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체크] 난민에도 급이 있나…"우크라 되고 무슬림 안된다"

[김연하의 글로벌체크]
과거 시리아 난민엔 인색했는데…헝가리 등 우크라 난민 환영
이중잣대 논란 와중에 우크라 국경서도 인종차별 주장 나와
프랑스 대선 후보 "우크라는 유럽인…아랍은 우리와 너무 달라"
출신지에 따른 차별 정당화 나서기도

  • 김연하 기자
  • 2022-03-16 07:00:00
  • 국제일반
[글로벌체크] 난민에도 급이 있나…'우크라 되고 무슬림 안된다'
14일(현지시간) 몰도바에 마련된 한 임시 거주지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이후 순식간에 수백만명의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유엔난민기구는 300만명 이상이 전쟁을 피해 우크라이나를 탈출했다고 밝혔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지 20일도 되지 않아 수백만명의 난민이 발생한 겁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인 인근 유럽 국가가 우크라이나 출신 난민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인데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현재까지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한 폴란드의 경우 난민에게 기차나 버스 등의 교통편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지 호텔은 난민들에게 임시 주거지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방까지 만들었죠.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일부 여행사들은 난민을 돕기 위해 관광단체와 함께 병원과 학교, 관공서 건물 등을 안내해주는 '시티 투어 가이드'까지 제작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난민을 환영하는 것은 폴란드 뿐만이 아닙니다. 헝가리는 자국으로 입국한 우크라이나인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죠. 헝가리 당국에 따르면 지난 14일(현지시간) 기준 25만명 이상의 우크라이나인이 헝가리에 입국했다고 합니다.



■중동 난민 꺼렸던 유럽…우크라는 두 팔 벌려 환영?


사실 유럽 국가들이 이처럼 두 팔 벌려 난민을 환영하는 모습은 다소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헝가리와 같은 동유럽 국가들이 더욱 그러한데요. 지난 2015~2016년 시리아 난민 사태 당시 많은 유럽 국가들이 난민을 부담스러워하며, 이들을 거부하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로이터통신은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지 10년이 지난 2021년 초까지 유럽연합(EU) 국가들이 100만명의 시리아 난민과 망명신청자를 받아들였다고 전했습니다. 거리 등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우크라이나와 난민 수 측면에서 큰 차이가 보이는 것이 사실이죠.



[글로벌체크] 난민에도 급이 있나…'우크라 되고 무슬림 안된다'
지난 2015년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시리아 난민 수용에 대한 시위가 열리고 있다. AP연합뉴스

특히 당시 폴란드와 헝가리 등은 시리아 등 중동난민을 막기 위해 국경을 따라 장벽과 울타리를 건설하며 난민을 적극적으로 거부했었죠. ABC뉴스에 따르면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은 당시 유럽으로 망명을 요청하는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들의 이동에 대해 "조직적인 침공"이라고 칭하기까지 했습니다. 현재까지 십수만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아들인 슬로바키아는 시리아 사태 당시에는 기독교인만 수용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죠.


이미 이같은 유럽 국가들의 '태세전환'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ABC뉴스는 '유럽의 우크라이나 난민 환영은 비백인 망명 신청자들에 대한 '이중 잣대'를 드러낸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백인이기 때문에 더 환영받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앤드루 게데스 이민정책센터장은 "유럽이 우크라이나 난민을 '매우 따뜻하게 환영'하는 반면 시리아와 아프리카, 중동 출신 망명 신청자들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반응을 보여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고 말했습니다.



■기차 탑승 막고 기차역 접근도 못해…국경에서도 차별 나타나


이 같은 차별은 현재 우크라이나 국경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탈출한 유학생 등 유색인종들은 탈출 당시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차별을 당했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교육과학부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 우크라이나 내 유학생은 약 8만여명으로, 이들 중 대부분이 인도와 모로코, 아제르바이잔, 트루크메니스탄, 나이지리아 출신입니다. 이들이 폴란드 등 국외로 향하는 기차에 탑승하는 것을 우크라이나 당국 관계자들이 막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한 모로코 출신의 유학생은 미 CBS뉴스에 "기차역에 갔지만 그들이 우리를 들여보내주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가나 출신 유학생도 "백인이 우선이었다"며 "흑인보다는 인도인과 아랍인이 우선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글로벌체크] 난민에도 급이 있나…'우크라 되고 무슬림 안된다'
지난 2015년 9월 시리아 난민들이 보트를 이용해 터키에서 그리스 레스보스 섬에 도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비슷한 상황은 불과 몇 달 전 아프가니스탄 사태 당시에도 발생했습니다.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던 미군이 철수하고 탈레반이 집권에 성공하자 수많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조국을 탈출하며 난민으로 전락했는데요, 오스트리아를 포함해 일부 유럽 국가들이 이들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었습니다. 특히 당시 아프가니스탄 난민 수용을 강하게 거부했던 카를 네하머 오스트리아 총리는 최근 "필요하다면 당연히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우크라 난민은 교육받은 사람들…아랍 난민은 테러리스트일지도"


일부 정치인들은 출신지에 따른 이같은 차별을 더욱 노골적으로 언급하기도 합니다. 그간 아랍 출신의 난민 수용을 반대한다고 밝혔던 프랑스의 극우성향 대선후보 에릭 제무르는 최근 현지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에 대한 제한적 비자 발급을 찬성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같은 입장의 근거로 "우크라이나인들은 유럽인이자 크리스찬으로서 프랑스 문화와 더 가깝기 때문"이라며 "이는 동화(assimilation)의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제무르는 "아랍이나 무슬림 이민자들이 우리와 너무 다르며, 그들을 통합시키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제 모두가 이해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우크라이나인은 유럽인이기 때문에 수용 가능한 반면, 아랍인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겁니다. 이 같은 발언을 하는 것은 극우 정치인뿐만이 아닙니다. 키릴 페트코프 불가리아 총리도 최근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해 언급했는데요, 그는 "이들(우크라이나인들)은 유럽인"이라며 "똑똑하고 교육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특히 "(우크라이나 난민 사태는) 우리에게 익숙한 난민 파동이 아니"라고 단언했는데요, "우리는 그들(중동 출신 난민)의 정체성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고 그들의 과거도 불분명해 심지어 테러리스트일 수도 있었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나름대로 출신지에 따른 차별의 당위성(?)을 내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갑작스런 전쟁으로 눈물을 흘리며 조국과 집을 떠나는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유럽의 환영을 비판하고 싶지도 않고, 비판해서도 안될 겁니다. 다만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씁쓸함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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