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사일·방사포 기술이 나날이 고도화하면서 수도권을 비롯한 대한민국 주요 도시와 시설은 한층 더 위협에 노출되고 있다. 우리 군은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를 구축해왔다. 하지만 5,500여 문(2020년 국방백서 기준)에 달하는 북한 방사포에 대해서는 특화된 방어체계가 미비해 군과 방산 업계가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5일 당국 관계자 및 관련 소식통들에 따르면 우리 군이 북한의 방사포 위협 등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하기로 한 ‘한국형 장사정포 요격체계(LAMD·Low Altitude Missile Defense)’의 요격탄(지대공미사일)으로 최신 국산 함대공 미사일 ‘해궁’을 개량하는 방안이 유력시되고 있다. ‘장사정포’란 북한이 자주포와 방사포를 비롯한 장거리 공격용 화포를 총칭하는 용어다. ‘한국형 아이언돔’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한 장사정포 요격체계는 장사정포 중에서도 일종의 다연장 로켓포인 방사포 요격에 주안점을 둘 예정이다.
한 당국자는 “장사정포 요격체계는 유사시 북한이 한 번에 수백 기 이상 발사할 방사포에 대응해 주요 지역을 방어해야 하기 때문에 KAMD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요격탄을 갖춰야 한다”며 “따라서 장사정포 요격체계에는 KAMD보다 저렴하면서도 정확도가 높은 요격탄을 갖춰야 하는데 그런 차원에서 해궁 개량 가능성을 포함해 다각도로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존에 개발된 미사일을 개량하면 신규 개발보다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검증된 기술을 쓸 수 있어 요격의 신뢰성이 높아지는 데다 사후 관리를 위한 부품 확보 및 정비 인프라 운용 차원에서도 효율성과 편의성을 높일 수 있다.
◇해궁 개량형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미 우리 군은 지대공미사일을 국산화한 상태다. 지난 1997년대 단거리 지대공미사일 ‘천마’를 개발했고 2011년에는 중거리 지대공미사일 ‘천궁(M-SAM)’을 개발했다. 2017년에는 천궁을 적 탄도미사일 요격탄으로 개량한 ‘천궁-2(M-SAM PIP)’를 완성해 양산을 시작했다. 현재는 장거리 지대공 탄도탄요격미사일인 L-SAM도 개발하고 있어서 향후 상층부 상공에서 적 항공기와 탄도미사일을 파괴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천마와 천궁은 주로 항공기를 잡는 데 방점이 맞춰져 있어 초음속과 극초음속을 넘나드는 적의 방사포 로켓을 막아내기 어렵다. 천궁2는 극초음속으로 떨어지는 적의 탄도탄을 직격해 맞출 정도로 정밀도가 높지만 대당 가격이 15억 대로 알려질 정도로 고가여서 우리 군이 수백 기 이상 대량으로 구입하기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L-SAM은 아직 개발 중이고 한층 더 고가일 것으로 보여 저가의 방사포 포켓을 막는 데 쓰기에는 비효율적이다.
이런 이유로 기존 지대공미사일이 있음에도 함대공 미사일 해궁을 방사포 대응용으로 개량하려는 것이다. 방산 분야의 한 전문가는 “천궁은 크기가 4.6m에 달하고 가격도 고가인 데 비해 해궁은 3m급 크기여서 한 개 발사대에 더 많은 양을 적재할 수 있으면서도 제작비가 천궁보다 저렴하다”고 전했다. 또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적외선탐색기와 레이더탐색기(RF Seeker)를 복합적으로 탑재해 ‘다중모드’로 표적을 추적하는 미사일이어서 정밀도가 높다”고 전했다.
◇장사정포요격체계는 어떻게 작동할까
장사정포 요격체계의 1개 포대는 요격탄 발사 차량(혹은 고정형 발사대)과 다기능 레이더, 교전 통제소로 구성될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포대는 대포병 레이더와 연동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스템으로 운용될 경우 북한이 방사포 등 장사정포를 통해 로켓을 발사하면 대포병 레이더가 이를 탐지해 교전 통제소로 정보를 보내게 된다. 정보를 받은 교전 통제소는 다기능 레이더로 해당 로켓을 표적으로 식별해 추적 정보를 요격탄에 전달한다. 요격탄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비행하다가 내장된 탐지기를 켜서 정확한 표적 위치를 파악한 후 추격·격추하게 된다.
