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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 오디세이] 日 자민당 55년 지배체제 무너트린 리쿠르트 게이트

사실(fact)을 쫒는 기자들의 끈질긴 추적

권력 감시, 경종 울리는 역할 계속 돼야

1988년 6월 18일 아사히신문 사회면 톱 기사. 리쿠르트 사건의 시작을 알린 기사다./월간 신문과방송 216호 캡쳐




1988년 6월 18일. 아사히신문 사회 면에는 ‘리쿠르트, 가와사키(川 崎)시에 유치될 때 부시장이 관련 주식 취득”이라는 제목의 톱 기사가 실렸다. 리쿠르트사가 가와사키역 인근 재개발 사업 편의를 봐 달라며 부동산 자회사인 리쿠르트 코스모스사의 미공개 주식을 부시장에게 뇌물로 제공했다는 내용이다. 부시장은 차기 시장후보로까지 거론되던 인물. 양도받은 주식의 매각 이익이 1억엔에 이르고 주식 구입 자금도 리쿠르트 금융 자회사에서 융자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보도 여파로 이틀 뒤 부시장은 해직됐다. 이때만 해도 리쿠르트 사건은 일본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정부패 사건의 하나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후 아사히신문이 정관계 인사들도 관련 주식을 취득했다는 후속 보도를 내놓으며 일본 사회는 말 그대로 발칵 뒤집혔다. 사건은 정·관·언론계 유착 게이트로 비화하며 결국 검찰 조사로 이어졌다. 리쿠르트 게이트 수사는 성역 없는 수사로 유명한 도쿄지검 특수부가 맡았다. 이 사건으로 다케시다 노보루 총리와 차기 총리 후보였던 미야자와 부수상 겸 대장상이 사임했다. 에조에 히로마사 리쿠르트 회장 등 정관계 인사들도 줄줄이 구속됐다. 결국 다케시다 정권은 무너졌고 자유민주당 일당 지배 55년 체제가 붕괴 됐다. 사실(fact)를 쫓는 기자들의 집요한 추적이 정권마저 바꾼 것이다. 이른바 ‘록히드 스캔들’과 함께 일본 현대 정치사의 양대 정경유착 사건으로 불리는 ‘리쿠르트 게이트’ 특종의 전말이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했던 리쿠르트 게이트 특종=1988년 3월 23일 아사히신문 요코하마지국. 경찰 담당인 스즈키 게이치는 가와사키시 고위 공무원이 경찰 내사를 받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데스크인 야마모토 히로시에게 보고했다. 사회부 15년차 베테랑 기자인 야마모토는 즉시 경찰 수사에 대한 취재와 함께 가와사키 시청, 리쿠루트사에 대한 취재를 지시했다. 그러나 이들의 취재가 사건의 핵심에 거의 접근했을 무렵인 5월 17일 경찰은 “법적으로 사건이 되지 않는다”며 수사를 종결지었다.

5월 18일 저녁 11시. 데스크인 야마모토와 기자들이 지국에 모였다. 야마모토는 “경찰 수사는 끝났다. 그러나 리쿠르트와 가와사키시 부시장인 고마스 히데히로의 관계는 아무리 봐도 수상하다. 주식과 관련된 의혹은 지금까지 몇 차례 있었지만 모두 소문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여기서 우리가 손을 뗀다면 모든 것이 암흑 속에 묻혀 버릴 것이다. 경찰이 손을 뗐다고 우리까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독자 취재에 착수했다. 등기부등본 복사, 유가증권 보고서 분석, 리크루트사의 사업 확장 및 주가 추이, 관련 인물에 대한 데이터 수집, 이들 정보에 대한 분석 및 데이터베이스화, 차트 작성 등 기나긴 탐사보도 여정이 시작됐다.

5월 24일. 취재팀은 리쿠르트 코스모스 주식 거래에 관한 자료를 관계자가 갖고 있는 것 같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자료만 확보된다면 취재가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된다 . 기자들은 관계자의 집을 저녁 늦게 방문했다가 문전박대를 받는 등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결국 자료를 입수하는데 성공했다. 자료에는 리루르트 코스모스 주식을 양도로 받은 주주 개인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 물론 명단에는 가와사키시 부시장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었다.

