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쉽게 속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치킨 타코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진짜 닭고기의 맛과 식감을 느꼈습니다. 이것은 음식의 미래입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지난 2013년 치킨 타코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이 짧은 글이 주목받았던 이유는 단순히 치킨 타코의 맛을 소개하는 내용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100% 식물로 만든 ‘닭고기 없는 치킨 타코’가 주인공이었다. 빌 게이츠는 ‘식물 치킨’을 만든 비욘드미트에 곧바로 투자를 결정했다.
빌 게이츠도 속은 식물고기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핫’한 푸드테크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빌 게이츠와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등 전 세계 유명인의 투자를 받은 비욘드미트는 지난해 5월 나스닥에 상장된 후 시가총액 8조원을 돌파했다. 대체육 시장의 양대 산맥인 임파서블푸드의 기업가치도 3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최근 미국 출장 기간에 여러 가게의 다양한 햄버거 메뉴 사이에 껴 있는 비욘드미트·임파서블푸드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양사의 ‘고기 없는 버거’를 먹어보니 식물 치킨을 진짜 닭고기로 생각한 빌 게이츠처럼 일반 맥도날드·버거킹 햄버거와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다만 햄버거와 똑같은 맛인데도 담백해서 좋았다고 결론 내린 내 평가와는 달리 함께 먹은 기자는 “육즙과 기름기가 흐르는 묵직한 맛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식물고기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해외에 비해 국내 대체육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 수준이다. 하지만 디보션푸드·지구인컴퍼니 등 식물고기를 개발한 스타트업들이 하나둘씩 나타나면서 주목받고 있다. 디보션푸드는 식물 원료로 고기의 단백질·지방·피까지 대체한 식물고기를 개발해낸 스타트업이다. 이를 바탕으로 음식 성향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식물성 고기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음식을 넘어 소위 ‘육식주의자’들까지 끌어들일 만큼 식물고기 개발 열풍이 부는 배경에는 환경오염이 있다. 축산업은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의 18%를 차지하고 있다. 박형수 디보션푸드 대표는 “축산업을 할 때 필요한 에너지양보다 대체육의 에너지양이 적어 환경오염의 가능성이 낮다”고 밝혔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나 조류독감 등 가축 전염병으로부터도 자유롭다는 장점도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박 대표는 “원하는 영양소를 식물고기에 추가할 수 있기 때문에 나중에는 치료까지 가능한 제품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단 현 단계에서 대체육 업체들은 진짜 고기와 최대한 비슷한 맛·풍미·식감을 구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식물고기의 맛은 실제 고기를 얼마나 따라잡았을까. 식물고기와 소고기를 블라인드 테스트해 본다면 정말 두 가지를 구분하기 어려울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패스트푸드 한 곳의 햄버거와 비욘드미트로 만든 버거, 그리고 디보션푸드의 식물고기로 만든 버거 세 가지를 놓고 직접 비교해봤다. 디보션푸드의 박 대표와 이용민 이사가 세 가지 버거의 순서를 몰래 섞은 뒤 기대감 반, 긴장감 반의 얼굴로 맛 평가를 기다렸다. 어떤 버거가 진짜 소고기 패티를 사용했는지 알 수 없는 블라인드 테스트이다 보니 시식하는 입장에서도 의도치 않게 개발진의 면전에 대고 디보션푸드 버거가 제일 맛없다고 말하는 상황이 발생할까 걱정이 앞섰다. 일단 겉모습만으로는 세 가지 버거의 정체를 구별하기 어려운 것은 분명했다.
결과적으로는 가장 맛있다고 콕 찍은 버거는 디보션푸드의 버거였다. 한 입 먹자마자 고기로 착각할 만한 육즙이 입안을 감돌았다. 소스의 부드러움, 야채의 아삭함과 구별되는 패티의 식감이 씹을 때마다 더 도드라졌다. 질 좋은 수제 버거를 먹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반면 의외로 가장 별로였던 버거는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였다. 한 입 먹는 순간 치아 사이로 푸석한 패티가 들어오자 저절로 콜라 생각이 났다. 비욘드미트의 버거는 냉동 상태의 패티를 해동시켜 버거로 만들어서 그런지 몇 번 씹기도 전에 부드럽게 사라져버렸다.
블라인드 테스트에 함께 참여한 다른 기자는 디보션푸드 버거와 패스트푸드 햄버거는 거의 비슷한 식감을 보였지만 비욘드미트의 버거는 씹는 맛이 고기와 너무 동떨어졌다는 평가를 내렸다.
