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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피는 순서대로 알아서 망해라?…대학 퇴출, 기준도 시스템도 없다 [관점]

◆자율에 맡긴 대학 구조조정 논란

올해 사상 첫 ‘데드크로스’…입학생 초과한 대학 정원

학령인구 감소로 대규모 미충원 사태는 ‘예정된 미래’

文정부, 대학·정치권 눈치보다 구조조정 골든타임 놓쳐

자발적 폐교·솎아내기 ‘투트랙’ 퇴출 장치 법제화 시급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지난 2019년 8월 대학 정원을 인위적으로 감축하지 않고 자율 구조조조정에 맡기는 내용의 대학 혁신 지원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8년 8월 교육부는 고교 1학년이 대학에 들어가는 2021년까지 38개 대학이 신입생을 구하지 못해 문을 닫을 것이라는 고등교육 현안 자료를 국회 교육위원회에 보냈다. 교육 당국이 금기시해온 폐교 숫자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 처음인 데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대학 붕괴 괴담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에 파장은 컸다. 교육부의 폐교 추산은 그해 대입 정원 48만 3,000명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급속한 학령인구 감소로 3년 뒤에는 5만 6,000명의 미충원이 발생한다는 시나리오를 토대로 산출한 것이다. 이 예측은 미충원 학생 수를 문 닫는 대학 수로 단순 계산한 해프닝으로 밝혀졌지만 올해를 기점으로 폐교가 속출할 것이라는 교육 당국의 현실 인식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학령인구 감소와 이에 대한 경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난달 말 실시된 대학의 대규모 추가 모집은 상아탑이 처한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2021학년도 정시 전형의 추가 합격자를 뽑고도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한 4년제 대학은 협의회 소속 198곳 가운데 162곳. 이들 대학의 추가 모집 인원은 2만 6,129명으로 전년보다 세 배가량 늘었다. 심각성은 단연 지방대에서 나타난다. 미달 인원의 91%가 지방 소재 대학이다. 경북대와 경상대 등 지방 거점 국립대도 미달 사태의 태풍을 피하지 못했다.




지방대 대규모 정원 미달…대구대 총장 사의 ‘쇼크’




지난해 12월 3일 2021학년도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이 교문을 나서며 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02년 태어난 ‘월드컵둥이’로 그해 출생아 수는 사상 처음 40만 명대로 떨어졌다. /서울경제DB


추가 모집 결과는 더 참담했다. 전형 결과를 공개한 92개 대학의 평균 경쟁률은 고작 0.17 대 1에 그치고 모집 인원 대비 지원자 수는 11%에 불과했다. 수도권 대학은 거의 대부분 충원했지만 지방대 10곳 가운데 8~9곳은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한 것으로 교육계는 파악하고 있다. 추가 모집 인원이 가장 많았던 대구대의 김상호 총장이 4일 입시 관리 실패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해 충격을 던졌다.

올해 대학 신입생 미충원 문제가 유난했던 것은 ‘예견된 미래’였다. 인구통계를 보면 올해는 대학 입학 자원이 급격히 줄어들게 돼 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2021학번’은 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에 태어난 ‘월드컵둥이’로 그해 출생아 수는 사상 처음 40만 명대로 줄었다. 저출산 재앙이 미래에 닥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올해부터 이미 대학 입학 자원보다 입학 정원이 더 많은 ‘데드크로스’에 진입한 것으로 추정한다. 통계 기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민간 연구 기관인 한국대학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대학 입학 자원은 41만 명으로 신입생 정원보다 7만 명 적은 것으로 파악된다. 교육열이 유달리 높은 우리나라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역전 현상이다. 대학 입학 자원은 고교 3학년 수와 대학 진학률, N수생 등을 종합해 산출한다.

대학 붕괴 위기는 전형적인 정부의 실패로 평가된다. 출발점이 1996년 대학 설립을 자율화한 대학 설립 준칙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이 바람에 100개에 육박하는 대학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대학 재정은 반값 등록금 정책으로 취약해졌고 ‘인(in) 서울 대학’ 쏠림 현상에다 학령인구 감소라는 충격까지 더해지면서 화를 키웠다.




