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목요일 아침에] 정의란 무엇인가

임석훈 논설위원

평등·공정·정의 외쳐온 文정부

조국 임명과정서 환상 무너지자

실망·허탈감 넘어 분노한 국민

앞으로 누군들 정의를 믿겠는가





#. 2010년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쓴 책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가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5월 말 출간되자마자 불티나게 나가더니 불과 11개월 만에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 현재까지 200만부 남짓의 판매액을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현지에서 10만부 남짓 판매된 것을 감안하면 가히 폭발적인 판매 실적이라 할 만하다.

이 책은 샌델 교수가 하버드대에서 한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정의가 무엇인지를 정리한 것이다. 정의와 관련된 갖가지 딜레마와 공리주의, 자유주의,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공동체주의 등 정치철학을 다뤘다. 정치론 개설에 가까운 인문학 서적이 유독 한국에서 대히트를 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저자인 샌델 교수조차도 한국의 놀라운 열기를 신기하게 생각했을 정도다.

특별강연을 위해 방한한 샌델 교수가 찾은 답은 명료했다. “한국사회가 정의에 대해 갈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회 전반에 정의가 부족해 한국 국민들이 정의를 절실하게 원하고 그래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논한 자신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봤다. 정의를 향한 한국 사회의 갈망이 책에 투영됐다는 진단이다.

#.지난해 6월28일 리얼미터가 주간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정의당 지지율(10.1%). 정의당 창당 이후 처음으로 10%를 돌파했다. 주요 현안마다 독자적인 행보를 보인 것이 지지층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후 정의당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7월 2주차에 12.4%로 오차범위 내에서 자유한국당을 따라잡더니 8월 1주차 한국갤럽 조사에서 15%까지 치솟아 급기야 한국당을 제치고 처음으로 2위로 올라섰다. 쟁점 현안에 대해 정의당만의 목소리를 내면서 진보성향 유권자 다수를 흡수한 덕분이었다.



정의당이 창당한 때는 ‘정의란 무엇인가’ 신드롬의 여운이 남아 있던 2012년 10월. 애초 당명은 진보정의당이었지만 이듬해 7월 당원투표를 거쳐 정의당(Justice Party)으로 변경했다. 정의에 목마른 국민들의 열망을 간파한 선택이었다. 2016년 9월 임시 당대회에서 민주사회당으로 새 당명을 잠정 결정했으나 당원들이 정의당을 최종 선택할 정도로 ‘정의’라는 단어는 정의당에 각별했다.

#. 2017년 5월10일 국회의사당에서 진행된 취임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전했다. 그 가운데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문구가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롭기까지 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다짐에 국민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집권 초반 대통령 지지율이 80%를 넘나든 것은 이런 기대가 반영된 결과다. 대통령 최측근인 양정철 민주연구원장도 대선 직후 백의종군을 선언하면서 페이스북에 “우리는 저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현 정부가 이전 정부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정의롭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과정에서 국민들의 정의에 대한 환상은 무참히 무너졌다. 위선과 이기주의의 외피를 쓴 정의에 실망·허탈감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정의의 사도처럼 행세하던 사람들, 이른바 진보세력의 이중성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정의는 죽었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조 후보자의 언행 불일치는 많은 국민을 실망시켰다”면서도 임명을 묵인한 정의당을 향해서는 당명에서 정의를 빼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당리당략에 빠져 정의를 저버렸다는 것이다.

‘조국 사태’로 드러난 가장 큰 안타까움은 정의를 갈구하는 국민들이 기댈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현실이다. 앞으로 누가 정의를 외치더라도 국민들은 귓등으로 흘려 들을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이 휩쓴 지 10년째인 지금, 정의가 무엇이고 지금까지 믿어왔던 정의가 과연 정의였을까 다시 돌아보게 된다. /shi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