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피부로 느끼는 위기감이 높다. 한국경제가 위기의 계곡에 빠져 있는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헤쳐나오지 못하면 회복불능의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다.
고꾸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은 정부는 물론 민간 부문에서도 느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소득 4만달러로 가느냐 하는 갈림길"이라며 "4만달러로 못 가면 그 자리에 멈추는 게 아니라 미끄러진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점프'를 해야 위기의 계곡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도 했다. 민간연구소나 경제단체도 앞다퉈 '경고'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정부 주도의 성장이 아닌 혁신과 규제혁파를 통한 새로운 성장 방정식을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박근혜 정부가 경제혁신3개년계획에 이어 규제 끝장토론을 통해 규제혁파에 나선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식어가는 성장 엔진을 규제개혁과 경제혁신3개년계획을 통해 살리겠다는 것인데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다. 혹여라도 실패할 경우 한국경제는 더 깊은 위기의 계곡 아래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현재 우리 경제는 성장이나 정체냐뿐만 아니라 '침체'를 포함한 세 가지 갈림길에 서 있다"면서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외부의 화려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고 말했다.
◇곳곳에 드리운 공포의 징후=지난 1980년대만 해도 우리의 잠재성장률은 8% 수준이었다. 하지만 1997년 위기를 겪으면서 5%대로 떨어졌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3% 수준으로 추락했다. 심지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오는 2030년 이후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1%로 떨어져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보다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잠재성장률이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투자증가율 하락이다. 1970년대 한국의 연평균 총투자증가율은 17.9%, 1980년대까지도 10.8% 수준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4.4%로 하락한 후 2003년부터 10년간 1.7%로 급락했다. 투자증가율 둔화는 성장률 하락으로 귀결됐다. 1970년대 10.3%, 1980년대 8.8%였던 연평균 성장률은 1990년대 6.2%로 하락한 후 2003년 이후 10년간은 4.4%로 낮아졌다. 2012~2013년은 2%대였다.
그렇다고 이를 돌파할 카드를 꺼내기도 쉽지 않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잠재성장률이 선진국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는데 요인이 워낙 복합적이어서 '저성장 함정 탈출'이 쉽지 않다"고 예측했다. 가계부채 증가, 주력산업의 공급과잉, 저출산·고령화 등 구조적인 이유로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만큼 웬만한 대책으로는 이를 돌파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경제는 신흥국의 빠른 추격과 선진국의 역습에 포위됐다. 실제로 미국은 셰일가스와 3D프린터 혁명, 기업지원책 등을 내놓으며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일본은 엔저와 양적완화, 유럽연합(EU)은 신산업정책을 통해 제조업 부흥을 이끌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는 '꿈의 숫자'다. 34개 OECD 회원국 가운데 18개 국가만이 달성했다. 또 1인당 국민소득이 4만달러를 이상 되는 나라 중 16개국이 인구 8,000만명을 넘는다. 풍부한 인적자원이 필수라는 얘기다. 인구가 5,000만명에 불과한 우리나라로서는 4만달러의 벽을 넘는 데 다른 국가보다 더욱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스스로 선두가 돼야 위기탈출…'혁신' 엔진 달아야=1960년대 한국과 가나의 소득수준은 비슷했다. 군사정부가 통치했고 시간이 흐른 뒤 유엔 사무총장(코피 아난, 반기문)를 배출했다는 공통점도 가졌다. 하지만 30년 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했지만 가나의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의 15분의1에 불과하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났을까. 혁신 엔진을 달았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은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수립한 뒤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산업을 단계적으로 키웠다. 중화학공업부터 자동차·반도체 등 현재 한국의 주력수출품은 국가가 주도해 '성장의 씨'를 뿌린 결과다. 하지만 과거의 성장 방정식은 한계에 다다랐다. 정부 주도로 생산요소를 투입해 고도성장을 이뤄오던 성장의 패러다임은 현재 가동이 쉽지 않다.
더욱이 현재와 같은 3% 수준의 잠재성장률로는 국민들이 회복의 온기를 느낄 수 없다.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는 차치하고 3만달러 달성도 요원하다. 선진국의 1인당 국민소득 하한선은 대략 3만~4만달러선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선진국 진입 역시 '헛꿈'이라는 얘기다.
새로운 성장 공식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혁신'의 틀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과거 정부 주도의 투자방식을 완전히 폐기하고 획기적인 규제완화 등 투자환경 개선을 통해 민간의 창의와 활력이 샘솟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는 스스로 선두가 돼야 하기 때문에 과거처럼 빠른 추격자 전략으로는 불가능하다"면서 "기존의 틀 밖으로 나와 혁신을 무기로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혁명 수준의 대개조가 있어야만 효율과 생산성 제고를 통한 경제 대도약을 바라볼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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