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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 내 인생의 별이 된 물건-안희정편]선비st 그의 강직함은 '수첩'으로부터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100년전 쯤에 사상가이자 문예비평가인 게오르크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에 나오는 아름답고도 서정적인 서문입니다. 루카치는 개인과 세계 간의 모순이 없었던 그리스·로마 시대와 달리 근대사회 이후 총체성을 상실한 개인이 이정표를 찾아가는 여행의 기록이 바로 소설이라는 뜻으로 이런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방황하던 젊은이들은 이 글을 또다른 의미로 해석했고 감동도 받았습니다. 이들은 좌표를 잃은 청춘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작은 위안을 얻었고 나름대로의 별을 찾으려 했습니다. 아마 지금의 대선주자들도 마찬가지였겠지요. 이들에게 인생의 항로를 알려주는 ‘별’이란 거창한 이념도, 역사속 위인도, 잘나가는 선배도 아니었습니다. 이들 대선 주자들은 자신의 인생이 녹아 있는, 남들에게는 사소한 물건에서 넘어졌을 때 다시 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자신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물건, 잘 쓰지는 않지만 이미 나의 일부를 지배해 절대 버릴 수 없는 소중한 물건을 ‘감정’ 물건이라고 합니다. 권모술수와 감언이설이 판치는 정치판에서 대선주자들의 곁에 머물면서 희로애락을 같이 하고 때로는 용기를 주고, 때로는 인생의 방향타가 됐던 감정 물건은 무엇일까요.

안희정 후보가 공개한 그의 수첩들. 삐뚤빼뚤한 모습부터 점차 진화한 글씨체를 볼 수 있다. /영상=서울경제 유튜브


안희정 후보가 2004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감옥에 있던 시절 작성한 버킷리스트 일부 /영상화면캡쳐


강직한 성품을 키운 8할은 ‘수첩’ 그리고 ‘손필기’

19대 대선주자 안희정 후보의 감정 물건은 ‘수첩’이다. 어릴 때부터 작은 수첩에 영어 공부도 하고, 한문 공부도 하고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생각을 담았다. 수첩 크기는 각양 각색이다. 가방 안에 쏙 들어갈만한 작은 수첩부터 강의 노트를 뽑아놓은 것 같은 큰 공책도 있다. 안 후보는 대학 강의실에서, 2004년 구치소 안에서, 충청도지사로 있던 시절 꾸준히 직접 손필기를 하며 생각을 정리해왔다. 낡고 바래진 수첩 10첩 이상을 쌓아오는 동안 그의 정치에 대한, 사회에 대한 사고도 키워나갔다.

안 후보가 교도소에 살던 시절 쓴 수첩 안에는 나중에 교도소 밖을 나가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적혀있다. 노트엔 “십오소년 표류기처럼 자연 속에 모험과 생활 놀이 하고싶다”, “장작패기”, “시냇물에 종이배 띄워 끝까지 쫓아가보기” 등 10가지 목록이 빼곡히 써있다. 자연 속에서 사색하고 마음을 맑게 비워내는 걸 좋아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2012년 실국장 행정 워크숍을 다니던 시절에는 ‘나의 단상’ 부분에 “자유 방임, 모범 따라 배우기”, “아무도 뒤돌아 보지 않는 업무 현실”, “중앙 정부와의 관계에서 도는?”이란 필기도 있어 그가 조직을 이끌어나가며 솔선수범과 모범이 되는 자세를 강조한 점이 엿보인다.

2004년 이전부터 꾸준히 모아온 그의 수첩들. 영어 공부, 한문 공부부터 대학 강의노트, 교도소에서의 사색까지 다양한 생각들이 모아져 있다. /안희정 캠프




“정의를 위해 싸우라고 가르쳐놓고, 왜 자르려 하냐”

1965년 논산에서 태어난 그는 박정희를 좋아했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이름을 ‘희정’으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초등학교 때부터 반장도 아닌데 차렷! 경례!를 붙여 타고난 정치인이었다는 말도 나돈다. 박정희의 생각을 쫓으며 지내던 안 후보는 고등학교 때 진보적인 선생님을 만나 역사에 대한 인식이 뒤틀렸고, 온갖 ‘불온서적’이라 딱지 붙여졌던 책들을 읽으며 조금씩 혁명을 꿈꾸는 소년이 됐다. 고등학교에서 제적 문제가 거론되자 안 후보는 학교를 퇴학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고려대 철학과에 들어간다. 그가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에게 고함친 대사는 두고두고 선생님의 가슴에 남았다고 전해진다. “선생님들이 정의를 위해 싸우라고 가르쳐 놓고 정의를 위해 싸우려는 저를 이렇게 자르려 하느냐”.



