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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미국의 인종주의 수위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비판적 인종 이론의 논란 속에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다. ‘미국의 인종주의 수위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종주의 피해자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또 다른 방식은 소수 집단의 기회를 가로막는 현실적 장벽이 얼마나 높은지 따져보는 것이다. 그들에게도 아메리칸드림을 이룰 수 있는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가.

지난 2004년 한 연구기관은 뉴욕시의 회사에 지원한 흑인과 백인 구직자들에게 비슷한 옷차림과 유사한 대답을 준비하게 한 후 면접시험을 보게 했다. 이들의 자격 조건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비슷했다. 하지만 흑인 지원자들이 받은 입사 제안은 백인들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인종주의는 우리가 조용히 지나온 과거가 아니라 만연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백인우월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국가이고 아메리칸드림은 백인들만의 특권인가. 블룸버그통신의 노아 스미스는 그의 서브스택 페이지에서 “최근 몇 년간 히스패닉계의 소득이 미국 내 다른 주요 인종 집단들의 평균 소득에 비해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고 지적했다. 빈곤 속에서 성장한 히스패닉의 45%가 중산층 혹은 그 위의 소득 계층으로 진입했다. 백인에 버금가는 계층 간 이동성 비율이다.

2000년 히스패닉의 30% 이상이 고등학교를 중퇴했지만 2016년에 이르면 이 수치는 10%로 떨어진다. 1999년 18세에서 24세 사이의 히스패닉 가운데 3분의 1이 대학에 진학한 데 비해 지금 대학 진학률은 50%에 달한다. 이들의 대학 진학률은 이미 2012년에 백인을 추월했다.

하지만 이 같은 경제적 성공은 이민자들이 더 이상 역경과 편견, 착취에 직면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 단지 교육과 계층 이동이 이런 편견의 영향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늘어나는 인종 간 결혼은 이러한 결과물이다. 2017년에 나온 퓨리서치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갓 결혼한 아시아계 미국인의 29%, 히스패닉 신혼자들의 27%가 다른 인종 그룹에 속한 배우자를 맞았다. 흑백 결합 역시 1980년 이후 대략 세 배가 늘어났다. 복수의 인종적 정체성을 지닌 미국인들의 수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애틀랜틱지에 에세이를 공동 기고한 리처드 알바, 모리스 레비와 도웰 마이어스는 연방 센서스국의 오는 2060년 인구 조사에서 스스로를 비백인으로 분류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52%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이렇다. “21세기 중반까지 백인이 다수 인종의 위치를 유지할 것으로 예단하기 힘들다. 인종 간 결혼 등을 통해 백인과 비백인 사이의 사회적 의미가 급속히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뚜렷했던 이들 두 집단 사이의 차이는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인종 그룹들에 관한 데이터를 살펴보면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드러난다. 첫째, 많은 사람이 유색인종이라는 분류를 마뜩잖아 한다. 이는 유색인종이라는 용어가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가리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E 태미 킴이 뉴요커지를 통해 지적했듯 미국의 모든 비백인 인구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는 것은 흑인들이 집중적으로 당한 차별을 축소하고 희석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둘째, 극우 인사들이 입이 닳도록 떠드는 ‘대체 이론’을 폐기해야 한다. 대체 이론이란 해외에서 이주한 외국인들이 조만간 백인을 제치고 미국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체 이론에 겁을 집어먹은 백인들은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에게 표를 모아줬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 수백 년간 인종적 정체성은 지속적인 융합의 과정을 거쳤다. 인종 그룹 간 혼합은 미국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미국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인종 진영 간 대결로 확연히 갈라진다는 주장은 정확하지 않다. 고유의 문화와 인종적 정체성의 일부를 간직한 채 다른 그룹의 구성원들과 융합하는 집단은 성장한다. 이것이 영 연방 유대교 최고 지도자였던 조너선 색스의 이른바 ‘동화 없는 통합’이다.

미국의 인종적 현실은 백인 대 비백인이라는 단순 이분법의 적용을 거부한다. 한편으로 뿌리 깊은 구조적 인종주의가 자리 잡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두에게 활짝 열린 기회의 땅이라는 모순을 동시에 포용한다.

지난주 필자가 본 젊은 흑인 여성의 티셔츠에는 ‘나는 선조들이 애타게 꿈꾸던 희망’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필자는 그 문구를 저항과 자부심, 굳센 결의와 희망의 메시지로 읽는다. 이처럼 혼재된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다면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로 가득 찬 미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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