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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담] '3등' DJ도 1987년 대통령 되는 요상한 美대선 제도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직선제+간선제' 독특한 선거제도에 전세계 혼란

트럼프·바이든 모두 승리 선언하는 초유의 사태

앨 고어 등 총득표 앞서고도 선거인단 뒤져 낙선

韓, 제도 수입했으면 87년 대선 노태우-DJ 2파전

노무현·박근혜는 압승 거두는 등 민의 왜곡 심해

文, 불확실성 지속 중 누가 돼도 '종전선언' 의지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당시 평민당 후보가 유세하는 모습. /연합뉴스




투표가 끝난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미국 대선 후보자들이 모두 승복하지 않으면서 미국만의 복잡한 선거 방식에 다시 한 번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직선제와 간선제를 혼용한 그 독특한 방식에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이 또 다시 혼란에 빠진 분위기다. 미국의 지리를 전혀 모르는 다른 나라 사람들도 대선 때마다 전체 득표율은 보지도 않은 채 지도에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미시간 주, 위스콘신 주 등 경합주 판세에만 눈을 이리저리 옮기는 웃지 못할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현 미국 대선 절차가 민의를 왜곡한다는 주장은 현지에서도 왕왕 나오는 편이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우리나라도 미국식 선거제도를 따랐다면 근현대사의 상당 부분이 달라졌을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간 이해 못 할 불복 사태가 한국에서도 번번이 벌어지는 것은 물론, 나라의 이념과 헌법까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미국이 아무리 민주주의 진영의 맏형을 자처하는 국가라도 선거제도만큼은 역사·문화·정서 상 우리와는 동떨어졌음을 이번 대선으로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평가다.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왼쪽) 전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美대선, 하루종일 롤러코스터 타다 모두가 ‘정신승리’

미국 대선 이후 개표가 시작된 지난 4일(한국시간).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개표 결과에 하루 종일 롤러코스터를 타야 했다. 현지 출구조사 발표 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물론 한국 등 대다수 국가들이 바이든 후보가 당연히 주요 격전지를 섭렵해 무난히 당선될 것이라고 봤다. 더욱이 바이든은 선거 전 1년 동안 어느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에 선두 자리를 내준 적이 없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둘 사이의 격차가 두 자릿수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대부분의 경합주는 극심한 혼조세를 보였다. 특히 개표 초반 트럼프가 경합주 상당수를 휩쓰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승부는 급격히 트럼프 쪽으로 기우는 것처럼 보였다. 이는 한국 여론만의 오판이 아니었다. 선거인단이 29명이나 되는 최대 경합주 플로리다가 사실상 트럼프에게 넘어가는 것으로 집계되자 CNN은 판세대로 투표가 마무리되면 트럼프가 선거인단 293명을 확보해 바이든(245명)을 제친다고 분석했다.

재반전은 각 지역 대도시 투표함이 본격적으로 개봉되면서 시작됐다. 위스콘신을 비롯해 트럼프가 앞서던 경합주가 속속 바이든에게 넘어가면서 순식간에 바이든에 유리한 상황이 조성됐다. ‘샤이 트럼프’와 ‘반(反)트럼프’의 세 대결이 치열하게 이어졌다.

그 와중에 트럼프와 바이든은 모두 자신이 선거에서 이겼다고 주장하며 혼란을 더 키웠다.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개표가 끝나지 않았지만 바이든은 승리를 확신하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홈페이지를 열었고 트럼프는 “선거 과정은 조작됐고 합법적 투표만 계산하면 내가 쉽게 이긴다”며 우편투표와 관련한 줄소송을 예고했다. 보수 절대 우위 구도인 연방대법원에서 최종 판단을 받겠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2016년 미국 마이애미에서 대통령 선거 유세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왼쪽)과 앨 고어. /연합뉴스


힐러리·고어는 총 득표 앞서고도 낙선

마치 정치 후진국에서나 벌어질 일들이 미국 대선 과정에서 나타난 배경엔 그들의 독특한 선거제도가 있다. 미국의 대통령은 승자 독식 구조의 간선제에 따라 유권자가 아닌 선거인단이 선출한다. 선거인단은 유권자들의 의사를 반영해 각 주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얻은 대선 후보를 예외 없이 밀어준다. 이는 독일 등 다른 연방제 국가들과도 전혀 다른 방식이다.

