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란 아역의 표본인 배우 이세영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백조처럼 평온해 보이지만 쉼 없이 발길질을 하고 있고, 이것이 지금의 이세영을 만들었다. 고민 끝에 만난 '옷소매 붉은 끝동'(이하 '옷소매')에서도 부단한 노력을 거듭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세영이 출연한 MBC 금토드라마 '옷소매'(극본 정해리/연출 정지인)는 자신이 선택한 삶을 지키고자 한 궁녀 덕임(이세영)과 사랑보다 나라가 우선이었던 제왕 이산(이준호)의 이야기다. 그는 궁녀로 생활하면서 스스로의 의지를 갖고 삶을 꾸려나자고자 한 덕임 역을 맡았다. 덕임은 왕의 사랑을 꾸준히 거절하다가 끝내 승은을 입고 후궁이 된다.
기존 사극에서는 왕이 궁녀를 사랑하면, 궁녀는 그대로 따른다. 거절의 의사는 비출 수 없었다. 궁녀의 주체적인 모습이 강조됐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뒀다. 이세영은 작품을 선택한 이유도 이런 신선함 때문이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이 궁녀를 상징하잖아요. 왕의 여인이라는 표식이에요. 이전 드라마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궁녀의 시점으로 궁녀의 마음을 궁금해하는 작품이어서 신선했어요. '왕은 궁녀를 사랑했지만, 궁녀도 왕을 사랑했을까'라는 고민을 표현한 작품이라 놀라워요. 궁녀의 실제 생활을 궁금해한 게 우리 드라마의 강점이었죠."
18살을 연기해야 됐던 이세영은 풋풋함을 보여주기 위해 증량까지 시도했다. 삼시세끼를 챙겨먹고 치즈케이크를 두 조각씩 먹었으며 마요네즈는 항시 구비해 김밥에 뿌려먹기도 했다. 집에 돌아가서는 야식을 먹고 바로 잤으나 촬영 스케줄로 인해 도로 살이 빠졌다고. 최대한 메이크업도 연하게 하면서 성숙해 보이는 지점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연기적인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덕임은 왕의 사랑을 무려 15년이나 거절한다. 이세영은 덕임이 왜 왕의 사랑을 거절했을까를 가장 크게 고민했고, 이를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는 게 숙제였다고 털어놨다.
"궁녀로서 느끼는 제한들, 포기해야 되는 것들이 더 잘 보일 수 있도록 노력했죠. 아무래도 신분 차이가 크다 보니 덕임이가 포기해야 될 게 크더라고요. 궁녀일 때는 그래도 휴가를 받거나 윗전들의 명을 받아 바깥에 나갈 수 있지만, 후궁이 되면 자유롭게 나가지도 못해요. 자유를 갈망했던 덕임이기에 이런 부분을 크게 강조하려고 했어요. 덕임이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갔기에 가진 게 많았다고 생각해요. 이런 덕임이를 보면서 저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세영은 덕임이 산을 거절하는 와중에도 연모하는 마음을 시청자들이 눈치챌 수 있도록 노력했다. 로맨스 사극이라는 장르적 특성도 고려한 것이다. '덕임은 산을 사랑했다'라고 스스로 정의내리고 후반부에 갈수록 감정이 더욱 드러나도록 방점을 찍었다.
"산을 연모한다는 마음이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잘 드러나기 때문에 초반에는 최대한 감추려고 했어요. 그런데 로맨스 사극이다 보니까 너무 늦게 감정이 보이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감독님과 상의를 많이 했죠. 초중반부에는 덕임이 산에 대해 남자로 호기심을 느끼고, 신하로 지켜드린다고 맹세하잖아요. 충도 연모라고 생각해요. 이런 감정을 기반으로 이후에는 조금씩 감정이 커지는 걸로 표현했어요."
이세영의 노력은 상대 배우인 이준호와의 케미를 만나 시너지를 만들었다. 서로 크게 말하지 않아도 이미 합이 좋았다고. 이세영은 현장 분위기를 위해 '텐션'을 극도로 올렸고, 덕분에 이준호와 빨리 친해져 의기투합 할 수 있었다.
"'우리집' 이준호가 인기 있는 이유는 남자로서 보여주는 매력이 크고 섹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산을 연기한 이준호는 진중하고 성실해요. 치명적인 부분도 물론 많이 나오고요. 이런 매력이 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같이 촬영하면서도 매력적인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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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일명 '궁녀즈'라고 부리는 배우 이민지, 하율리, 이은샘과의 케미, 서상궁 역의 장혜진, 중전 역의 장희진, 혜빈 홍씨 역의 강말금과도 호흡이 좋았다고. 두루두루 호흡이 좋은 만큼 현장 분위기도 명랑했다.
