약배송’ 허용 의료법개정안 등장
17일 의료계와 국회 등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비대면진료 법제화를 위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시범사업 형태로 일반인들 사이에서 비교적 친숙하게 활용되고 있는 비대면진료의 구체적 정의와 △실시 가능한 경우 △안전상 금지 사항 △의료행위의 법적 책임 등 제도 운용에 필요한 법적 근거를 종합적으로 담고 있다. 또한 기존 원격의료와의 개념상 혼동을 막기 위해 ‘비대면협진’ 개념을 새롭게 도입했다. 특히 비대면진료를 통해 처방된 전문의약품을 환자가 지정한 곳에서 인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의약품의 비대면 수령을 허용한 점이 기발의됐던 법안들과의 가장 큰 차이다.
조 의원은 법안 제출을 하루 앞둔 1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개선방향 좌담회를 열고 의약계와 법조계, 소비자단체, 산업계 목소리를 청취했다. 이번 입법 역시 그동안 비대면진료와 함께 약 배송 허용의 필요성을 주장해 온 비대면진료 중개 플랫폼업계와 소비자단체의 의견이 적극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조 의원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되면서 국가 보건위기 극복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14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비대면진료를 이용하며 높은 호응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제화되지 못한 채 시범사업 단계에 머물러 국민의 원활한 비대면진료 활용이 저해되고 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비대면진료 산업 전반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의료현장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 비대면 진료 받고도 약은 대면 수령…‘반쪽짜리’ 시범사업 논란
비대면진료 중개 서비스는 정부의 정책적 의지와 맞물려 고성장세가 예상됐던 산업이다. 정부는 작년 6월 재진 위주의 시범사업을 시행하다 너무 까다롭다는 비판이 나오자 연말께 방향을 확 틀었다. ‘초진·재진’이라는 개념 대신 ‘6개월 이내’라는 기준을 신설했고, 야간(오후 6시 이후)이나 주말(토요일 오후 1시 이후), 공휴일에는 그마저도 제한을 없앴다. 전국 어디서나 질병·연령에 관계없이 ‘6개월 이내’라는 것도 따지지 않고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의사가 “병이 중하다거나 애매하다”고 판단하면 비대면진료를 하지 않을 수는 있다.
사실상 전면 허용에 가까운데, 약 배송 만큼은 기존과 마찬가지로 감염병 확진자 등 일부에 한해서만 허용한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부득이하게 비대면진료를 받더라도 처방받은 의약품은 약국에서 대면으로 수령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부가 약사단체의 눈치를 보느라 정책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반쪽짜리’ 사업을 운영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평일 낮시간대와 달리 야간이나 주말·공휴일에는 문 연 약국을 찾기 쉽지 않다. 지역약사회가 운영하는 당번약국을 운영해야 하는데, 문 연 약국을 찾더라도 처방약을 취급하지 않으면 수령이 불가능해 환자들의 불편이 컸다.
이번 입법으로 국회 계류 중인 비대면진료 관련 법안은 총 5건으로 늘어났다. 다만 21대 국회 임기가 불과 2주밖에 남지 않아 통과는 사실상 잔여 임기 내 법안소위 통과는 힘들어 보인다. 산업계는 약배송을 허용한 비대면진료 법안이 첫 발의되면서 향후 시범사업 확대 등 관련 논의가 재개될 발판이 마련됐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폐기되더라도 시범사업 범위가 조정되거나 22대 국회 개원 이후 약 배송을 허용하는 유사한 법안이 제출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제기된다.
비대면진료 플랫폼 ‘올라케어’를 운영하는 블루앤트의 김성현 대표는 “비대면진료의 범위 확장과 약품 배송을 포함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첫 등장하면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에 긍정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환영 의사를 밝혔다. 또 “사용자 입장에서 비대면진료를 통한 약 배송은 필수가 됐다. 이번 개정안이 오는 22대 국회에서 비대면진료의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고 환자 중심의 의료 서비스 제공 방식을 발전시키는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경호 닥터나우 부대표는 “이번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의 발의는 비대면진료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다시금 피력하는 동시에 시대적인 과제를 더 이상 외면하지 않도록 함의를 이뤄가고자 하는 취지로 보여진다”며 “보건복지부에서 시행 중인 비대면진료 시범사업과 관련해서도 비대면 약수령이 포함될 수 있는 법적근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약사단체의 반대와 더불어 약배송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법안의 발의 등 법제화 요구가 부족한 측면이 있었다”며 “이번 개정안을 토대로 법제화에 대한 노력과 대의,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돼 시범사업에 반영될 여지가 생겼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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