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23일(이하 현지시간)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잭슨홀 미팅) 연설에서 “강한 노동시장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당면한 최대 리스크인 고용 시장 약화에 대해 좀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날 파월 의장의 기조연설은 인플레이션을 강조했던 지난 2년 간의 잭슨홀 미팅 연설과는 달랐다. 그는 “정책이 조정될 때가 왔다”며 앞으로 연내 세 차례의 통화 정책 회의에서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을 강하게 시사했다.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2%로 가는 지속 가능한 경로에 있다는 자신감이 커졌다”며 “인플레이션은 이제 우리의 목표에 훨씬 가까워졌다”고 평가했다.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에 대해 한층 여유를 찾은 모습이었다. 그는 2021년 인플레이션이 ‘일시적(transitroy)’라고 평가했다가 비판을 받았던 자신의 실수를 직접 꺼냈다. 그동안 ‘트랜지토리’라는 단어는 연준 내에서 일종의 금기어였지만 파월은 이날 연설에서 “당시 트랜지토리라는 좋은 배에는 당시 대부분의 주류 애널리스트와 선진 중앙은행가들이 탑승하고 있었다”며 “오늘 전직 탑승자들이 몇 명 보인다”고 농담하며 청중의 웃음을 이끌어 냈다. 그만큼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 자신감이 생겼다는 의미다.
파월 의장의 관심사는 이제 고용시장 등 침체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있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파월 의장은 “노동시장의 추가 냉각을 바라지도 환영하지도 않는다”고 언급하면서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과감한 ‘빅컷(0.5% 포인트 인하)’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음을 알렸다. 그는 이어 “물가 안정을 향한 추가 진전을 만들어 가는 동안 강한 노동 시장을 지지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이라며 연준이 앞으로 고용시장에 집중하면서 미국 경제의 연착륙을 조율하는 과제를 우선순위로 놓게 됐다는 점도 선명하게 드러냈다.
시장의 반응은 고무적이다. 낙관적인 전망은 시장이 보는 기준금리 확률에서 우선 드러났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가 50bp(베이시스포인트=0.01%) 인하할 확률은 22일 24.5%에서 34.5%로 크게 올랐다. 여전히 25bp 인하할 가능성이 65.5%로 높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올해 금리 인하 폭을 100bp로 관측하고 있다. 올해 남은 세 차례 회의 중 최소 한 차례의 ‘빅컷’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자산시장도 환호를 보냈다. 금리 인하에 대한 생각을 명확히 드러내면서도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는 걷어낸 파월 의장의 연설에 주식 등 자산시장은 상승하고 국채 시장은 안정을 찾는 분위기가 뚜렷했다. 실제 개장 직후 소폭 상승했던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파월 의장의 발언 직후 상승 폭을 키우며 장중 1% 이상 상승했다. 특히 잭슨홀 컨퍼런스 전날인 22일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로 1.7% 급락해 마감했던 나스닥 역시 이날 기조 연설이 끝난 직후 상승 폭을 1.75%까지 키우며 전날의 하락을 되돌렸다. 반면 전날 국채 매도 랠리로 74bp 올라 4%대로 마감했던 2년물 미 국채금리는 연설 직후 10bp 가량 급락해 3.91%까지 내려앉았다. 5년물·10년물 등도 랠리가 이어지며 4~6bp씩 하락하면서 안정을 찾았다.
파월 의장의 발언에 가장 크게 흔들린 자산은 달러다. 세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연설 직전 101.554에서 100.897까지 수직 낙하했다. 지금까지 경기 침체에 대한 불안으로 달러로 피신했던 투자자들이 제자리를 찾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인텔리전스의 수석 외환 전략가 오드리 차일드-프리먼은 “금리 인하가 확실해졌지만 인플레이션도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달러에 대한 부정적 내러티브를 주도하고 있다”고 짚었다. 블룸버그는 달러 약세에 따라 멕시코 페소, 브라질 헤알 등 신흥국 통화가 반사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만약 연준이 고용 붕괴 없이 물가를 잡는데 성공한다면 파월 의장은 40년 만에 가장 급격했던 금리 인상 이후 연착륙에 성공한 ‘역사적인 통화 정책가’라는 평가를 받을 전망이다. 역사적으로 연준이 금리를 인상한 후 침체를 피한 사례는 1995년 단 한 차례에 불과하다. TS롬바드의 이코노미스트 다리오 퍼킨스는 “(이 경우) 역사상 가장 훌륭한 순간이 될 것”이라며 “연준은 1970년대의 인플레이션을 막고 경제의 손실을 막은 완벽한 소프트랜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파월 의장도 연착륙 가능성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그는 “우리의 목표는 강력한 노동시장을 유지하면서 물가 안정을 회복하고, 실업률의 급격한 증가를 피하는 것이었다”며 “이 과제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 결과를 향해 많은 진전을 이루었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금리 인상으로 총 수요를 억제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촉발한 공급 분야의 혼란이 개선된 것이 이같은 진전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파월 의장이 금리 인하 폭에 대해서는 원론에 그치고 있어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자산운용사 브랜디와인의 매니저인 잭 맥킨타이어는 “파월은 확실히 비둘기파적 발언을 하고 있지만, 결국 연준은 데이터에 의존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스티븐 브라운 역시 향후 양적완화 규모와 속도에 대한 지침이 부족했다며 “오늘 발언은 앞으로 회의에서 25bp 인하가 이뤄질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감밖에는 말해준 게 없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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