교육부, 2024년 입학 정원 대비 학생 12만명 부족 예상






지난 2015년 4월 한국대학생연합회 소속 대학생들이 서울 청계광장 앞에서 대학구조개혁평가를 철회하라는 피켓을 들고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래는 더 암울하다. 통계청이 2019년 실시한 장래인구특별추계에 따르면 대학에 진학하는 나이인 만 18세 학령인구는 2020년 51만 명에서 △2030년 46만 명 △2040년 28만 명 등으로 수직 추락한다. 타격은 지방대에 집중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보수적인 교육부조차 오는 2024년에는 2018년 입학 정원 대비 12만 4,000명의 학생이 모자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도미노 폐교 위기가 들이닥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얘기다.

사정이 이런데도 현 정부 출범 이후 대학 구조 조정 의지와 추진력은 현저히 약해지고 있다. 정부가 2013년 전국 대학을 대상으로 ‘대학구조개혁평가’를 실시해 2015년부터 3년 단위로 3단계에 걸쳐 전체 정원을 16만 명(4만 명, 5만 명, 7만 명) 줄이는 내용의 강력한 구조 조정 방안을 마련했으나 이런 방안은 정권 교체 이후 사실상 폐기됐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2주기(2018~2020년) 구조 개혁에서 하위 대학 36%를 대상으로 정원 1만여 명을 감축하는 데 그쳤다. 이는 목표치 4만 명을 웃도는 5만 명을 감축한 1주기 평가(2015~2017년)와 대비된다. 교육부는 16만 명 감축 플랜을 폐기한 배경으로 대학 서열화와 지방대 몰락, 평가의 공정성 논란 등을 내세우지만 구조 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더욱이 올해 시작될 3주기 평가(2021~2022년)에서는 더 이상 인위적 감축을 하지 않고 전면 자율 기조로 전환해 구조 조정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강제 감축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지만 자율에 맡기면 학과 학생이 한두 명일 때까지 버티는 대학도 있을 것”이라며 “현재의 정책 기조는 여론 눈치 보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방향성을 상실했다”고 혹평했다.

교육부는 대학이 정원을 스스로 감축하지 않으면 학령인구 감소 시대에 생존이 어렵다지만 대학 폐교가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최근 20년 동안 문을 닫은 대학은 연초 서해대(전북 군산)를 포함해 단 18곳에 불과한 통계가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 가운데 자진 폐교는 경북외국어대와 대구미래대 등 5곳에 그쳤고 나머지는 대학 재단의 비위 등으로 행정명령에 의해 강제 폐교됐다. 심지어 정부가 2013년 ‘경영 부실 대학’으로 9곳을 꼭 짚어 퇴출을 유도했음에도 서남대·한중대·벽성대를 제외한 6곳은 아직도 운영 중이다.




20년 동안 폐교는 18곳 불과…상시 구조조정체제 법제화해야




교육부가 폐교 명령을 내린 서남대 의대 학생을 전북대와 원광대 등 인근 대학 의대로 잠정 배정하자 전북대 학생들이 2018년 1월 특별편입에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대학 퇴출 시스템부터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퇴출 시스템은 자발적 퇴로와 강제 퇴출 등 두 가지 트랙이 요구된다. 김경회 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학법은 1963년 인구 팽창기에 만들어져 지금과 같은 인구 수축기에 맞지 않는다”며 “현행 제도는 건실한 대학이 스스로 문을 닫거나 매각하는 길까지 막고 있다”고 말했다. 사학 법인을 해산할 경우 잔여재산을 다른 사립대나 국고에 귀속하도록 규정한 사립학교법 35조는 대학 구조 조정과 인수합병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걸림돌이다. 김 교수는 “대학 구조 조정 방법으로 다운사이징(인원 감축)과 클로징(폐교)이 있는데 정원 감축을 시장 자율에 맡기고 대학의 퇴로조차 열어주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교육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사학법 개정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지금의 여당이 야당이던 시절 사학 법인의 ‘먹튀’ 논란 등을 이유로 극렬히 반대한 데다 국정 원심력이 강해지는 정권 말이어서 실제 입법화될지는 미지수다.

기업에 적용되는 통합도산법과 기업구조조정촉진법 등을 롤모델로 삼자는 지적도 있다. 한계·부실 대학의 기준을 명확히 정해 퇴출시키거나 회생의 길을 모색하는 상시 구조 조정 체제를 만들자는 주장이다. 서영인 한국교육개발원 고등교육제도연구실장은 “현행 제도상 대학 퇴출 기준도, 시스템도 없다”며 “질서 있는 퇴로 구축과 고등교육의 생태계를 위해 가칭 ‘대학구조조정촉진법’ 같은 퇴출·회생 지원 장치의 법제화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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