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요란한 구호를 외치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정책을 폈다. 중국에 관세 폭탄을 퍼붓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전격 탈퇴했다. 그런 트럼프를 비판하며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실제 전임자의 여러 정책을 뒤집으면서도 ‘미국 우선주의’와 관련해서는 더 강력한 정책을 펴고 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인프라투자법,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MSP) 등의 ‘3종 세트’로 해외 기업 투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중국을 고립시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3B(Build Back Better·더 나은 재건) 정책’이 글로벌 기업 유치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선 7400억 달러 규모의 IRA로 글로벌 기업들의 미국 투자가 늘고 있다. 이 법은 미국에서 생산된 배터리, 핵심 광물을 사용한 전기차에만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주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청정에너지 산업에 세제 혜택 등을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볼보의 마르틴 룬스테트 최고경영자(CEO)는 이달 초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IRA로 미국에서 친환경 트럭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며 유럽이 미국의 IRA에 대응해 추가적인 조치를 내놓지 않는다면 미국 투자를 늘리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일본 파나소닉의 북미 배터리 부문 대표인 앨런 스완도 지난달 말 “양산을 준비 중인 기존 미국 공장 외에 추가 원통형 배터리 공장을 미국에 지을 수 있다”고 밝혔다. 파나소닉은 지난해 11월 캔자스주 더소토에 40억 달러를 들여 배터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는데 두 달 만에 추가 투자를 암시한 것이다.
이 외에 미 청정전력협회에 따르면 IRA 통과 이후 미국에서 클린테크 공장을 신규로 짓거나 증설하겠다고 발표한 건수가 최소 20건에 달하고 이 중 절반 이상이 해외 기업에 의한 것이었다. 지난해 10월 BMW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17억 달러 규모의 전기차 설비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했고 우리나라의 한화큐셀도 조지아주에 25억 달러 규모의 태양광 공장을 증설하기로 했다.
2021년 제정된 인프라법도 해외로 빠져나갔던 미국의 국부를 다시 불러오는 법이다. 이 법은 미국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기반시설 사업에 미국산 철강·플라스틱·유리·목재 등의 원자재를 사용하도록 했다. 최근에는 미국 내 전기차 충전기를 구축할 때 사업자가 총 75억 달러의 보조금을 받으려면 충전기의 최종 조립 및 외형의 제조를 미국에서 해야 한다고도 규정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현재 미국 인프라 건설에 필요한 자재의 대부분이 해외에서 조달되고 있어 인프라법이 현장에서 적용되기는 쉽지 않다”고 분위기를 전했지만 정부가 나서 미국산을 쓰라는 방향성을 제시한 것 자체만으로도 미국의 국부를 늘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미국 주도로 출범한 MSP도 미국 우선주의를 강화하는 대표적인 예다. 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호주·캐나다·프랑스·독일·일본·영국·이탈리아 등 13개 나라가 협력해 안정적인 광물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전기차 배터리 등 갈수록 핵심 광물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가운데 미국의 동맹과만 안정적인 공급망을 마련해 중국 등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정책이다.
미국의 이 같은 정책은 바이든 대통령이 내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미국 우선주의 전략으로 승리하겠다는 전략을 편 결과로 풀이된다. 법안을 승인하는 미국 의회 입장에서도 미국인에게 일자리가 돌아가는 이 같은 정책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게리 클라이드 허프바워 선임연구원은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의 여러 정책을 뒤집었지만 고율의 대중 관세를 유지하고 TPP에는 복귀하지 않으면서 IRA·인프라법을 추가로 도입했다”며 “트럼프보다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미국 우선주의 측면에서 더 강도 높은 정책을 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기업의 미국 투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내년 대선 전까지는 민주·공화당을 막론하고 표심을 의식해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미국 내에서는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가 오히려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허프바워 연구원은 “미국산만 쓰라는 정책으로 미국과 동맹국 간 마찰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프라 조달 시장에서 값싼 다른 나라의 자재를 배제하고 미국산만 고집해 사회 기반시설 건설에 더 많은 세금이 들어가 결국 미국인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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