대대급 부대에 배치될 장사정포 요격체계 포대 1개는 운용 장소에 따라 요격탄 발사 차량이 최소 2대에서 최대 6대까지 배치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발사 차량 1대에는 2대의 발사대(발사대당 16발)을 장착해 최대 32발의 요격탄이 탑재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1개 포대에 최대 32대씩의 요격탄으로 무장한 6대의 발사 차량이 배치된다면 한 번에 최대 192발의 요격탄을 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적 방사포 로켓 1발당 LAMD 요격탄 1~2발을 발사한다면 한 번에 최대 96~192발의 방사포 표적에 대응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장사정포 요격체계의 표적 파괴 방식은 직격 방식(hit-to-kill)으로 개발되는 것이 유력하다고 방산 분야 관계자들은 전했다. 직격 방식은 말 그대로 요격탄이 상대방 미사일과 직접 부딪혀 파괴시키는 것을 뜻한다. 음속으로 나는 요격탄이 표적에 직격하면 음속의 운동에너지가 엄청난 열에너지로 전환돼 표적의 파편까지도 태워버릴 수 있다. 북한이 방사포 로켓에 핵 물질이나 생화학 물질을 탑재하더라도 직격 요격하면 열에너지로 태워 없애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장사정포 요격체계 레이더에는 최신 기술인 능동형 전자주사식 위상배열(AESA) 레이더 기술이 적용될 예정이다.일반적으로 AESA 방식은 첨단 반도체칩 등을 활용해 초소형화한 안테나 모듈을 수백~수천 개씩 레이더 패널에 촘촘히 끼워넣는 방식이다. 각각의 안테나 모듈들이 각각 100만 분의 1초 이내로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 서로 다른 방향을 자동으로 탐지할 수 있으므로 마치 곤충의 겹눈처럼 넓은 범위의 지역에서 여러 물체를 동시에 탐지할 수 있다. 장사정포 요격체계 레이더의 목표 성능은 아직 미정이지만 “동시에 100여 개 이상의 표적을 잡아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또 다른 당국자는 전했다.
◇개발 경쟁 ‘2파전→공생협력’ 구도될 수도
장사정포 요격체계 개발 사업은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주관하에 진행된다. 해당 사업 참여를 한화와 LIG넥스원의 2파전로 경쟁 구도가 진행되고 있다. 두 회사는 지난 10월 ‘서울 ADEX 2021’ 행사에서도 각자 관련 기술을 선보이며 장외 신경전을 벌였다.
해궁을 개량해 장사정포 요격체계의 요격탄으로 쓰는 방안이 결정된다면 해궁 제작사인 LIG넥스원이 사업의 주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 출신의 한 방산 전문가는 “그간 국산 무기 개발 실적을 보면 국내 유도 무기 체계의 거의 90%가량은 LIG넥스원이 맡아왔다”며 “지금은 폐지됐지만 과거 방산 분야가 기업별로 전문·계열화됐을 당시 LIG넥스원이 정밀 유도 무기 분야 전문 방산 기업으로 지정됐기 때문에 그만큼 대공 유도 무기 분야에서는 노하우와 핵심 기술이 상당히 쌓였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반면 AESA 레이더와 지휘 통제 분야에서는 한화가 우위를 보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산 전투기 KF-21보라매에 적용된 국내 첫 AESA 레이더의 경우 한화 측이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ADEX에서 한화는 장사정포 요격체계 모형 등은 내놓지 않는 대신 KAMD와 장사정포 요격체계를 연계해 북한의 탄도탄과 방사포를 다층적으로 막는 통합 방공 체계 개념을 소개하는 자료를 전시했다.
이에 대응해 LIG넥스원은 장사정포 요격체계를 위한 요격탄, 교전 통제소, 차량 탑재형 다기능 레이더의 모형을 전시했다.특히 차량 탑재형 다기능 레이더의 경우 대포병 탐지 레이다-II 개발 시 확보된 기술과 인력을 활용, 핵심 구성품인 레이다모듈조립체(RMA)를 선행 개발해 완제품을 전시했다. LIG넥스원은 이들 구성 요소를 동시에 개발할 수 있는 기술 역량과 인력을 보유하고 있어 우리 군이 요구하는 성능을 단기간에 구현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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