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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경제]“WTO서 美 지지받아”...日 여론전 나선 이유는





한국과 일본이 수출 규제를 놓고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미국이 일본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은 수출규제가 국가 안보를 위해 도입된 만큼 WTO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는데 미국도 이를 지지해줬다는 겁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본과 미국의 주장은 WTO 규범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스위스 제네바 WTO 본부 분쟁해결기구(DSB)에선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한국의 패널(1심 재판부) 설치 요구와 관련된 첫 회의가 열리고 하루 뒤인 지난달 30일. 요미우리신문,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은 ‘미국이 일본의 조치가 안보를 이유로 취한 것이라면 WTO 분쟁해결 제도로 다퉈선 안 된다며 패널 설치를 반대했다’는 내용의 보도를 일제히 쏟아냈습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수출 규제를 단행하면서 ‘안보와 관련된 이유로 불가피하게 수출 규제를 실시하게 됐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습니다. WTO에서 가장 입김이 센 미국이 나서 편을 들어주자 기세등등한 모양새입니다. 정부 관계자는 “WTO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은 비공개를 원칙으로 한다”면서 “회의 중 자국에 유리한 발언이 나오자 일본 정부가 언론에 일부로 흘린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일본과 미국의 이 같은 주장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닙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21조에 따르면 안보상 필요할 경우 예외적으로 무역제재가 허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보상 이유만으로 무역제재가 무조건 정당화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WTO는 해당국이 얼마나 심각한 안보상 위기에 처했는지를 따져봅니다. 안보를 이유로 보호무역조치가 남발될 수 있으니 말이죠. WTO가 1995년 출범한 뒤 안보를 이유로 한 예외적 무역제재를 허용한 사례는 한 건 뿐입니다. 그만큼 예외 조항을 엄격히 해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안보상 예외가 인정된 판결을 볼까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무역분쟁 건인데, 러시아가 2016년 우크라이나 상품이 자국 육로를 경유하지 못하도록 봉쇄하자 우크라이나가 이를 WTO에서 제소했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GATT 21조를 인용해 예외적 조치임을 주장했는데 WTO는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양국이 당시 무력충돌에 따른 인명피해까지 발생한 급박한 상황에 처해있음을 고려한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판례를 통해 볼 때 안보상 이유로 무역제재를 정당화할 수 있는 건 ‘준전시 상황’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통상전문가들이 미국과 일본의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보는 건 이 때문입니다.

일본도 자국의 주장이 부실하다는 것을 모르진 않을 겁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무역 분쟁이 벌어질 때 일본이 제출한 의견서를 보죠. 당시 일본은 ‘경제 외적 이유로 무역을 제한하는 것이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안보를 이유로 무역 제재를 시행하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안보 이익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한다’ ‘안보 목적 조치를 하는 나라에 일정 판단 재량은 있지만, 그 조치의 정당성을 입증할 책임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헌데 일본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가 안보상 필요에 때문이라고 외치면서도 구체적인 근거를 대지 못하고 있죠. 과거의 일본이 현재 일본의 적이 된 셈이네요.



전문가들은 일본이 ‘미국이 자국 편을 들어줬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나선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WTO 규범에 따라 승소 가능성이 낮은 만큼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인데요. WTO 내에서 입김이 센 미국이 자국 편을 들어준 게 반가운 건 그래서일 테지요. 한 통상전문가는 “후쿠시마 수산물 분쟁 소송에서 한국에 진 트라우마가 여전한데 이번 판결에서마저 밀린다면 일본 정부가 감당해야할 후폭풍이 만만찮을 것”며 “법리 싸움에선 이기기 쉽지 않으니 ‘힘의 논리’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양”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은 왜 일본 편을 들까요? 미국 역시 안보상 예외를 이유로 상대국 제품에 무차별적으로 관세폭탄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꺼낸 대표적인 보호무역조치가 바로 ‘무역확장법 232조’입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외국산 수입 제품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긴급하게 수입을 제한하거나 고율의 관세를 매길 수 있도록 한 조항인데요. 트럼프 정부는 이를 활용해 수입산 철강재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고 외국산 자동차에도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정부 입장에선 안보상 예외를 엄격하게 해석하는 WTO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WTO에서 부적절 판결을 받으면 232조를 막무가내로 꺼내들기도 쉽잖을 테고요. 미국이 일본 손을 들어준 이유입니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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