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의 배당 권고 자제령에 금융지주사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는 당국의 지적에는 수긍하지만 ‘동학개미운동’으로 늘어난 소액주주들과 새롭게 가세한 글로벌 사모펀드 등 외국계 투자가의 기대를 저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금융주 연말 배당 축소를 반대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금융감독원에 의한 금융주의 배당 축소를 반대한다”며 “사기업에 대한 배당 축소를 정부에서 강요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금감원은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한시적인 배당축소를 주장하고 있지만 올해 금융권 모두 양호한 경영실적을 기록했고, 주주가치를 훼손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고 지적했다.
투자자들이 뿔난 것은 금감원이 금융지주에 배당 자제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현재 금융사들과 배당 축소를 협의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올해 실적이 좋다지만 금융사들 스스로 내년이 더 걱정된다고 하지 않냐”며 “아무리 실적이 좋고 충당금을 많이 쌓는다고 하지만 그것 외에 배당 자제 등으로 내년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권은 당국의 의견에 공감하면서도 실적에 따른 배당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A금융지주 관계자는 “은행도 상업은행이니까 주주들한테 배당하는 것은 당연하고 기존 주주들의 이탈이나 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데 (배당 축소는)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실제 올해 금융지주 주가는 참담한 수준이다. 올 들어 코스피가 24.97% 급등했지만 신한지주(-20.99%), 우리금융지주(-13.36%), 하나금융지주(-3.79%), KB금융(-2.62%) 등 4대 금융지주 모두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9월 윤종규 KB금융 회장이 3연임이 결정된 직후 “주가가 참담한 수준”이라고 밝혔을 정도다.
금융지주들은 주가 부양을 위해서라도 배당 확대는 필연적이라는 주장이다. 신한금융지주는 주주 가치 회복을 위해 분기 배당 도입을 검토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투자자들도 연말이 다가올수록 배당 기대감이 높다. 금융주는 전통적으로 배당성향이 높은데다 올해는 실적 또한 뒷받침하고 있어서다. 4대 금융지주의 3·4분기 누적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5.1% 증가한 9조 원에 이른다. 신한과 KB는 3·4분기에만 당기순이익이 1조 원을 넘길 정도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당연히 배당을 늘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평가다. 그러나 이달 들어 금감원의 잇따른 배당 축소 요구에 기관투자가들이 금융지주 주식을 대거 팔아치웠다.
새롭게 가세한 외국인 투자가도 주요 변수다. 9월 신한금융의 1조 1,528억 원 유상증자에 어피너티에퀴티파트너스와 베어링프라이빗에쿼티아시아가 참여했다. 이들은 향후 이사회에 참여할 예정이어서 배당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알려졌다. 칼라일을 투자자로 받아들인 KB금융도 꾸준히 늘려온 배당성향을 축소할 명분이 없다는 입장이다.
B금융지주 관계자는 “그동안 충당금을 보수적으로 쌓았는데, 내년 이자상환유예가 끝난 뒤 어떻게 될 지 금감원과 스트레스 테스트를 하고 있다”며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와 1년치 경영결과 등이 나와야 본격적으로 배당 논의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광수·김지영·김현진기자 br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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