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심금 울리는 노랫말은 '골방'서 나오죠"

■ 신간 '이 한 줄의 가사' 저자 이주엽 JNH뮤직 대표

가사엔 시대상·새로운 감성 담겨

들국화 '행진' 문학적 향기 가득

집단창작, 음악 상품성 높이지만

예술가 자의식 깎아내려 아쉬워

이주엽 JNH뮤직 대표.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릴꺼야’(들국화 ‘행진’ 중)

작사가이자 음반 기획자인 이주엽 JNH뮤직 대표가 지난달 책 ‘이 한 줄의 가사’를 출간한 데는 들국화 ‘행진’의 바로 이 가사 영향이 컸다. 최근 서울 용산구 노들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난 이 대표는 “이 한 줄이야말로 한국 가요 가사 중 단연 돋보이는 문학적인 문장이 아닐까 싶다”며 “이 가사를 필두로 글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가수 전인권의 손끝에서 탄생한 이 노랫말은 음반이 나온지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이 문장에는 예술가의 태도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있습니다.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고 불운을 피하지 않고 맞이하겠다는 각오가 담겨있죠. 음악 분야에서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몇 안 돼요. 대부분은 불우한 노후를 맞거나 불운의 언저리에서 사라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조차도 자신의 예술적 동력으로 삼겠다는, 너무나도 멋있는 문장이죠.”

이 대표 자신도 적잖은 노랫말을 직접 지었다. 1988년 한국일보 기자로 시작해 2002년부터 음악 레이블 JNH뮤직 대표로 70년대 최고의 디바 정미조,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 기타리스트 박주원, 라틴 밴드 로스 아미고스 등의 음반 제작과 매니지먼트를 하는 그는 정미조, 최백호, 말로의 음반에 주요 작사가로 참여했다.

‘무지개가 뜨는 언덕을 찾아/넓은 세상 멀리 헤매 다녔네/그 무지개 어디로 사라지고/높던 해는 기울어가네’ 지난 2016년 정미조 37년 만의 컴백 앨범 ‘37년’에 수록된 ‘귀로’의 절제되고 시적인 가사는 그의 작품이다.

‘이 한 줄의 가사’는 흔치 않게 노랫말이 주인공인 책이다. 훌륭한 노랫말은 시대상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새로운 감성을 열 수 있다. 이 대표는 “노래 가사 중 어느 한 구절이 마음에 맺힐 때가 있는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가사 속 자신만의 ‘인생의 문장’이 있을 수 있다”며 “예전부터 문학적 향기가 담긴 가사들에 많이 끌렸던 만큼 책에도 그런 가사들을 중심으로 소개했다”고 한다.



책에는 1926년 발표된 윤심덕의 ‘사의 찬미’부터 최신곡의 가사까지 모두 담겼다. ‘회사 가기 싫은 사람/장사하기 싫은 사람 모여라’ 라는 구절이 담긴 송골매의 ‘모여라’는 1990년대 개발도상국 한국 사회를 지배하던 ‘근면의 세계’에 던지는 유쾌한 돌팔매질이었다. 또 혁오의 대표곡 ‘톰보이(TOMBOY)’는 헬조선을 살아가는 청춘들을 한 줄 노랫말로 요약한다.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 가는데.’



한국 대중가요에 좋은 가사들이 많다면서도 그는 최근 가요 가사들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문어적 표현이 많이 죽고, 신변잡기의 구어체로만 많이 쓰이고 있다”며 “아이돌들이 조금 더 문학적인 언어로 가사를 표현하면 그 영향을 받는 또래 친구들이 정서적 수혜를 입는 만큼 그 부분을 더 신경 쓰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이돌 음악의 집단 창작 방식에 대한 문제도 지적했다. “가사를 나눠쓰고 곡도 같이 만들면서 음악이 평균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상품으로서의 음악은 부각하지만 예술가적 자의식은 깎아내린다”는 것이다. 한글과 영어가 섞인 가사에 대해서도 “두 개의 언어적 상상을 한다는 게 미학적 일관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이 대표가 생각하는 좋은 가사는 무엇일까. 그는 “봉준호 감독이 말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에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며 “가장 개인화된 감정에 집중하고 절실하게 표현해낼 때 가장 큰 보편성을 갖는다. “‘이 정도 쓰면 대박이 나겠지’하고 써서 성공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여전히 가장 좋은 노래와 음악들은 개인의 ‘골방’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자신과 1:1로 대면하는 공간이기 때문이죠. 대형 기획사의 등장으로 음악 산업이 커지고 지금의 한류가 시작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대신 실패의 확률을 줄이기 위해 깎아낸 예술성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나라가 ‘골방’을 더 많이 지켜줄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해주면 좋겠습니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이주엽 JNH뮤직 대표.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