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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택 칼럼] 타당성 조사와 가덕도 공항

정석인하학원 이사장

예타제도 무시 '가덕도 신공항'

정치 이해 따른 결정 막으려면

지자체의 사업비 부담 높여야

현정택 정석인하학원 이사장,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한국은 경제개발 초기 과정에서 세계은행 차관으로 도로·철도·항만 등 사회 기반 시설을 건설했다. 이 차관 사업들은 엄격한 사전 타당성 조사를 거쳐 시행돼 대부분 계획대로 이루어졌다. 한편으로는 선거 때 국회의원들이 지역구에서 도로를 놓아준다, 다리를 만들어준다고 약속하고 곳곳에서 경축 기공식을 개최한 사업도 많았다. 하지만 이 건설 사업들은 선거 후 대부분 흐지부지됐다. 간혹 억지로 강행한 사업은 경제성이 없어 국가 재정 부담으로 남게 된 경우가 많았다.

외환 위기 발생 후에 이러한 관행을 근본적으로 고치는 제도 개혁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예비타당성조사 제도다. 민간에서 금 모으기 운동을 전개하는 데 발맞춰 정부 재정 절약을 위해 국고가 많이 소요되는 사업은 타당성을 검증한 후 시행하도록 한 것이다.

조사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업 담당 부처가 아닌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주관하도록 했으며 1999년 진도대교 건설 사업 등 17개 사업에 대한 예타로 시작해 문제 있는 사업을 걸러낸 결과 연간 수조 원이 넘는 예산을 절약할 수 있었다. 예타는 돈으로만 따질 수 없는 지역 균형 발전 등 정치적 고려 요소도 평가 항목에 포함했으나 정치권에서는 그 과정을 거치는 자체를 마뜩잖게 여겼다.

10여 년 전 필자가 KDI 원장으로 있을 때 정부가 면제 규정을 근거로 이 불편한 예타를 피해 추진한 사업이 몇몇 있었다. 그 후 점점 확대되더니 현 정부 들어서는 24조 원 규모의 사업들을 한꺼번에 면제해 제도의 근간을 흔들 정도가 됐다.

내년 보궐선거를 겨냥해 나온 가덕도신공항 건설 논의의 귀추는 이 예타 제도의 실질적인 존망을 결정하는 가름대다. 가덕도는 밀양·김해와 함께 가장 정치적 이슈라 할 수 있는 영남권신공항 경쟁 후보지였다. 대통령과 5개 광역지자체가 프랑스 ADPi/교통연구원에 용역을 맡긴 결과 2016년 김해신공항으로 결정했다. 가덕도와 밀양은 타당성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라 2017년에는 김해신공항에 대한 예타까지 마쳤다.



이 상황에서 김해를 제치고 가덕도에 공항을 건설한다는 게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선거를 앞둔 유권자의 표심이 두려워 야당에서도 반대하지 못한다. 부산에서 당선되려면 부산 시민의 숙원(?)인 가덕도공항 건설에 손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KDI의 김재훈·이호준 박사가 수년 전에 쓴 공공 투자 사업의 정치경제학이라는 연구에 해법의 실마리가 있다. 대규모 재정 사업의 입지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사업에 대한 지방의 부담 수준을 높이라는 제안이다.

현재 공항 건설에는 국가가 주로 돈을 대고 지방비 부담은 거의 없다. 그래서 공항 활주로에 비행기가 없어 고추를 말릴 우려가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와중에도 대구·광주 등 신공항 논의가 만발하는 상황이다.

가덕도신공항을 부산 시민이 그렇게 원한다면 거기에 들어가는 10조 원 중 절반이라도 내게 하자. 여야 부산 시장 후보도 당당하게 내가 세금 얼마를 부산 시민에게서 걷어 공항을 건설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가덕도공항을 불미스러운 일로 물러난 오거돈시장공항으로 칭한다는 사람도 있다. 새 시장이 부산 시민을 설득해 모은 돈으로 건설한다면 그의 이름으로 떳떳하게 불릴 것이다.

그렇지 않고 국가 돈으로 지으려 한다면 마땅히 국가가 정한 타당성 조사를 통과해야만 한다. 세계은행의 돈을 쓰려면 세계은행의 타당성 조사를 거쳐야 하듯이 개도국에 모범 사례로 전수된 한국의 예타 제도가 정작 우리나라에서 유명무실해지는 상황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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