식물고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임파서블푸드는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0’에서 식물성 돼지고기와 소시지를 선보였다. 이를 활용해 만든 반미·탄탄면·미트볼 등의 요리는 전시회 내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식물고기의 가능성이 단지 소고기 패티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임파서블푸드의 전시장에는 미래 식품을 맛보기 위해 매일 전 세계 참석자들이 길게 줄을 설 정도였다. 전시장에 있던 임파서블푸드의 한 관계자는 “일단 맛을 보면 다들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대체육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자신했다.
디보션푸드는 올해 하반기 국내 유명 식품회사들과 손잡고 식물고기를 활용한 소스와 만두류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는 물에 넣었을 때 부서져 사라져버리는 다른 식물성 고기와 달리 물에도 강한 디보션푸드의 강점을 활용한 제품이다.
디보션푸드는 또 임파서블푸드처럼 소고기를 넘어 다른 고기 종류도 식물성으로 대체하는 개발을 진행 중이다. 박 대표는 “지금은 소고기만 하고 있지만 돼지고기·닭고기·참치까지 식감을 구현해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인공첨가물이나 유전자변형 농산물(GMO)을 빼고 완전한 천연재료로 만든 대체육을 내놓을 계획이다.
박 대표는 “해외 식물고기는 화학첨가물을 25종 정도 보통 사용하지만 디보션푸드는 거의 쓰지 않는다”며 “천연첨가물을 100% 사용하는 공법을 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디보션푸드의 목표는 일반 슈퍼 정육 코너에서도 손쉽게 대체육을 살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타깃 고객층도 채식주의자가 아닌 건강과 영양성분 등에 관심이 많은 2030세대다.
그 목표처럼 가까운 미래에 소고기·돼지고기를 고르듯이 식물고기를 집어들고 다양한 요리에 활용하게 될까. 현재까지 푸드테크의 발전 방향으로만 봤을 때 불가능한 일은 아닌 듯싶다.
/권경원기자·영상 정민수기자 nahere@sedaily.com
<셰프가 만든 대체고기...“소·돼지고기부터 참치까지 식물로 다 가능합니다”>
박형수 디보션푸드 대표 인터뷰
디보션푸드를 처음 만든 박형수 대표의 원래 직업은 셰프였다. 미국 시카고에서 요리를 하던 시기, 조류독감과 같은 축산물로 인한 전염병과 환경오염에 대한 고민이 식물성 고기 개발로 이어졌다. 박 대표는 “다음 세대에 더 나은 환경을 주려면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체육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대체육을 만드는 과정은 “A부터 Z까지 어려운 일의 연속”이었다. 박 대표는 “식물성 단백질, 지방, 피 등 기존에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 모든 경우의 수를 대입하는 식으로 개발했기 때문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금액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지난 2017년 10월부터 시작된 연구개발이 완료되자 디보션푸드는 국내에서 가장 주목 받는 푸드테크 스타트업 중 한 곳으로 떠올랐다. 지난 2018년 10월 초기 투자를 열자마자 한 달 만에 50군데 이상의 투자자들이 몰려들었다.
디보션푸드가 만든 식물성 고기의 차별점은 한식 요리에 적합하도록 습식에 강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햄버거 패티처럼 굽는 요리가 많은 서양과 달리 한식은 끓이고 삶는 요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임파서블푸드·비욘드미트는 물에 약하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박 대표는 “물에 (식물 고기를) 넣고 끓이면 없어지는 문제를 초기부터 발견하고 습식에도 강한 신소재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국내 유명 식품회사들과 미트소스 등 소스류, 만두 등을 함께 출시할 예정이다.
영양 측면에서도 화학첨가물을 최대한 배제하는 대신 천연첨가물을 사용하고 있다. 박 대표는 “미국에선 유전자변형 농산물(GMO)이나 인공첨가물을 사용한 대체육이 진짜 건강한지 논란이 있다”라며 “디보션푸드는 해외 제품에 비해 인공첨가물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디보션푸드는 2월 중 투자를 유치한 뒤 안정적으로 식물 고기를 공장을 확보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지난해 식품 안정성 검사를 마치고 공장이 들어갈 부지도 알아본 상태”라며 “투자를 받은 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안전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성장하고 싶다”고 밝혔다.
소고기에 그치지 않고 다른 육류를 대체하는 연구도 함께 진행 중이다.
박 대표는 “돼지고기, 닭고기, 참치의 느낌도 식감을 잡아 놓은 상태”라며 “지금은 소고기만 하고 있지만 여러 개로 범위를 늘리려 시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경원기자 na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