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끓는 솥 안의 개구리처럼 눈앞의 현실을 깨닫지 못한 채 벼랑 끝으로 가고 있는 이 나라의 현실이 보였습니다. 12·3 비상계엄 선포는 나라가 망국적 위기 상황에 처해 있음을 (국민에게) 선언한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관 여러분,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최후 진술을 시작한 윤석열 대통령은 25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 심판 최후 진술에서 “비상계엄 선포 이후 84일이 제 삶에서 가장 힘든 날이었다”고 소회했다. 그러면서도 “12·3 비상계엄은 과거의 계엄과는 완전히 다르다. 무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계엄이 아니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회 탄핵소추위원인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12·3계엄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피청구인(윤 대통령)은 부정선거 망상에 빠져 다시 비상계엄을 할 수 있는 위험한 인물”이라며 신속한 파면을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최후 진술에서 ‘계엄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야당의 줄탄핵, 입법 폭주, 예산 폭거가 곧 ‘국헌 문란’이자 ‘국가 비상사태’였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간첩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체제 전복 활동으로 더욱 진화했지만 민주당 정권의 입법 강행으로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이 박탈됐고, 거대 야당은 국정원 대공수사권 박탈에 이어 국가보안법 폐지까지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려는 대통령을 ‘전쟁광’이라고 비난하고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일 합동 훈련을 ‘극단적 친일 행위’라고 매도했다”며 “1차 대통령 탄핵소추안에는 ‘북한·중국·러시아를 적대시한 것’이 탄핵 사유라고 명기됐다”고 비난했다.
이날 양측 대리인은 최종 변론에서도 12·3 비상계엄의 위헌성 등을 둘러싸고 마지막까지 날 선 공방을 벌였다. 윤 대통령 측 대리인인 김계리 변호사는 “반국가 세력의 사회 장악, 거대 야당의 ‘파시즘 행위’ 등으로 위기에 처한 국정 상황을 알리기 위해 대국민 호소를 위한 비상계엄 선포였다”고 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거듭 강조했다.
차기환 변호사는 “중국과 북한의 하이브리드전이 전개되고 있고 국회의 탄핵 남발로 행정부·사법부·헌법재판소가 마비됐고 국회의 입법 폭주와 무분별한 예산 삭감으로 정부가 정상 작동하기 어려운 ‘국가 비상사태’라고 대통령이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비상계엄은 화재 경보를 울려서라도 배를 구하고자 했던 선장의 충정”이라고 비유했다. 헌법 77조 1항은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계리 변호사는 “민주당은 지금까지 총 29차례의 탄핵을 발의했으나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인용도 없었다”며 “비상계엄 후 담화문을 찬찬히 읽어보고, 임신·출산·육아를 하느라 몰랐던 민주당의 패악과 일당독재, 파쇼 행위를 확인하고 이 사건 변호에 참여했다. 저는 계몽됐다”고도 했다. 도태우 변호사는 부정선거 의혹을 부각하며 “사법부와 입법부·행정부 어느 쪽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제대로 견제·감독하지 못해 자체적인 정화 능력이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가원수 지위인 대통령이 유일하게 선관위를 견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국회 측은 이날 대리인단 9명이 총공세에 나서 윤 대통령 측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대한민국 헌법 파괴 행위이자 민주공화국 전복 행위라는 것이 요지다.
국회 측은 12·3 비상계엄을 ‘군대를 도구로 삼은 내란’이라고 평가했다. 김선휴 변호사는 “5·18 내란 재판에서 전두환의 지시를 이행한 군인들도 모두 처벌받았다”면서 “위헌·위법한 행위의 최종 명령권자로서 이들을 내란의 도구로 동원한 피청구인에게 가장 무거운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광범 변호사는 “윤 대통령은 이미 내란 우두머리죄로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데, 파면을 면한다고 해서 처벌을 면할 수 있겠느냐. 다시 국정을 맡길 수 있겠느냐. 복귀해서 제2, 제3의 비상계엄을 선포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느냐”고 했다. 또 윤 대통령 측이 줄곧 주장해온 ‘부정선거론’을 겨냥해 “부정선거 의혹 규명, 선거 시스템 점검이 비상계엄 선포의 목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구차하다”고 꼬집었다.
자신을 향한 탄핵 심판과 수사가 ‘정치 공작’이라는 윤 대통령 주장에도 선을 그었다. 이광범 변호사는 “피청구인의 주장은 그날(지난해 12월 3일) 밤 일선 지휘관들에게 직접 내린 명령이나 우리가 지켜본 현장 상황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 측이 되레 극성 지지층에게 호소하고자 음모론을 펼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