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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新관치금융'이 어른거린다

홍준석 금융부장

DLF사태 정상참작 사유에도

결과만 따지며 '답정너' 중징계

금융권 혁신 움직임 위축될 판

당국, 규제개선부터 노력해야





설마했는데 금융당국은 ‘중징계’(문책경고)의 칼을 여지없이 휘둘렀다. 구멍가게도 아니고 직원 수만 수만명인 거대 금융그룹을 이끄는 수장들을 보란 듯이 베었다. 사실 우리·하나은행은 세 차례의 파생결합펀드(DLF)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최고경영자(CEO) 중징계에 대한 근거 부족과 지배구조 리스크 등을 내세우며 나름 제재완화에 기대를 걸었다. 1. 지배구조법에 내부통제가 미흡했다고 CEO를 징계할 수 있는 직접적 조항이 없고, 2. 2017년 감사원이 금융감독원에 지적한 것처럼 규정을 포괄적으로 해석해 제재하면 안 되고, 3. 상품 판매의 의사 결정에 직접 개입하지 않은 CEO에게 책임을 지우는 처벌은 과도하고, 4. 사태 직후 피해자 보상 등 빠른 사후 조치가 이뤄진 점 등 정상참작 사유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은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였다. 세 차례의 제재심과 마지막 날 밤늦게 결과가 나온 것도 모두 중징계를 포장하기 위한 당국의 쇼잉이 아니었느냐는 항변도 들린다. 심지어 ‘윤석헌식 신(新)관치금융’이 발현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의 지팡이는 시장에 경고를 주기 위해서인지, 금융사를 길들이기 위한 것인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인지, 강력한 처벌에만 방점이 찍힌 듯하다”며 “불완전판매에 대한 엄벌 의지가 강하더라도 금융사를 너무 약탈자로 대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2013년 대법원 판결이 끝난 지 5년 뒤 느닷없이 키코를 재소환해 은행에 배상을 압박하는 모습도 신관치금융의 단면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관치금융’은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2003년 카드채 사태 때(당시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국장 시절)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면서 회자됐다. 하지만 이는 부당한 간섭이 아니라 시장의 자율기능이 무너졌을 때 어쩔 수 없이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당국이 나서야 한다는 뜻이었다. 2012년 금융위원장이 돼서는 “이제 관치금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고 지난해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관치금융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런 마당에 10년 가까이 흐른 금융시장에서 관치금융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지금도 관은 치해야 하는 것이냐”는 사람들은 CEO를 날려야만 시장에 경각심을 줄 수 있냐고 따져 묻는다. 징계 수위를 낮춰도 메시지를 줄 수 있는데 커다란 부작용을 초래하는 중징계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뭔지 의아해한다. 금융시장은 눈부시게 변화하고 있는데 왜 당국만 과거 그대로냐고 답답해한다. 징계보다 선진금융으로 가기 위한 제도 및 규제 개선 등이 우선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번 처벌로 인해 금융권에 혁신금융의 바람이 움츠러들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글로벌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끊임없이 모험하고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데 결과만을 놓고 손바닥 뒤집듯이 CEO에게 강한 책임을 묻는다면 누가 앞장서겠느냐는 것이다. 보신주의가 그 자리를 꿰찰 건 명약관화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금융을 지주 출범 1년 만에 안착시키고, 글로벌 금융그룹으로 키워보겠다는 손태승 회장의 꿈도 부서질 위기에 놓였다. 차기 하나금융 회장 1순위인 함영주 부회장의 앞날도 불투명해졌다. 양 사의 지배구조가 뿌리째 흔들리는 것이다. 사실상 당국의 금융그룹 회장 인사개입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논어 위정편 2절에는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 도지이덕, 제지이례, 유치차격(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구절이 있다. “법을 우선시해 계산기 두드리듯 형벌을 산정한다면 백성들은 빠져나가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형벌로만 다스리는 게 아니라 덕과 예로써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다. 금융당국이 지나친 감독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2020년 금융시장에 적합한 덕목은 무엇인지 곰곰이 되새겨볼 시점이다. jsh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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