선거인단의 수는 상원 의원 100명, 하원 의원 435명을 합친 535명에 수도인 워싱턴DC 선거인단 3명을 더한 총 538명으로 구성된다. 상원 의원은 모든 주가 2명으로 동일하지만 하원 의원은 인구에 비례해 배분되므로 선거인단 수는 대체로 주별 인구 분포와 비슷하게 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전통은 개별 주가 모여 독립을 쟁취하면서 시작된 미국의 역사에 기반한다. 초창기부터 미국 대통령의 성격 자체가 개별 시민의 대표이기 이전에 각 주의 뜻을 모은 ‘연방의 대표자’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금도 각 주가 따로 자치권을 행사하며 법과 제도를 별도로 둔다.

미국의 승자 독식형 대선 방식에서는 개별 유권자의 표 가치가 한국과는 조금 다르게 계산된다. 특정 후보가 99%의 지지를 얻든, 51%의 지지를 얻든 해당 주의 선거인단 표를 모두 가져가는 까닭에 각 당 텃밭 지역에서는 경쟁자에게 아무리 열심히 투표해도 늘 ‘사(死)표’가 될 수밖에 없다. 경합주냐, 아니냐에 따라 유권자들의 표 가치는 하늘과 땅만큼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투표에 참여하려면 유권자가 직접 등록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도 우리와는 다른 부분이다.

실제로 유권자 전체 득표에서는 이기고도 선거인단 확보에서 뒤져 대선에서 떨어진 경우는 미국 역사상 총 다섯 번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00년 앨 고어 민주당 후보와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 간의 대선이다. 당시 앨 고어는 더 많은 득표를 얻고도 선거인단 숫자에서 4명 차이로 밀리며 대권의 꿈을 접어야 했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역시 유권자 투표에선 300만여 표나 앞서고도 고배를 마셨다. 득표에서는 이겼어도 선거인단 수가 트럼프 공화당 후보보다 77명이나 적었기에 누구도 힐러리가 석패했다고 보지 않았다.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거리 유세를 하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 /연합뉴스


한국에 적용하면 노무현·박근혜는 박빙 승부 아닌 압승

만약 우리도 지방분권 강화 차원에서 건국 초부터 미국식 대선을 수입해 적용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서울경제가 상·하원 양원제가 아닌 단원제를 채택하는 한국에서 시대별 지역구 의석을 기준으로 선거인단을 배정하고 역대 직선제 대선 결과에 적용해 본 결과 기존 대통령들의 우세는 대부분 유지됐다.

다만 매 대선 때마다 양자 대결로 더 압축되는 결과가 나왔다. 다자 대결 구도 아래에서 전국적으로 골고루 2등을 해 전체 1위를 한 후보가 나오더라도 미국 대선 방식 아래에서는 선거인을 한 명도 확보하지 못한, 의미 없는 후보가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의 17개 광역자치단체를 미국의 주에 대입할 경우 지난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구·경북·경남을 제외한 14개 광역자치단체 선거인단을 휩쓴 결과를 받게 된다. 국민들에게 문 대통령은 과반에 못 미치는 41.1%의 지지를 받은 지도자가 아니라 253명의 선거인단(2016년 20대 총선 지역구 기준) 중 무려 212명(83.8%)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압도적인 승리자로 각인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2위를 기록한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는 선거인을 41명밖에 확보하지 못한 게 된다. 21.4% 득표율로 3위에 오른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는 문 대통령 지지율의 절반을 넘겼음에도 어느 지역에서도 1등을 하지 못해 개표방송에서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았을 수 있다.



박빙의 승부가 펼쳐졌던 1971년, 1997년, 2002년, 2012년 대선도 선거인단 개념으로 계산하면 한쪽의 압승으로 귀결된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완전히 똑같은 광역자치단체에서 나란히 선거인단을 확보하며 상대방인 이회창 후보를 크게 제압한 게 된다. 선거인단이 가장 많은 서울과 경기 지역을 비롯해 영남권과 강원도를 제외한 모든 지역을 석권했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과 호남권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제패해 전체 선거인단 246명(2012년 19대 총선 지역구 기준) 중 168명을 확보한 게 된다. 지역 대결 구도가 본격화된 1971년 대선에선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딸과 동일하게 서울과 전남·전북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이겨 훨씬 수월하게 승리를 가져간다.

미국 방식대로였으면 이들 대통령은 모두 임기 초반부터 실제보다 민주적 정당성을 더 크게 얻은 지도자로 인식됐을 수 있다.

