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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이 된 세종대왕의 '여민락'

훈민정음·여민락은 세종의 애민정신 상징

현대미술가 10명 참여한 '여민락' 기획전

김효진 '여민락 2021' /사진제공=세종시문화재단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는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愛民)’에서 시작됐고, 애민사상의 또 다른 결집체가 바로 ‘여민락(與民樂)’이다. “왕이 정치를 잘하면 음악을 연주하든 사냥을 하든 백성에게는 모두가 즐겁고 좋은 일로 여겨진다”는 맹자의 가르침이 바로 ‘여민락’ 이었다. 세종대왕의 애민사상에서 출발해 여민락의 현대적 시대정신을 예술로 분석한 기획전 ‘세종대왕과 음악, 여민락’이 세종시 세종문화예술회관에서 9일 막을 내린다. 세종시문화재단이 주최해 지난달 3일 개막한 이 전시는 ‘평화와 공생을 위한 시가(詩歌)’를 부제로 석철주, 정현 등 국내 중견·중진작가 10명이 참여했다.

맹자는 왜 하필이면 음악을 예로 들어 주장을 펼쳤을까? 미술사학자이자 이번 전시를 기획한 조은정 전시감독은 “음악이 조화로운 것으로서 정치를 상징하기에 ‘여민락’이란 백성과 더불어 즐기는 음악이란 뜻에서부터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다’에 이어 ‘백성을 위해 정치를 잘하여 좋은 여론을 듣는다’라는 의미로 확장된다”면서 “이것은 상대방을 인지하고 배려하고 함께한다는 사회적 규약인 의(義)와 예(禮)가 함축된 개념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김기라 '기물별곡-책거리연구' /사진제공=세종시문화재단


작가 김기라는 조선시대 민화의 한 종류인 ‘책거리’를 설치작업으로 변환했다. ‘여민락’으로 대표되는 음악이라는 것을 두고 “음이 어떻게 놓이는지에 따라 음악이 형성된다”는 작가의 설명을 듣고 나면, 이채로운 정물이 자리잡은 형태를 눈으로 느끼는 협주곡처럼 공감각적인 음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무형의 청각적 음악을 유형의 시각적 설치로 치환한 셈이다. 작가는 서양 정물화의 일종으로 인간 삶의 유한함과 허무를 다룬 ‘바니타스’ 회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정물화 연작을 ‘기물별곡-책거리연구’로 확장시켰고 “정물은 당대의 태도와 습관을 함축한 것들이라 조선시대 ‘책거리’를 매개로 백성들을 즐기게 하고자 만든 ‘여민락’의 정신을 노래와 시가(詩歌)로 기호화 해 선보였다”고 말했다.

김혜경 '여민락 동궐' /사진제공=세종시문화재단


김혜경 작가는 ‘여민락’을 ‘백성과 즐긴다’라는 뜻으로 해석해 사람들을 즐겁고 기쁘게 하는 대중적 이미지들을 담아 미디어 작품을 제작했다. 거친 벽에서 그의 작품이 시시각각 변하는 화려한 형상으로 빛난다.

무용을 전공해 자신의 동작과 미디어 작업을 결합해 온 작가 김효진은 여민락 음원을 기반으로 세종이 창제한 한글을 자신의 신체 일부로 표현했다. 균형이 중요한 발의 움직임을 보여주되, 여러 개로 나뉘는 화면의 개수는 음악의 속도, 길이, 호흡을 반영한다.

배달래 '여민락 2악장' /사진제공=세종시문화재단


배달래는 세종대왕의 모든 행위가 연민, 즉 사랑에 있었음을 알린다. 그는 ‘여민락’ 음악을 들으며 퍼포먼스를 진행했고, 작가의 몸이 커다란 붓이 되어 화면에 그림을 그려냈다. 바닥에 깔린 천은 두 겹이어서 작가는 퍼포먼스 후 이것을 바느질로 꿰매어 하나로 이어 붙였다. “과거와 현재, 임금과 백성, 현실과 가상 등 모든 것들이 봉합되고 어우러지는 지점을 작가의 행위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숨은 뜻이 있다.

