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슬람주의 세력과 기독교ㆍ세속주의 세력의 충돌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유혈사태가 장기화될 우려를 들어 이집트의 국가신용등급을 최하위 정크 등급으로 강등했다.
6일(현지시간) AFP통신은 지난 5일 하루 동안에만 이집트의 카이로·알렉산드리아 등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해 37명이 죽고 약 1,400명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이집트 내 최대 이슬람주의 단체인 무슬림형제단 등 무르시 지지세력은 5일 '거절의 금요일'을 외치며 사실상의 쿠데타를 단행한 이집트 군부와 반무르시 세력에 대한 저항시위를 벌였다. 외신들은 목격자들을 인용, "당초 돌ㆍ파이프로 인한 부상이 많았으나 점차 총격에 따른 피해가 늘어나는 등 충돌 수준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형제단 등 이슬람 세력에 맞서 반무르시 세력 연합체인 '타마로드' 역시 지지자들을 끌어모으면서 대규모 폭력사태는 날이 갈수록 확전되고 있다고 주요 외신들은 전했다.
과도정부 역시 이슬람과 세속주의 정파 간의 갈등으로 출범하자마자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당초 과도정부는 세속주의 지도자인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총리로 임명할 예정이었으나 이슬람 정파의 극심한 반발로 내부분열만 가속되자 이를 잠정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 대통령궁은 6일 저녁 늦게 과도정부에 참여한 이슬람 근본주의 정당인 알누르당 등의 반대 등을 받아들여 "임시 총리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발을 뺐다.
이처럼 이집트 정국 혼란이 길어질 조짐이 보이자 피치는 이집트의 국가신용등급을 'B'에서 최하 등급인 'B-'로 강등하고 등급전망도 '부정적'으로 낮췄다. 피치는 성명을 통해 "군부 쿠데타에 따른 혼란 등 장단기 리스크 해소가 불확실하다"며 강등 배경을 설명했다.
한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6일 이집트 폭력 사태를 비난하며 "미국은 이집트 내 어떤 정파도 지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백악관은 무르시 정권 붕괴를 방조했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이 같은 답변을 내놓아 국제사회의 기류에 변화가 일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켰다.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도 "미국은 민주정권의 축출을 지원하는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며 이집트 군부에 대한 지원중단을 거듭 촉구했다. 이와 관련, AP통신은 "국제사회의 지원이 끊길 경우 이집트 경제의 회복 가능성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