1987년 12월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가 서울 여의도 유세장에서 환호하는 수많은 인파들을 향해 두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7년 선거에선 3등 김대중도 대권 근접

미국식 승자 독식형 선거인단 제도를 대입할 때 가장 극적인 변화가 발생하는 선거는 지역주의 다자 구도가 극에 달했던 1987년 13대 대선이다. 당시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와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후보는 각각 36.6%, 28.0%, 27.0%, 8.1%의 총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이를 선거인단 기준으로 계산하면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전환된 1988년 13대 총선 지역구를 기준으로 각 지방에 선거인단을 배분했을 때 당선자는 그대로 노태우 후보이지만 2위와 3위는 자리를 바꾼다.

특히 노태우 후보가 전체 224명의 선거인단 중 90명을 확보한 사이 3등이었던 김대중 후보가 79명의 선거인을 모아 그 뒤를 바짝 좇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김대중 후보가 선거인단이 가장 많은 서울에서 1등을 차지한 효과다. 당시 김대중·노태우·김영삼 후보의 서울 득표율은 각각 32.6%, 30.0%, 29.1% 등으로 엇비슷했지만 승자 독식 제도 아래에서는 김대중 후보가 42명의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가게 된다.

반면 2등이었던 김영삼 후보는 부산과 경남에서만 겨우 37명의 선거인을 확보해 4위인 김종필 후보(18명)와 함께 군소후보로 전락한다. 미국식이었다면 선거 구도가 더 일찌감치 양강으로 좁혀졌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인구 비례 계산에서 당시 대도시들이 정치적 이유로 손해를 본 부분까지 조정할 경우 김대중 후보는 고작 27.0%만 득표하고도 노태우 후보까지 제칠 수 있게 된다. 서울의 선거인단 수를 미국의 독립된 주처럼 인구 비율(당시 전체 인구의 25%)에 가감 없이 맞추면 그 수는 42명이 아니라 56명까지 늘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 인구는 경기도 인구의 두 배에 달할 정도로 많았으나, 지역구 배분은 시골 지역일수록 훨씬 유리하게 이뤄졌다. 노태우·김영삼 후보는 서울에서 얻은 160만 표 이상을 모두 허공에 날려 엄청난 타격을 입지만, 영남·충청·강원권에서 거의 표를 얻지 못한 김대중 후보는 패배 지역 표를 모조리 사표로 처리해도 극히 적은 손실만 입는다.

이른바 김대중 전 대통령의 ‘4자 필승론’은 승자 독식 선거인단 제도에서 더 빛을 발할 수 있던 셈이다. 역사가 이렇게 바뀌었다면 첫 남북정상회담의 상대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아닌 김일성 주석이 됐을지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文대통령, 누가 돼도 일관된 ‘종전선언’ 추진 의지

당연한 말이지만 사실 이 같은 가정은 우리 정치사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한국은 고려의 후삼국 통일 이후 1,000년 이상 중앙집권을 강화해 온 역사를 지니고 있다. 600여 년 전인 조선 세종 때 이미 중앙의 행정력이 모든 지방에 미치는 수준에 도달했다. 지금껏 미국식 선거 제도를 따른 적도 없고, 앞으로 따를 이유도 없어 보인다. 건국 때부터 다방면으로 미국의 영향을 받은 한국이 미국식 선거 제도까지 수입했다면 지역 대결 구도가 지금보다 더 심각하게 나타났을 수 있다.

다만 미국의 승자 독식 선거인단 제도를 한국 대선 역사에 대입해 봄으로써 해당 제도가 개별 유권자의 민의를 얼마나 왜곡할 수 있는지 정도는 유추해 볼 수 있다. 대선을 전후해 극심하게 양분된 미국 여론도 이 같은 모순과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 시점에서 우리 정부는 북핵, 방위비, 주한미군 주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반중 전선 참여 등 국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한미 현안을 잔뜩 끌어안고 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우리 정부 입장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후보 가운데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든 불확실성이 빨리 해소되는 게 편하다. 현 미국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 때처럼 단순한 미 연방 대표가 아니라 세계를 주무르는 초강대국의 지도자로서의 의미가 더 크기 때문이다.

혼란이 길어지다 보니 문 대통령 역시 아직 그 누구에게도 축하 전화를 건네지 못한 상태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일 제15회 제주포럼 영상 기조연설에서 “한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종전선언’ 등 기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일관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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