대학에서도 그는 학생운동을 잇는다. 격렬하게 사회와 대항하던 1988년 안 후보는 반미청년회 사건으로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구성죄 혐의로 체포된다. 피 끓는 정의감에 파란만장한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안 후보는 정치권에서 보좌관으로 활동하다 한국의 정치 환경에는 아무런 대안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믿었던 정치에서 배신감을 느끼고 깊은 좌절감을 맛본 안희정은 다시 공부를 하기 위해 고려대로 복학한다. 그곳에서 안희정은 그의 정신적 지주, 노무현을 만나고 참여정부 탄생에 일조하며 다시 정치에 희망을 품게 된다. 그리고 그가 충남도지사에 당선된 2010년, 그의 정치 인생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정치보다, 진보보다 인간의 ‘도’가 더 중요하다

안희정은 정치인으로서 올바른 사회에 대한 강조도 많이 하지만 ‘인간성’에 대한 강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이번 19대 대선 공약에서도 ‘인문학 교육 활성화, 단순 지식인 양성 교육 지양하고 인간성 함양에 중점’을 강조했다. 그가 2008년에 쓴 ‘담금질, 안희정의 새로운 시작’에서도 그가 인간에 대해 어떤 고찰을 했고 결론을 어떻게 내렸는지 엿볼 수 있다.

“절망의 또 다른 이유는 인간에 대한 실망이었다. 조직을 떠나고 정치적 의지와 목적을 상실한 이후, 내가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배우고 터득한 것은 섭섭, 씁쓸, 실망, 유감, 허탈, 원망, 미움, 위선, 비겁 같은 단어들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도, 사람이 걸어야 할 바른 길, 사회와 역사적 존재로서 인간이 가진 가치의 지향, 이것이 있다면 설사 불가능한 길이라도 그냥 가야 하는 것이다.” -담금질, 안희정의 새로운 시작 中



생각을 적고 기록하는 습관을 갖고 자신을 다독여온 만큼 주변에선 ‘너무 강직한’ 성품에 갑갑하다는 평도 있다. 노동 시간, 임금 구조 등 체제에 구체적이고 시원한 답변을 내놓기 보다 ‘사회적 합의’, ‘불균형 구조를 해소하겠다’ 등 애매하고 추상적인 답변을 내놓기 때문이다. 안희정 스스로도 “제 말이 어렵다고 디스하는 분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릴레이 연설에서 토로하기도 했다. 도올 김용옥 선생도 안 지사와의 인터뷰에서 “누가 자네보고 ‘진지빤쓰’라고 말하더라”며 “진지한 것도 좋지만 유머 감각을 더 배우게”라고 조언했다.



충남도지사로 중앙정부와 부딪힐 일이 많았던 안 지사는 이번 공약에서도 지방자치를 강화하겠단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많은 권한이 집중되면 최순실 국정농단 같은 사태가 또 벌어질 수 있다며 ‘지방자치 자치분권’을 강조한다. 총리지명권도 국회에 넘겨야 한다는 파격적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의 패착을 수렴하고 보수와 진보를 막론한 ‘대연정’을 수립하겠단 포부를 밝히고 있다. 얼핏 보면 현실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그의 공약이 신기루로 끝나지 않기 위해선 거대한 주제들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녹여질 수 있는지가 중요한 열쇠로 보인다. 앞으로 수첩 속에 고이 적었던 감정들을 대중에게 공개해 그간의 고민에 공감을 얻어 보는 건 어떨까.

/정수현기자 성윤지인턴기자 valu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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