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과 느와르에 강한 유하 감독이 ‘도유 범죄’를 통해 코미디에 도전한다. 어둡고 진득한 남자들의 세계에서 벗어나, 밝은 분위기와 유쾌한 캐릭터로 눈을 돌린 그의 도전에 관객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파이프라인’은 땅 아래 숨겨진 수천억원대의 기름을 훔쳐 인생 역전을 꿈꾸는 여섯 명의 도유꾼이 펼치는 막장 팀플레이를 그린 범죄 오락 영화다. 손만 대면 대박을 터트리는 도유 업계 최고 천공기술자 핀돌이(서인국)가 기름을 빼돌리기 위해 거대한 판을 짠 대기업 후계자 건우(이수혁)의 계략에 휘말리면서 이야기가 출발한다. 핀돌이는 무자비한 건우의 행태로 인해 대척점에 서게 되고,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지는 위기 속에서도 긴장감 넘치는 도유 범죄를 저지른다.
작품은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강남 1970’ 등 누아르 액션 영화를 주로 선보였던 유하 감독의 첫 범죄 오락 영화다. 이전 작품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결이 다르다. 유 감독 스스로 “이름을 가리면 누가 만든 영화인지 모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을 만큼 화려한 액션보다 몸개그가 난무하고 코믹하다. 진지함보다는 가벼운 분위기가 이어지는 만큼 부담 없이 편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다.
처음 만나는 6명의 도유꾼들은 여느 범죄 오락 영화가 그렇듯 조금씩 삐걱대고 허둥지둥 대기 시작한다. 서로를 믿지도 못하고 이기적인 생각으로만 가득하다. 접새 역의 음문석을 중심으로 이런 과정이 코믹하게 그려지다가 핀돌이와 나과장(유승목), 큰삽(태항호), 카운터(배다빈) 등이 서로에게 연민과 정을 갖게 되면서 이야기에 힘이 실린다.
도유 범죄라는 소재는 신선하다. 보통의 범죄 영화는 원한 있는 인물들 간의 치열한 싸움을 하거나 보물이나 보석을 훔치는 이야기로 이뤄지는 반면, ‘파이프라인’은 이름마저도 생소한 도유 범죄를 소재로 잡아 자연스럽게 관심을 유도한다. 유하 감독은 고속도로 땅 아래에서 땅굴을 파며 기름을 훔치다 적발된 도유꾼들에 관한 뉴스를 보고 이야기를 떠올렸고, 철저한 사전 조사를 통해 범죄 현장을 디테일하게 구현했다. 송유관이나 공동구, 막장 같은 좁은 공간을 위주로 영화가 전개되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작업이라는 것을 강조해 자연스럽게 관객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영화 경험이 현저히 적은 서인국과 이수혁을 전면에 내세운 것 또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동안 권상우, 조인성 등 유명 배우들과 작업했던 유하 감독은 2013년 ‘노브레싱’ 이후 영화 경력이 없는 서인국을 메인으로 발탁하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 여기에 이수혁의 차가운 이미지를 활용하면서도 허점 있는 모습을 그려내며 의외성을 이끌어냈다. 앞서 두 사람이 드라마를 통해 호흡을 맞춘 바 있기에, 영화 속 색다른 관계성을 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케이퍼 무비(Caper movie)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이 곳곳에 심어져 있어 쉽게 예상가는 부분도 있다. 거칠지만 비상한 재능이 있는 멤버,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멤버, 마음만은 순수한 멤버 등 각양각색의 도유꾼들의 캐릭터는 어디선가 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멤버들의 팀워크와 통쾌한 액션 등이 빛을 발하고, 반전의 반전의 반전을 거듭해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다. 26일 개봉.
/추승현 기자 chus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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