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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끈 '시민운동세력 도덕성' 시험대에

유산·숙제 남기고 간 박원순

인권·사회적 약자 보호 업적에도

민주화세력 등에 큰숙제도 남겨

장례 방식·조문 놓고 진영 논란

사회통합 시급한 과제도 보여줘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위패와 영정이 13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열린 영결식 후 시청을 떠나고 있다./권욱기자




13일 영면에 든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2002년 출간한 책에 미리 게재한 유언장에서 딸과 아들에게 “인생은 돈이나 지위만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최선을 다해 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빠가 아무런 유산을 남기지 못하는 것을 오히려 큰 유산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3월 공개된 공직자 재산공개에 따르면 박 시장의 순재산은 마이너스 6억9,091만원이었다.

개인으로서 박 시장은 빚을 유산으로 남겼지만 공인으로서는 우리 사회에 많은 유산을 남기고 떠났다. 그가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3선 서울시장을 지내면서 사회 발전과 혁신에 기여한 공로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다만 성추행 의혹 속에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면서 그가 평생에 걸쳐 몸으로 실천한 사회적 약자 보호와 배려, 연대와 소통의 가치도 평가절하되는 분위기다.

박 시장의 공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뤄지겠지만 그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은 도덕성을 최고 가치로 내세우며 어느덧 우리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은 민주화·시민운동 세력에 큰 숙제를 남겼다. 또 박 시장의 장례 방식과 조문을 놓고 진영에 따라 둘로 쪼개져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모습이 재연되면서 사회 통합이 가장 시급한 과제임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박 시장이 우리 사회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을 꼽으라면 시민사회운동의 초석을 깔고 기둥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가 고(故)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만든 정의실천법조인회는 이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회의 모태가 됐다. 최근 민변의 행보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지만 과거 군사독재 시절 인권 향상과 사회적 약자 보호에 크게 기여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박 시장의 가장 큰 업적으로는 참여연대 설립이 꼽힌다. 막 걸음마를 뗐던 시민사회계가 자생하는 데 불쏘시개 역할을 주도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또 아름다운재단을 세워 우리 사회의 기부와 나눔을 확산시키는 발판을 마련했고 이는 시민사회 최초의 싱크탱크인 희망제작소 설립으로 이어졌다.

박 시장이 주도해 국회의원 낙천·낙선운동과 소액주주운동을 벌인 2000년대 초중반은 시민사회운동이 꽃을 피운 시기로 평가된다. 하지만 그가 2선으로 물러난 후 시민운동은 만개하지 못하고 오히려 쇠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시대에 따라 시민사회운동의 역할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영 논리에 갇혀 시민운동의 본래 가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활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가 스스로 권력화되면서 정치세력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지난해 우리 사회에 극심한 갈등과 분열을 야기한 ‘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나 올해 초 소모적인 진영 대립을 초래한 ‘정의기억연대 사태’에서도 책임 있는 시민단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박 시장의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날 영결식 추도사를 통해 “(박 시장은) 우리에게 새로운 일감과 공부거리를 주고 떠나갔다”면서 “박 시장의 엄청난 업적에도 우리 시민사회에는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다”고 지적했다.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성형주기자


한국 사회의 진보와 혁신을 이끌며 수많은 이정표를 세웠지만 박 시장은 떠나면서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숙제를 던졌다. 박 시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성추행 의혹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여러 성폭력 사건을 맡아 피해자를 변호하고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줄곧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해온 그였기에 성추행 의혹은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마저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여성계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사후에라도 성추행 의혹에 대한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다.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 역시 고통을 호소하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박 시장의 사망으로 인해 성추행 의혹이 제대로 규명될지는 미지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사회지도층의 성인지 감수성을 가다듬고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미경 전국여성연대 대표는 “사회 변화에 앞장서 온 사람들 안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있는데 우리 사회가 그것을 바꾸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 측은 박 시장의 장례가 진행 중이던 이날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4년간 박 시장으로부터 위력에 의한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측 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는 “부서를 옮긴 후에도 범행은 계속됐다”며 “서울시에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고 말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피해자의 고소와 동시에 서울시장에게 수사상황이 전달됐다”며 “경찰은 현재까지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이번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서울시는 제대로 된 조사단을 구성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행경·이지성·김태영·심기문기자 sain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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