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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너 간 밸류업에 기업활력 뚝…여야정 경제채널부터 열어야

탄핵정국 대혼란…첨단산업·경제정책 '올스톱'

野 예산삭감·탄핵정국에 지원정책 잇단 무산

반도체·AI 인프라 강화 등 물거품

최상목, 일주일새 회의만 26회

탄핵 블랙홀 탓 정책 추진 한계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탄핵 정국이 길어지고 내년 예산마저 4조 원 넘게 깎이면서 정부의 주요 경제정책 시행이 올스톱 될 위기에 빠졌다. 특히 1조 원 규모의 반도체, 인공지능(AI) 지원과 양자 및 차세대 원자로 연구 등이 막히면서 미래 먹거리 지원 사업이 끊길 처지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제 흐름이 바뀌고 있고 각국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통상정책을 짜고 있는 만큼 한국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12일 국회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673조 3000억 원 규모의 내년도 감액 예산안이 야당 주도로 통과되면서 정부가 추진해온 핵심 경제정책들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물론 정부는 경제 안정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정부는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산경장)에서 △전략 산업 공급망 안정 기본 계획 수립 △기업활력법을 활용한 석유화학 사업 재편 유도 △철강업 반덤핑 관세 부과와 같은 굵직한 현안을 논의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경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뜻을 재차 밝혔다. 그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긴급 현안 질의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경제 부처를 담당하는 장관으로서 우리나라 경제에 매우 심각한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강하게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며 “우리 국민과 정부가 같이 노력해 현재까지는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제한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같은 정부의 노력에도 탄핵 블랙홀 탓에 정책 추진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반도체·AI 등 첨단산업 지원에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는 지난달 반도체 인프라 시설에 재정을 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한 후 국회와 협의해왔다. 반도체 기업의 투자세액공제율을 5%포인트 상향하고 세액공제 대상에 연구개발(R&D) 장비 등 R&D 시설 투자를 포함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하지만 야당이 단독으로 감액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 방안은 무산됐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인프라 지원에 최소 6300억 원, 세액공제 확대로 기대했던 4조 원 규모의 세제혜택이 사라진 것으로 추산한다. 야당이 주도했던 AI 연구용 컴퓨팅 R&D 예산 3217억 원도 감액 예산안 통과로 무산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번 예산안에는 양자 등 미래 성장 동력 R&D 사업이 815억 원 감액된 것을 비롯해 △원전 생태계 금융 지원(500억 원) △차세대 원자로 R&D(63억 원) △소형모듈원전(SMR) 제작 지원(63억 원) 등 원전 르네상스를 위한 지원 예산도 대폭 삭감됐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반도체·AI는 향후 20~30년간 한국을 먹여 살릴 미래 핵심 분야”라며 “여야가 추경을 편성해서라도 이들 산업에 대한 인프라 투자와 R&D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속세 개편도 대표적이다. 당초 정부는 이번 세법 개정안을 통해 상속세 최고 세율을 50%에서 40%로 내리고 최대주주에 붙는 20% 할증 평가를 없애려고 했지만 야당의 반발로 무산됐다. 여야 모두에서 공감대가 있었던 상속세 공제 확대 안건도 보류됐다. 원래 정부는 자녀 공제를 5000만 원에서 5억 원으로 늘리는 안을,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일괄공제와 배우자공제를 확대하는 안을 추진했다. 지난달 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는 일괄·배우자공제를 늘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그 사이 비상계엄 사태로 국회 상황이 급속히 전개되면서 결국 내년도 세법 개정안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야당 관계자는 “상속세 공제 한도 상향은 물론이고 상속세 유산취득세 전환 논의도 당분간은 전개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특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상속세 개편을 통해 안정적인 기업 승계와 중산층의 세 부담 감소를 한번에 도모할 수 있었던 만큼 더욱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국세 수입 추계가 꼬이면서 3년 연속 세수 펑크가 발생할 가능성이 생겼다는 분석도 있다. 야당이 단독으로 정부의 세법 개정안을 수정하면서 기재부와 정부안 변경에 따른 세수 변화 효과를 면밀하게 논의하지 못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국회는 상속·증여세법 개정안 부결에 따라 국세 수입이 소폭 증가될 것이라는 예상을 무시하고 국세 수입 증가분과 감소분을 일괄 3조 803억 원으로 끼워 맞췄다. 소득·법인세법이 정부안대로 통과됐음에도 불구하고 내년 소득세는 정부안보다 총 1조 1894억 원, 법인세는 2469억 원 덜 걷힐 것이라고 기재해 국세 수입 증가분과 감소분을 똑같이 일치시키는 식이다.

반도체·인공지능(AI) 같은 첨단산업 지원도 꼬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말까지 국회와 정부가 가까스로 협의한 반도체 통합 투자세액공제율 5%포인트 상향과 같은 세제 지원책 논의도 당분간 이어지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의 단독 예산안 의결 과정에서 원전 사업이 대폭 삭감된 것도 우려할 부분으로 꼽힌다. 산업부 등에 따르면 민주당은 원전 관련 사업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으로 파악됐다. 구체적으로 원전 생태계 금융지원 예산은 1500억 원에서 1000억 원으로 줄어들어 3분의 2로 축소 삭감됐다. 이와 함께 소형 모듈 원전(SMR) 제작지원 센터 구축 예산도 원래 54억원에서 0억원으로 전액 삭감됐다. 이 뿐만 아니라 차세대 원자로 기술로 주목받는 소듐냉각고속로(SFR) 연구 개발 예산도 70억원에서 7억원으로 줄어 90% 삭감됐다. SFR은 원전계 미래 먹거리인 SMR의 일종으로 기존 대비 건설 비용이 5분의 1에 불과해 차세대 원전 기술로 주목받고 있어 사실상 전액 삭감에 따른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SFR 연구개발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던 홍서기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SFR은 20년 넘게 투자를 많이 해온 미래형 원전인데 최근 몇 년간 예산이 대폭 줄면서 인력 유지도 어려운 수준이 됐다”면서 “그마저도 이번에 예산이 거의 전액 삭감되면 그동안 쌓아온 기술과 지식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홍 교수는 “(SFR)이 오랜 시간 동안 핵연료를 교체하지 않고 운전할 수 있는 미래형 원전의 중요한 유형 중 하나인데 예산 7억 정도면 일을 그만두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고 우려했다.

이처럼 원전 예산이 줄줄이 삭감되면서 업계에서는 현 정부 들어서 겨우 살아나고 있는 원전 생태계가 또 다시 붕괴되지 않을까 우려가 큰 상황이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미국을 비롯한 경쟁국은 조만간 SMR 상용화도 한다는데 우리만 원전 산업 경쟁에서 뒤처질 것 같다”고 했다.

그 밖에 정부가 바이오 정책 컨트롤타워로 삼은 대통령 직속 국가바이오위원회는 출범도 못해보고 좌초될 위기다. 바이오위 공식 출범을 알리는 1차 회의가 무기한 연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의료 개혁 과제를 다루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도 의사 단체들의 참여 중단 선언으로 교착 상태에 빠졌다. 전문가들은 현재 국회 주도권을 쥔 야당이 탄핵 정국에만 집중하는 대신 경제 현안에 대해서는 정부와 대화 채널을 열어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야당은 서민 경기나 경기 침체 우려처럼 정치적 이견이 없는 사안에 한해서라도 정부와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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