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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인문학] 소처럼 일하는 건 미덕이 아니다

■사랑, 죽음 그리고 미학- 뒹굴뒹굴 데굴데굴

김동규 한국연구원 학술간사

조금이라도 게으름 피우다가는

경쟁서 뒤처질 것이란 불안감에

소처럼 우직하게 일하는 현대인

'알게 뭐야 앞질러 가든' 가사처럼

승자가 되려 치밀하게 계산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삶도 있어

김홍도 '행려풍속도병- 경작하는 소' /국립중앙박물관




‘소’라는 동물은 나를 어릴 적 시골집으로 데려간다. 그 집 허름한 외양간에서는 큼직한 눈망울을 껌벅거리며 질겅질겅 여물을 씹는 소가 보인다. 나는 녀석과 친구처럼 지냈다. 촌 동네 어린 꼬마들은 소를 데리고 나가 풀을 뜯게 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 워낙 성격이 온순한 동물인지라 연약한 아이도 소를 몰 수 있다. 정현종 시인은 잊지 못할 평화로운 풍경으로 ‘풀 먹고 있는 소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아이('어떤 평화')’를 꼽은 적이 있다. 그 시절 우리 집 소와 내가 아마 그런 풍경을 연출했을지도 모른다.

딱 한 번 녀석을 어찌할 수 없던 적이 있었다. 동네 형이 몰고 나온 수소가 덤벼들어 녀석이 격렬하게 저항하는 통에 나는 그만 고삐를 놓쳤다. 소는 순식간에 먼 곳으로 사라졌다. 느려 터진 모습만 보였던 우리 소가 그토록 민첩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한참 뒤 동네 어른이 소를 잡아다가 고삐를 내 손에 쥐어줬다. 어찌나 고맙던지. 순종적인 가축이 거대한 짐승으로 돌변해 거칠게 싸웠던 장면이, 또 가족처럼 지냈던 녀석을 잠시 나마 잃어버린 큰 상실감이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상허 이태준의 수필 ‘우세(牛歲)’를 읽다가 올해가 소의 해임을 뒤늦게 알았다. 학술 행사다, 코로나19다 하며 분주하게 연말연시를 보낸 탓인지, 얼핏 듣기는 했지만 과거처럼 십이간지 동물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다. 시간과 동물을 연관 짓는 우리네 풍습은 동물에게 깊은 관심을 가진 옛 선인들의 슬기라고 생각된다. 동물권, 동물 해방까지 외치는 현대인들이지만 과연 이전보다 동물에 대해 진득하게 생각하고는 있는지 의심스럽다.

상허는 소의 해를 맞아 소의 덕을 칭송한다. 그에게 소는 순하고 어진 동물로 비쳤다. 소의 눈은 사람보다 더 순해 보이고 ‘그의 체력과 살과 뼈까지 우리에게 온전히 바치는 공으로가 아니라 그의 생김새가 동물 중에는 가장 어질어 보이는 것이다. 뿔이 있되 무기 같지는 않다.’ 인간은 동물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기에 이처럼 먼저 외모로 넘겨짚는 수밖에 없다.

황제 만세를 외치며 달리는 기병들




어린 목동 시절 나는 말이 무척 보고 싶었다. 소는 동네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있지만 말은 TV에서나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직접 말을 본 것은 유럽에서였다. 경찰이 탄 말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존재 자체가 숨 막히는 위압감을 줬다. 과거 기마 부대가 거침없이 질주하는 현대판 전차 부대였을 거라는 이야기가 실감 나는 위용이었다. 흥미롭게도 상허도 소를 말과 비교한다. ‘말은 말 그놈부터 무서운 데다가 타는 사람들도 대개는 순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동네에선 모두들 굽실거리는 나리님짜리들이 말을 탔고, 읍에서는 헌병이 기다란 칼을 늘어뜨리고 탄 것을 가끔 보았다.’ 힘센 가축인 것은 둘 다 마찬가지다. 하지만 소가 유순한 느낌이라면 말은 무섭다. 동물 탓도 있겠지만 관계 맺는 사람들 탓이다. 어진 이는 소와, 권력과 폭력을 휘두르는 이는 말과 친하다. 결국 동물과 관계된 사람들의 됨됨이로 동물 이미지가 결정된다.

현대인들은 소처럼 일하고 있다. 그렇게 노동하지 않으면 무한한 나락으로 빠져들 것만 같다. 조금만 게으름을 피우면 금방 경쟁에서 뒤처져 낙오자로 덩그러니 남겨질 거라는 불안이 엄습한다. 게으른 글쟁이인 내 삶마저 분주한 건 마찬가지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온 원고를 몇 줄 적는다. 강의 교안 준비, 비대면 강의를 위한 동영상 촬영, 별의별 서류를 작성하는 행정 잡무, 학술 심포지엄에 포럼 준비까지, 차분하게 책상에 앉아 글을 읽고 쓸 새가 없다. 꼬리뼈 속 영양까지 착취되는 소처럼 현대인들은 체제에 철저히 관리된다.

조금 컸다고 아이들이 동요가 아닌 대중가요를 흥얼거리는 소리를 우연히 들었는데 가사가 범상치 않다. ‘뒹굴뒹굴 데굴데굴 하루를 종일 한자리에서 … 누워 있는 게 가장 좋아 특히 밥 먹고서 바로 누우면 소가 된다고 겁을 주던데 나는 원래 소띠라 괜찮아.’ 선우정아의 ‘뒹굴뒹굴’이라는 노래란다. 요즘 젊은 세대의 삶과 정조가 얼핏 전해지는 노래다. 앞부분만 듣고 단지 게으름을 찬양하거나 냉소적 패배주의를 담은 노래라고 섣불리 예단하면 곤란하다. ‘멍청이는 아닌데 깍쟁인 더 아니야 계산하는 거 완전 귀찮아’라는 대목이라든지, ‘내 몸 하나 누울 딱 그만큼만 알 게 뭐야 누가 앞질러 가든’이라는 대목을 보면 무한 경쟁 시대에 승자 독식하려 치밀하게 계산하는 일을 ‘완전’ 거부하는 몸짓으로 읽힌다. 우직하게 시스템 ‘바깥’을 경작하는 소의 이미지가 노래에 내비친다. 이전과 사뭇 다른 소의 모습이다.

김동규 한국연구원 학술간사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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