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둔화하자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거론하며 금리 인하를 재차 요구했다. 연준 안팎에서는 관세에 따른 물가상승 우려가 여전해 한동안 금리 관망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시각이 강한 만큼 한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연준 압박은 지속될 전망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13일(현지 시간) 트루스소셜에 “인플레이션은 없고, 휘발유·에너지·식료품 그리고 사실상 다른 모든 것의 가격이 내려갔다”며 “연준은 유럽과 중국이 한 것처럼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직접 겨냥했다. 그는 “너무 늦는 파월(Too Late Powell)에게 뭐가 문제일까. 번영할 준비가 된 미국에 불공평한 거 아닌가”라고 꼬집은 뒤 “그냥 모든 것을 일어나게 놔두라. 아름다운 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4월 미국 CPI는 전년 대비 2.3% 올라 2021년 2월(1.7%)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문가 전망치(2.4%)도 밑돌았다. 전월보다는 0.2% 올라 전망에 부합했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는 전년 동월 대비 2.8%, 전월 대비 0.2% 각각 상승했다. 각각 전망치와 같거나 밑돌았다.
지난 달 금융시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에 대한 해고를 예고하고 고강도 상호 관세 정책을 발표하면서 미국 주식과 달러, 국채 동시에 투매되는 혼란이 발생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이같은 금융 분위기가 가라앉으면서 통화 정책에 대해 다시 발언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는 올 1월 109선에서 상호관세 발표 이후 98까지 떨어졌다가 현재 100대를 회복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이날 0.72% 상승한 5886.55를 기록하면서 올들어 상호관세 등으로 입은 손실을 모두 회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우디아라비아 연설에서 “시장 상승세가 어떻게 될지 (생각하면) 놀랍다”며 “증시는 훨씬 더 높이 오를 것”이라고 자신했다.
시장에서는 4월 CPI 둔화에도 불구하고 연준이 금리를 인하할 여건이 조정되지 않았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금리 선물시장에서는 현재 9월 전까지는 금리 인하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올해 금리 인하가 9월과 12월 두차례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9월 동결 확률도 CPI 발표전 20.5%에서 현재 27%대로 오히려 높아졌다. 프린시펄 애셋 매니지먼트의 수석 글로벌 전략가 시마 샤는 “4월 CPI 보고서는 관세 영향을 완전히 반영하지 못했으며 인플레이션 수치는 미중 무역 휴전 발표 등으로 인해 앞으로 더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플레이션 추세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 몇 달 동안은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연준의 통화정책 금리 동결이 장기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아드리아나 쿠글러 연준 이사는 미·중 관세 협의에도 여전히 미국의 실효관세율이 높다는 점을 지적하며 "인플레이션 상승과 성장률 둔화를 포함한 경제 여파가 계속된다는 것인 사실”이라고 금리 동결 기조를 지지했다.
월가에서도 물가 상승 우려가 여전하다. JP모건체이스의 이코노미스트 마이클 핸슨은 “관세로 인해 6월과 7월에 가격이 급등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연내 금리 인하가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즈호증권의 이코노미스트인 스티븐 리치우토는 “실업률이 3.8% 이하로 떨어지고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5%를 상회하지 않는 한 연준은 금리 인하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며 “반면, 한 두달 안에 실업률이 4.5%로 상승할 경우 인플레이션이 높더라도 인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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