"실제로 저는 굉장히 무기력하고 조용해요. 특히 제가 여름에 약해요. 잘 못 버티는 스타일이라 의도적으로 에너지를 끈 면도 있어요. 마냥 힘들다고 쳐져 있을 순 없잖아요. 그래도 현장에서는 많은 분들이 계서서 더 힘을 받고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어요. 이런 모습이 활달한 덕임이랑도 더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응원도 현장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 한몫했어요. 다들 신이 나서 즐겁게 촬영했답니다."
"'궁녀즈'와는 촬영하면서 중간에 밥도 먹고 소모임도 만들었어요. 우리가 새로 경험하고 싶은 게 있는데 혼자 하면 못할 것 같은 게 있잖아요. 그래도 4명이면 창피하지 않으니까 수영이나 클라이밍을 배우려고요. 촬영할 때도 다들 정말 친하니까 웃음이 멈추지 않았어요. 장혜진 선배님은 극중 역할과 마찬가지로 자애로우세요. 현장에서 손을 잡아 주셨는데 마음이 따뜻해지더라고요. 후반부에는 말하지 않아도 눈물이 날 정도로 애정이 생겼죠. 실제로도 매력적이에요. 강말금 선배님도 저를 많이 아껴주시고 좋은 말씀만 해주셔서 든든했어요."
이세영은 '왕이 된 남자'부터 '옷소매'까지 연달아 성공시키면서 '사극 여신'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그는 좋은 대본이 있었고, 감독이 잘 이끌어줬으며 배우들의 합이 좋아서 좋은 반응을 얻은 것 같다고 자평했다. 사극 자체가 가진 매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사극은 색감이 아름답고 다채롭잖아요. 자연을 배경으로 궁궐들을 크게 잡으면 그렇게 아름덥더라고요. 여기에 한복이 주는 매력까지. 사극은 보는 즐거움이 커요. 또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죠. 로맨스는 물론, 정치, 여인들의 세력 등을 다룰 수 있어요. 우리 드라마에도 로맨스, 정치 등이 모두 나왔잖아요. 그래서 사랑을 받은 것 같아요."
모두의 노력이 합해진 덕에 '옷소매'는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최고 시청률 17.4%라는 성과를 냈다. 앞서 이세영은 '옷소매' 시청률이 15%를 넘으면 곡 '진또배기'에 맞춰 품바춤을 추겠다는 공약을 건 바 있다. "15%가 정말 넘을 줄 몰랐다"는 이세영은 덕임의 품위를 생각해 현실이행한 공약으로 바꾸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MBC 박성제 사장이 건 '전 배우, 스태프 여행 포상' 공약은 기대하고 있다고 미소를 보였다.
"'옷소매' 제작발표회 날이었는데, 사장님이 들어와서 인사하고 나가시더라고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사장님에게 '저희 15% 넘으면 여행갑니까?'라고 물어봤어요. 사장님이 '그렇다'고 답하시더라고요. 거기다가 대고 제가 또 '해외입니까?'라고 물어봤어요. 사장님이 이것 역시 동의하셨죠. 15%는 꿈의 시청률이라고 여겨서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도달하게 된 거예요. 코로나19 때문에 당장은 떠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기회가 생겨서 가게 되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잘 자란 아역의 표본인 이세영은 어엿한 주연 배우로 성장했다. 주연의 책임감을 늘 가슴에 품되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순수한 마음도 잃지 않았다. 늘 웰메이드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그 뒤에 있는 시청자들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믿고 보는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작품을 고르는 기준도 메시지가 중요했어요. 무언갈 이루기 위해 정확한 목표가 있고, 그걸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재밌었거든요. 주인공의 성격이 소극적이다가도 목표가 생기면서부터 결연해지고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에 매료됐죠. 시청자들도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옷소매'를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죠. 주인공의 마음에 좀 더 집중하게 된 것 같아요."
2021년을 '옷소매'로 행복하게 마무리하게 된 이세영. 그는 더 정진해 시청자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다짐했다. 현상 유지에 만족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기 위해 백조처럼 헤엄칠 거라고.
"새해에는 잘 먹고, 열심히 일하고, 잘 쉬는 게 목표예요. 기본적인 건데도 잘 지켜지지 않더라고요. 제가 멘탈이 약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밥도 잘 못 먹고 그래요. 이제는 건강하게 제 몸을 갈고 닦고, 체력을 기르려고요.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잖아요. 내가 온전해져야 배우로서 많은 걸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더 달라진,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조금씩 보여드릴 계획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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