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국내 기업들도 소위 ‘영끌 대출’에 나서 은행 등에서 빌린 돈이 역대 최대 폭인 186조 원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확산에 직격탄을 맞은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대출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이다. 특히 자영업자들은 지난해 4분기에만 10조 원이 넘는 빚을 지면서 전체 대출액이 400조 원에 육박하는 등 빚으로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은행이 3일 발표한 ‘2020년 4분기 예금 취급 기관 전산업 대출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0~12월 은행과 비은행 금융기관의 산업별 대출금 잔액은 1,393조 6,000억 원으로 전 분기보다 27조 7,000억 원 증가했다. 특히 1년 전과 비교하면 대출액이 185조 9,000억 원 증가하면서 역대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증가율 기준으로도 15.4%로 역대 최고였던 지난해 3분기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은 관계자는 “코로나19에 따른 자금 수요 확대로 지난해 상반기 대출금이 크게 늘어난 영향이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조업보다는 코로나19 피해가 큰 서비스업에서 대출 의존도가 크게 높아졌다. 지난해 4분기 서비스업 대출 잔액은 880조 8,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역대 최대인 138조 8,000억 원이 늘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피해를 보는 숙박·음식업 등 일부 업종은 갈수록 대출 증가세가 확대되는 추세다. 숙박·음식점 대출은 지난해 4분기 2조 3,000억 원 늘면서 전 분기(1조 4,000억 원)보다 증가 폭이 커졌다. 보건·사회복지 부문도 1조 원대 대출 증가세가 1년 내내 지속됐다.
지난해 4분기 제조업 대출 잔액은 392조 8,0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35조 7,000억 원 늘었다. 제조업은 지난해 상반기까지 높은 대출 증가세를 유지하다가 4분기 들어 전기 대비 2조 2,000억 원 감소했다. 기업들이 연말 재무 비율 관리를 위해 차입금을 일시 상환했고 업황 회복으로 자금 상환 여력이 늘어난 영향이다.
대출 용도별로 살펴보면 운전 자금은 823조 7,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4조 9,000억 원이 늘었다. 다만 시설 자금 대출 잔액도 570조 원으로 2019년 말에 비해 61조 원이 증가해 기업들의 설비 투자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는 관측에 힘을 실었다. 운전 자금은 제품을 구입하는 원재료비, 제품 가공비 등으로 구성되고, 시설 자금에는 공장 부지 및 건물 구입, 기계 설비 등이 포함된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들의 부채는 큰 폭으로 늘어났다. 예금 은행 대출 가운데 자영업자 등 비(非)법인 기업의 대출은 지난해 4분기 398조 3,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전기 대비 10조 4,000억 원 늘어나면서 지난해 3분기(9조 1,000억 원)보다 증가 폭이 확대됐다. 다만 법인 기업의 대출은 전기 대비 2조 2,000억 원 늘어나는 데 그치면서 2020년 3분기(11조 3,000억 원) 대비 증가 폭이 크게 줄었다. 코로나19 확산이 지속돼 피해가 누적될수록 자영업자들이 더 많은 빚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송재창 한은 금융통계팀장은 “지난해 4분기에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늘었기 때문에 숙박·음식점을 중심으로 대출이 증가했고 도소매업 일부 업종에서도 비슷한 영향이 지속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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