5월 26일. 확보된 자료를 기초로 부시장에 대한 취재 공세가 시작됐다. 사실 확인에 들어간 것이다. 처음에는 미공개 주식 취득 사실을 완강하게 부인하던 부시장도 결국 사실을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그런 사실이 없다”며 발뺌을 하더니 “차기 시장 후보에 입후보하려는 나에 대한 정치적 모략이다”에서 “나는 정치적 야망이 없다. 노후를 위해 주식을 산 것일 뿐”이라는 답변까지 끌어낸다. 기자들은 동시에 리쿠르트사가 왜 막대한 시세차익이 예상되는 미공개 주식을 특정 인물들에게 사전 양도했는지 끈질기게 추적했다.

6월 14일. 익명의 중년 남자로부터 “리쿠르트사 의혹을 제일 열심히 취재하는 신문사에 꼭 보여줄 것이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이 남자가 건네준 서류에는 리쿠르트 코스모스가 미공개 주식을 양도한 경위가 적혀 있었다. 1984년 12월 100명에게 주식을 사도록 권유했고 이 중 76명이 실제 주식을 샀다는 증거였다. 이중 46명은 리쿠르트사의 관계사인 퍼스트 파이낸스에서 융자까지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명단에는 자민당 의원인 모리 요시로가 포함되어 있었다. 정치인의 이름은 모리 한 명 뿐이었지만 이는 정계 전반으로 사건이 확대될 수 있는 핵심 단서였다.



6월 18일. 결국 아사히신문은 사회면 톱으로 리쿠르트 사건을 첫 보도 한다. 보도 이후 NHK가 톱 뉴스로 뒤따랐고 석간신문들도 아사히 기사를 인용하기 시작했다. 6월 20일. 고마쓰 부시장은 해직됐다. 그러나 취재팀은 해산되지 않았다. 그 동안 취재를 통해 확보한 자료로 모리 의원 외에도 수 많은 중견 정치인들이 미공개 주식을 양도 받아 수천 만엔에서 억엔 대에 이르는 시세차익을 챙겼다는 사실을 확보했다.

1988년 6월 30일 아사히신문 사회면 톱 기사. 전현직 거물 정치인들의 미공개 주식 취득 사실을 보도했다. 이후 리쿠르트 스캔들은 정관계 게이트로 비화했다. /월간 신문과 방송 216호 캡쳐


6월 30일. 아사히신문은 다시 사회면 톱 기사로 ‘리쿠르트 미공개 주식을 정치권에서도 샀다’는 보도와 함께 사설을 통해 진실 규명을 촉구했다. 사건이 정치권으로 확대되자 결국 에조에 회장은 7월 7일 스스로 회장직을 사임한다. 약 3개월에 걸친 요코하마지국의 탐사취재와 보도가 정점을 찍는 순간이었다.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이후 취재는 도쿄 본사에서 맡게 된다. (※일지별 세부 팩트와 내용은 ‘월간 신문과 방송 216호에 실린 김세환 당시 경향신문 일본 특파원의 IPI 국제회의 발표논문 요지를 인용해 정리했음을 밝힙니다.)

◇리쿠르트 게이트 특종 이후=리쿠르트사는 취업정보사에서 시작해 금융, 리조트 사업으로까지 비약적으로 사세를 확장하던 중 아사히 신문의 특종으로 나락으로 추락했다. 다케시다 당시 총리를 비롯해 정관계 유력인사 76명에게 미공개 주식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전 현직 당 수뇌부 등이 대거 연루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자민당은 다음 해 열린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했다. 리쿠르트사 창업주인 에조에는 1992년 본인이 보유한 지분을 매각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리쿠르트 게이트는 사건의 파장과 중요성 때문에 검찰의 기소 이후 무려 300회에 가까운 재판이 진행됐다. 희대의 정경 유착 사건에 대해 법원은 단죄한다. 에조에씨 역시 기나긴 재판 공방 끝에 2003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리크루트 게이트 이후 일본 정계에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선거제도 개혁이나 정치헌금 규제를 강화하는 정치자금 규정법 개정도 이뤄져 1994년에는 개혁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정경유착은 완전히 사라지 않았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리크루트 게이트에 연루됐던 정치인들도 다시 정치 무대에 복귀해 지금까지 일본 정계에서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권력자들의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그들이 은폐하는 사실을 폭로해 경종을 울리는 탐사보도의 ‘와치 독(Watch dog)’ 역할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다. /김정곤기자 mckid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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