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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희의 똑똑!일본] 책 아닌 체험을 파는 서점

③종이책 쇠락에 日 서점이 살아남는 법

책 매출 급감 속 ‘출판 부활’ 시도 잇따라

침대 둔 북 아파트, 입장료 내는 서점 등

공간의 가치·특별한 경험 강조한 전략

‘여기서만 팔아요’ 소장욕 자극 기획도

최근 종영한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는 책 파쇄 공장이 등장한다. 출판사 편집장인 주인공은 ‘1톤 트럭 두 대 분량을 파쇄하고 책 서른 권 정도를 살 수 있는 돈을 받는다’고 읊조린다. 직원이 “멀쩡한 책을… 파쇄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느냐”고 묻자 주인공은 말한다. “안 팔리는 책을 계속 창고에 쌓아둘 순 없어요. 보관비가 드니까. 그나마 이렇게 폐지 처리하면 종잇값이라도 받을 테니.”

활자는 영상이, 종이책은 스마트폰이 대체한 세상이다. 사람들은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다. 베스트셀러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세상에 나왔지만, 얼마 안 가 ‘보관비 부담’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폐지로 생을 마감하는 책들. 독서 인구가 줄어들수록 이런 책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전 세계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국가’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은 1인당 월평균 독서량이 6.1권(OECD)으로 미국과 선두를 다투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종이책 부진’의 바람을 피해가지 못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일본 서점 조사기관 알 미디어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내 종이책 총 매출액은 1조 2,800억엔으로 14년째 줄었다. 서점 수도 1만 2,026개로 20년 전과 비교해 반 토막 났다. 이마저도 ‘잡지 스탠드’ 형태의 매장 없는 서점까지 포함한 수치라 점포 형태로 책을 취급하는 곳은 1만 개 미만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본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츠타야 북 아파트 먼트 전경/송주희기자




문 닫는 곳도 많지만, ‘서점 부활’, ‘종이 왕국 사수’를 위한 시도는 일본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핵심은 ‘체험하고 싶은 공간으로서의 서점’에 있다.

책 하면 떠오르는 일본의 대표 브랜드 ‘츠타야’는 신주쿠에 ‘북 아파트먼트’를 선보이며 국내는 물론 해외 관광객들까지 사로잡고 있다. 도쿄의 대표 번화가 신주쿠에 들어선 츠타야 북 아파트먼트는 한 건물의 2~6층을 쓴다. 2~3층은 스타벅스와 협업해 ‘북 라운지’ 형태로 운영한다. 일반 스타벅스 매장과 똑같이 음료 주문이 가능하지만, 조용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가 연출돼 있다. 4층부터는 별도의 비용을 내고 사용해야 한다. 이용 시간, 사용 공간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는데, 캡슐 호텔처럼 개인 공간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여성 전용층을 따로 이용할 수도 있다. 기본 비용만 내도 음료와 차를 무료로 마시면서 구비된 책을 읽는 게 가능하다. 12시간 이용권이 있는 데다 탈의실과 샤워 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휴가나 주말을 맞은 학생·직장인들이 장시간 머물며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츠타야 북 아파트먼트에서는 캡슐 호텔 콘셉트의 개인 공간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개인 공간 외부 모습(왼쪽)과 내부/송주희기자


특히 ‘공동 업무 공간’은 인근 회사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다. 컴퓨터 사용 공간은 물론 곳곳에 소규모 대화를 할 수 있는 테이블이 마련돼 있어 점심 전후 간단히 회의하러 이곳을 찾는 직장인들을 자주 보게 된다. 북 아파트먼트 관계자는 “20, 30대 학생·직장인들이 주로 방문하지만, 호기심에 왔다가 책을 읽고 가는 사람들은 물론 이곳을 체험해보고 싶어 단체로 찾아오는 관광객들도 있다”고 전했다.

도쿄의 또 다른 명소 롯폰기에는 입장료를 내는 서점이 있다. 금액도 우리 돈으로 1만 5,000원(1,500엔)이 조금 넘어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주말에는 입장에 제한을 둘 만큼 그야말로 ‘핫한’ 장소다. 2018년 12월 문을 연 이곳은 바로 ‘책과 만나는 책방’을 내건 복합 문화공간 분키츠(文喫). 40여 년 운영하던 아오야마 북 센터가 불황 탓에 폐업한 뒤 그 자리에 다시 문을 열었다. 3만 권의 책을 보유한 이곳은 입장료를 내면 이용 시간제한 없이 다양한 서적을 읽으며 쉴 수 있다. 커피와 차는 무료다. 이곳의 특징은 각각의 책은 단 한 권씩 존재하고, 진열은 특별한 구분 없이 자유자재라는 점. 책과의 우연한 만남을 강조하는 서점의 철학이 반영됐다. 독특한 콘셉트와 함께 카페·전시실 등이 함께 마련돼 있다 보니 굳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이곳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오는 고객도 많다고. 분키츠가 지향하는 바도 여기에 있다. 이런 식의 만남으로 독서의 즐거움, 책과의 만남의 계기를 제공해 ‘책 읽지 않는 사람들과의 접점’을 확대해나간다는 것이다.



무인양품 긴자점의 무지북스 매장/송주희기자


무지북스의 문고본 시리즈 ‘사람과 물건’ 코너/송주희기자


츠타야와 분키츠가 ‘공간의 재해석’에 방점을 뒀다면 책의 소장 가치에 집중한 ‘서적의 굿즈화’도 활발하다. 무지(MUJI)북스의 문고본 시리즈 ‘사람과 물건’이 대표적이다. 사람과 물건은 일본의 영화 감독이나 작가, 사진가 등 유명 인사의 애용품과 삶의 이야기를 얇은 책으로 만든 기획이다. 생활 용품 기업이라는 무지의 기본 정체성을 책에 적용한 이 전략은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무지북스 긴자점 직원인 시노하라(篠原)씨는 “책이 얇아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고, 읽는 데도 부담이 없어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도쿄 복합문화공간 킷테에 들어선 마루노우치 리딩스타일도 지난해까지 ‘버스데이 분코(생일 문고)’라는 시리즈로 화제를 모았다. 1월부터 12월까지 각 날짜에 생일인 작가의 작품을 엄선한 이 시리즈는 ‘본인 또는 특정인의 생일과 같은 작가의 작품을 읽거나 선물한다’는 콘셉트로 마케팅을 펼쳤다. 책이라는 지적 콘텐츠에 ‘놀이’라는 요소를 결합해 선물로서의 가치와 재미를 부각한 것이다. 이 밖에도 유명 서점인 키노쿠니야(오테마치 빌딩점)와 마루제(마루노우치 본점), 산세이도(유라쿠초점)은 인근 미술관과 ‘새로운 나 서점’이라는 가상 책방의 협력 서점으로 참여하며 ‘새로운 나를 만나는 계기’가 될 만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지성의 산물 책. 그러나 이 역시 누군가에 의해 소비되는 상품임은 부인할 수 없다. 고객과 서적의 만남을 주선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일본 곳곳에서 펼쳐지는 이유다. 공간(서점)과 재화(책)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특별한 경험과 감동을 만들어내려는 이런 노력 덕에 출판 왕국은 오늘도 쇠락이 아닌 진화의 길을 걷고 있다.
/도쿄=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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