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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다수파 '날치기'냐 소수파 '치기'냐
입력2005-03-03 17:06:13
수정
2005.03.03 17:06:13
김창익 기자 <정치부>
‘남의 물건을 함부로 채 가는 짓.’ 국어사전에서 ‘날치기’를 찾으니 이렇게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이 말이 ‘다수당이 수적인 우위를 이용, 합의 없이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쯤으로 해석된다. 사전적 의미나 정치적 함의 모두 ‘함부로’ 또는 ‘제멋대로’ 정도의 키워드를 포함하고 있는 것 같다.
2일 밤 11시. 국회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어 김덕규 국회의장 직무대리의 ‘직권상정’으로 행정도시건설특별법이 통과됐다. 직권상정으로 법이 통과되기는 17대 국회 들어 처음이다. 통과 선언 직후 한나라당의 일부 반대파 의원들은 “날치기다” “독재다”를 외치며 의장 단상에 오르고 서류를 마구 집어던져 국회 본회의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다음날인 3일. 이재오ㆍ김문수 의원 등 반대파들은 행정도시건설특별법 무효 투쟁을 선언하고 “망국적 수도 분할과 ‘위헌적’ 날치기를 막지 못한 한나라당 지도부는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위헌’이라는 무시무시한 수식어까지 붙었다. 직권상정으로 통과된 특별법을 놓고 ‘날치기’라는 말이 이틀 연속 국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김 직무대리는 이에 대해 “합당한 절차를 밟아 법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날치기라고 몰아붙이는 소수의 횡포가 더 큰 문제”라고 되받아쳤다. 실제 소수파들은 수적인 열세를 상임위 점거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극복하곤 한다. 지난해 12월 국보법 상정을 막기 위해 법사위를 점거했던 한나라당의 저항은 2일에도 그대로 재연됐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는 원칙을 정해놓고 있다. 다수의 합의에 소수가 수긍해야 한다는 것은 정치의 기본이다. 답답해서 국회법을 들춰보니 85조와 86조에 “정당한 사유 없이 상임위 통과가 안될 경우 의장은 심의기간을 정하고 그 이후엔 본회의에 자동으로 부의된다”라는 규정이 있다. 김 직무대리의 2일 직권상정은 절차상 아무런 하자가 없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날치기로 매도하는 ‘치기(稚氣)’가 비생산적인 날치기논란을 낳고 있다. 법과 원칙은 국회 저 건너편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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