석철주 '신몽유도원도 11-21' /사진제공=세종시문화재단


화가 석철주는 한국의 산하를 직접다니고 사생하며 그림을 그리다 사정이 있어 그럴 수 없게 됐을 때 ‘신몽유도원도’ 연작을 제작했는데, 이 상황이 코로나19 시국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감염병으로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고립됐던 지난해와 올해 작업한 그의 ‘신몽유도원도’는 꿈을 찾아가는 상황이 유독 강조됐다. 특히 팬데믹 상황에서 디지털화가 가속됐고 작가는 디지털의 픽셀로 재현된 ‘몽유도원’을 제시하기도 했다. 조 전시감독은 “꿈은 꾸어야 이루어진다는데 ‘몽유도원’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장소를 향한 꿈이자 찾아나가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행위임을 말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심철웅 '신분정간보' /사진제공=세종시문화재단




작가 심철웅은 세종대왕의 ‘애민’과 ‘여민락’에서 민(民)에 주목했다. 과거 봉건사회의 정치에서 백성은 소외 속에 엄연히 존재했다. 작가는 여기에 세상은 무엇으로 구성되고, 가치란 무엇이며, 평화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묻는다.

이귀영 작가의 경우 여민락의 동시대성에 대해 질문하며 시공을 넘나들며 모두가 함께 즐기는 상황을 연출했다. 궁중음악인 여민락 특유의 웅장함에 세종대욍의 즉위식이 열린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을 오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중첩해 새로운 ‘공존’의 의미를 이야기 한다.

이귀영 '여민락-사유의 공간' /사진제공=세종시문화재단


이예승은 세종대왕이 하나의 음악을 속도와 길이를 달리하여 작곡하고 ‘용비어천가’라는 동일한 가사를 악곡에 붙인 것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치화평’이나 ‘취풍형’과 달리 유독 ‘여민락’만 한문으로 가사를 붙인 것이 위정자들에게 그 뜻을 새기게 하고자 한 것임에 주목했다. 작품은 관객이 스마트폰으로 함께 즐길 수 있는 증강현실, 인터랙티브로 이뤄졌기에 진정 현대화 한 ‘여민락’으로 다가 온다.

이예승 '정중동-동중정' /사진제공=세종시문화재단


정직성은 최근 회화의 영역을 확장한 ‘자개 그림’을 선보이고 있다. 본래 ‘자개’는 상위층이 향유하던 귀한 재료였으나 정직성 작가는 이것을 이용해 소수가 추구한 부귀영화를 그리지 않고 바람·물 ·꽃 등의 자연을 담았다. 세종대왕의 애민은 누구나 아름다움을 누리고 볼 수 있는 세상도 꿈꾸었기에 소수가 독점하던 자개 작품을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전시장에서 만나게 하는 것은 또다른 의미의 ‘여민락 실천’으로 여겨진다.

정직성 '202013자개' /사진제공=세종시문화재단


정현은 기차의 속도, 열, 무게를 감내하며 비, 바람, 눈, 햇볕과 홍수와 가뭄에도 그 자리를 지킨 ‘침목’을 재료로 삼는다. 그렇게 버텨낸 침목은 보통의 인간인 ‘민’과 닮아 있다. 인고하는 삶을 통해 얻어진 단단함과 육중함은 침목의 미덕이다. 밟히고 눌린 약자 같던 침목이 땅에 ‘누웠던’ 것을 떨치고 일어나 ‘우뚝 솟은 사람’의 형상을 취하는 것은 기적같은 반전이다. 침목들은 민중이 역사를 관통하며 얻어낸 평등과 평화는 여럿이 함께 함으로써 가능했다는 공생·공존의 정신을 보여준다.

정현 '무제' /사진제공=세종시문화재단


조은정 감독은 “현대 작가들이 ‘세종대왕과 음악’이라는 커다란 주제 아래 제작한 미술작품은 위대한 왕의 이상을 다시 살려낸 일”이라며 “세종대왕과 음악에 대한 성찰은 더 좋은 세상을 꿈꾸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만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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