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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한 권으로 정리하는 행동경제학의 방대한 역사와 이론

■행동경제학

리처드 H. 탈러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인간관계를 살피다 보면 ‘스스로의 합리성을 의심하지 않는’ 유형의 사람들을 흔히 찾게 된다. 전통적인 경제학 이론에서 이른바 ‘이콘’(ECON)이라 불리는, 언제나 합리적으로 의사결정하고 최적 조합을 골라내는 인간형이라 부를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믿음은 쉽게 무너진다. 할인한다는 이유로 별로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고, 열심히 손익을 따지다가도 극단적인 투자에 뛰어들기도 한다. ‘행동경제학’은 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H.탈러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이런 인간의 비이성적 행동에 주목해 40여년 동안 연구해 온 기록이다. 동시에 ‘합리적 인간’이란 전제를 부정하는 탓에 행동경제학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주류 경제학자들과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쟁해온 기록이기도 하다.

이 책은 지난 2016년 발간됐던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의 개정판이다. 탈러는 책에서 행동경제학의 주요 아이디어들을 방대하면서도 깊이 있게 제시한다. 가질 때의 기쁨보다 잃을 때의 고통이 더 크다는 ‘소유 효과’, 이미 결과가 나타난 뒤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고 착각하는 ‘사후 판단 편향’, 이익 앞에서는 위험 회피 성향을 보이는 반면 손실 앞에서는 위험 추구적인 성향이 된다는 ‘전망 이론’, 같은 돈이라도 심리적으로 다르게 판단하게 되는 ‘심리 계좌’ 등이 그것이다.

세계 금융시장의 대표 격인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입회장에서 트레이더들이 업무를 처리하는 모습. 탈러 교수는 합리적 개인의 결정에 따른 ‘효율적 시장 가설’이 작동하는 곳으로 여겨지는 금융시장도 실제로는 과잉반응에 따른 비합리적 결정이 이뤄진다고 주장하며 시장가격의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뉴욕=AP연합뉴스


행동경제학의 여러 가지 이론 중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증시에서 투자자들이 보여주는 ‘과잉반응 이론’을 탐구한 대목이다. 탈러는 금융경제학자 사이에선 금융시장에서 잘못된 행동의 사례를 좀체 발견하기 어려우리란 합의가 있었다며 “거기서 승리할 수 있다면 세인의 주목을 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흔히 금융시장에선 효율적 시장 가설에 따라 모든 자산은 내재가치에 따라 거래되기 때문에 이 과정서 형성된 가격은 정당하다는 생각이 팽배했다. 이대로라면 저평가, 고평가된 주식은 있을 수 없다. 또한 가용 정보가 현재 주가에 그대로 반영됐으니 미래 가격을 합리적으로 예측해 ‘시장을 이기는’ 수익을 낼 수도 없다는 원리가 지배하고 있었다.

반면 탈러는 시장의 과잉반응에 따라 지나치게 주가가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주가수익비율(PER)이 낮은 가치주의 가격은 과하게 비관적인 전망 때문이고 PER가 높은 성장주의 가격은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에 지나치게 상승한 결과일 수 있단 것이다. 그는 이를 검증하기 위해 과거 3~5년간 가격이 높은 주식 그룹과 낮은 그룹을 각각 ‘승자’, ‘패자’로 묶어서 추이를 살폈다. 그 결과 패자 그룹은 시장 전체보다 30% 좋은 성적을 보였고 승자 그룹은 10% 부진한 성적을 보였다고 전한다. 가격에 거품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 것.



미국 최고의 인기 프로스포츠인 미 프로풋볼(NFL) 경기의 모습. 신인 드래프트 과정에서 벌어지는 지명권 트레이드에서는 비합리적이라 생각되는 의사결정도 다수 눈에 띈다. /AFP연합뉴스


저자는 금융시장 이외 실생활에서도 합리적이지 못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다양한 사례를 소개한다. 그 중에서도 주류 경제학의 본산이라 할 시카고대 비즈니스스쿨 교수들이 새 건물로 이사하면서 연구실을 배정 받기 위해 추첨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어처구니 없는 비합리성이 눈에 띈다. 교수들은 추첨을 위한 등급 배정에서부터 조작이 있었다 주장하는가 하면 연구실 배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미세한 수준의 면적 차이까지 부각해서 문제를 제기한다. ‘한 층이라도 더 높을수록 좋다’는 검증되지 않은 경험칙에 매달리기도 한다. 또한 미 프로풋볼(NFL) 팀들이 신인 드래프트에서 높은 순위를 지나치게 고평가해 신인 지명권을 무리하게 트레이드하면서 손해를 보는 모습도 전한다.

나아가 행동경제학이 사람들에게 명령, 강압 없이 더 나은 선택을 유도해 현실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저자는 영국 정부에 세금 독촉 공문에 몇 가지 문장을 추가하도록 자문해 체납액을 획기적으로 낮춘 경험을 소개한다. 추가된 문장은 ‘영국서 대다수 사람은 세금을 기일 내 내고 있으며, 지역 내 시민 대다수는 세금을 납기일 안에 납부하고 있다. 여러분은 지금 세금을 체납하는 소수 집단에 포함돼 있다’. 이 공문 발송 후 23일만에 체납액 중 900만파운드(약 140억원)이 걷혔다.

책을 다 읽고 나면 행동경제학이 발전해 온 과정은 인간의 비합리성을 성찰하는 긴 과정처럼 여겨진다. 그는 행동경제학의 교훈을 세 가지로 묶는다. 주변의 세상을 부지런히 관찰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면서도 스스로 틀렸음을 증명하는 데이터에 주목하며, 대상이 상사일지라도 잘못된 점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것. 방점은 ‘나도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데 찍힌다. 주류 경제학은 물론 모든 학문에서 살펴야 할 지점이다. 2만8,000원.

/박준호 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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