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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CPTPP 정책 실수부터 반성해야

김영필 뉴욕특파원

빈껍데기 RCEP에만 치중 하더니

CPTPP 가입 세차례 판단 잘못해

中 참여 의사 밝히자 가입으로 바꿔

늑장 합류 이유부터 소상히 밝혀야





꼭 한 달 전쯤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뉴욕을 방문해 한미일·한일 외교장관 회의 결과를 설명했다. 그에게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관련해 일본과 얘기를 해봤는지, 일본의 반응은 어떤지 물었다. 마침 중국에 이어 대만이 CPTPP 가입 의사를 밝혔고 정부도 가입하기로 가닥을 잡은 상태였다.

그는 “일본과 얘기를 안 했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우리의 CPTPP 방침이 결정 안 됐다”고 했다.

이 대답을 듣고 놀랐다. 방침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는 외교적 발언으로 이해했다.

문제는 일본과 논의조차하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일본은 CPTPP 의장국이면서 미국의 탈퇴로 시들해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CPTPP의 전신)을 되살려냈다. 사실상 지분이 있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로 평행선을 달리는 상황에서 CPTPP까지 논의할 분위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일본도 더 큰 주제에 관심이 있었을 테다.

그런 정부가 다음 달 CPTPP 가입 신청을 하기로 했다. 한 달 새 일본과 많은 얘기가 오갔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더 늦을 수 없다는 절박감이 큰 것 같다. 최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시간이 없다. ‘한다, 안 한다’의 결정을 10월 말, 11월 초에는 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과 대만의 가입 신청과 관계가 껄끄러운 일본의 의장국 임기가 내년 1월 말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내부 판단이 아닌 외부 변수에 가입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지경까지 몰린 셈이다.

통상 선진국인 한국은 왜 이렇게 됐을까.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는 크게 세 차례 판단을 그르쳤다.



첫 번째, 정부는 지난 2017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TPP 탈퇴 이후 일본 주도의 협정에 관심을 아예 두지 않았다. 북핵 문제 해결이 정권의 최우선 과제인 상황에서 북미 협상과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중요했다. 이웃 나라 일본은 청산의 대상일 뿐 북핵 문제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 듯하다.

두 번째, 2018년 CPTPP가 발효됐을 때다. 일본과 캐나다·호주·베트남 등 11개국이 참여했다. 이때도 정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미국이 없는 데다 중국을 의식하다 보니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매달렸다. 개방 수준이 낮은 빈 껍데기 RCEP를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이라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세 번째는 지난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 후다. 바이든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중산층 복원이지만 중국 견제를 위해 CPTPP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올 초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는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중국을 의식해 CPTPP에 결국 복귀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워싱턴 안팎의 분위기가 이렇다. 외교 전문가인 파리드 자카리아는 “중국을 억제하는 데는 새 잠수함보다 CPTPP에 복귀하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세 번의 오판 결과가 지금이다. CPTPP의 높은 개방 수준과 일본과의 FTA 효과가 두려웠다면 이는 국민을 속인 것이다. 일본과 경쟁해 이길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한 게 누구인가.

다행인 것은 일본이 중국의 가입을 쉽게 허용해줄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뒤틀린 한일 관계를 생각하면 한국의 가입 비용이 클 수밖에 없다. 지각생이라는 불이익도 있다.

정부는 뒤늦은 CPTPP 가입 이유부터 소상히 밝혀라. 이제 와서 CPTPP 참여 이유로 △공급망 △한미 FTA보다 높은 수준 △디지털 통상을 내세우는 것은 낯 뜨겁다. 통상교섭본부장도 해외 전문가들과의 온라인 간담회 같은 ‘쇼’보다 정책 실수에 대한 반성이 우선이다.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청사진도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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