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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오늘 재난(災難)소득이 내일 재난(財難)된다

<서정명 경제부장>

공포와 절망을 파고드는 재난소득

서울·경기 등 지자체장들 현금뿌리기

기금 펑크나면 정부에 손벌릴 것 뻔해

뉴욕 월가는 韓 재정건전성 눈여겨봐

피해기업과 소상공인 등 대상 좁혀야





알베르 카뮈는 그의 소설 ‘페스트’에서 전염병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시민들의 모습을 묘사하며 “눈앞에 있지도 않은 그림자 같은 존재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고 표현했다. 고통에 짓눌린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 리유, 오랑 지역에 체류하고 있던 신문기자 랑베르, 신의 뜻을 따르자고 설교하는 파늘루 신부 등 인간 군상들은 텁텁한 한숨을 몰아쉬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카뮈는 소설 곳곳에 이렇게 적고 있다. “무역(貿易)도 역시 페스트로 죽어버리고 말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습관을 방해하거나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것에 대해서 특히 민감했다. 이 망할 놈의 병은 글쎄!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까지도 생병을 앓게 한다니까.”

지금 대한민국이 그렇다. 그의 소설 단어대로 우리는 지금 ‘감금생활’ ‘유폐’ ‘귀양살이’를 하고 있다. 희망 대신 공포와 절망이 삶을 짓누른다. 허약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것이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앞다퉈 내놓고 있는 ‘재난(災難)소득’이다. 한 줄기 빛이라도 되는 양 홍보에 열을 올린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호기롭게 브리핑을 갖고 중위소득 이하 117만7,000가구에 30만~50만원을 뿌리겠다고 한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어깨에 잔뜩 힘을 넣고 도민 1,326만5,377명 모두에게 각각 10만원씩 총 1조3,260억원을 준다고 한다. 소득과 나이 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이에 질세라 여주·광명·이천시, 울주·기장·정선군 등은 전 주민을 대상으로 하며 대전시·경북·전주시는 중위소득 80~100%에게 지원하기로 했다. 4·15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현금경쟁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곳간’을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자체 재난관리기금을 활용하면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치지만 재정에 펑크가 나면 중앙정부에 손을 벌릴 것이 뻔하다. 2차 추경에 세입부족분을 메꾸는 세입경정까지 감안하면 내년도 예산은 560조원에 육박한다. 당초 올해 재정적자 40조원, 국가채무비율 40.2% 범위에서 관리하기로 했지만 제동이 걸리지 않으면 43%까지 늘어날 수 있다. 지자체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지난해 17개 광역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51.4%에 불과하다.

지자체장들은 미국 등 선진국도 현금수당을 뿌리고 있으니 ‘우리도 못 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들과 우리는 처한 사정이 다르다. 달러는 기축통화이고 재정이 부족하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발권력을 동원해 현금을 찍어내면 된다. 지금도 세계 각국은 달러를 구하지 못해 난리다. 우리의 경우 경기침체로 세수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적자국채까지 찍어야 하기 때문에 국가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뉴욕 월가 투자자들이 한국 경제의 바로미터로 여기는 경상수지와 재정건전성이 모두 타격을 받으면서 자금이탈로 이어질 수 있는 엄중한 상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맞서기 위해서는 다소 확장재정이 불가피하지만 피해기업과 소상공인·빈곤층을 겨냥한 핀셋 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오죽했으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재난소득을 일컬어 ‘엇박자 정책’이라고 운운했겠는가. 중복지원 우려도 해소해야 한다. 정부가 제시하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보니 중앙정부·광역지자체·기초지자체가 겹치기 지원에 나서는 경우도 나올 수 있다. ‘여기는 많이 받았네, 저기는 적게 받았네’ 하며 지자체간 위화감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다음 주 주재하는 3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재난소득 문제가 다뤄진다고 한다. 청와대와 정부가 중심을 잡고 재난소득 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포퓰리즘 경쟁을 벌이고 있는 지자체장들에게 ‘이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어줘야 한다. 오늘 달콤한 재난(災難)소득이 내일 쓰디쓴 재정난(財政難)이 된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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