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위부(국가보위성)는 소속 밝히고 그러는 거 없어. 뚝뚝 두드리고 나오라고, 탁 채워가지고…. 밤에 잡아가는 건 안전부(사회안전성)에서 안 그래요. 안전부는 당당하게 오라고 해서 가족들한테 밥 싸오라고 그러지. 보위부는 몰래 밤에 가져가니까 보위부라는 거 다 알지.” (2005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탈북한 북한 주민)
인권조사기록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은 지난 17일 발간한 '북한 강제실종범죄 조사기록과 책임 규명: 이행 점검과 권고사항'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강제실종 및 납치 사례와 문제점, 대응책 등을 지적했다. 강제실종·납치 범죄 피해자들은 △미송환 국군포로 △전시 민간인 납북자 △전후 민간인 납북자 △북송 교포 △일본인과 그 밖의 외국인 납북자 △중국, 러시아 등에서 실종 또는 북송된 난민과 탈북민 △정치범수용소(관리소) 수감자 △북한 내 신앙인과 '체제 전복자'로 지목된 사람들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자와 러시아 파병 군인 △외딴섬으로 보내진 장애인 등이다.
워킹그룹은 지난해에는 지난 2021년 1월부터 2024년 5월까지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62명을 심층면담, 66건의 강제실종 사건과 113명의 실종 과정을 분석해 공개한 바 있다. 113명 중 90명(79.6%)은 북한 내에서 체포된 후 실종됐으나, 중국·러시아 등 해외에서 체포되면서 실종된 사례(23명·20.4%)도 있었다.
실종자들을 처음 체포·연행한 기관은 북한 국가보위성, 중국 공안부, 북한 국경경비대, 북한군 보위국 등이었다. 이 중 보위성은 113명 중 92명(81.4%)의 실종을 관할한 기관으로 나타났다. 보위성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직속의 정보기관이다. 보위원들은 연행 사유를 밝히지도, 영장을 제시하지도 않고 피해자들을 연행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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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택을 찾아와 “뭣 좀 물어볼 게 있다”며 연행해간 후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다거나, 사무실에서 연행해 간 후 소식이 끊기는 등 체포·연행 단계에서부터 강제실종이 시작되는 경우가 흔하다. 2019년 양강도 혜산시에서 탈북한 북한 주민은 중국산 휴대전화를 사용해 연행된 후 “휴대전화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이를 믿지 않은 보위원들에 의해 구타당한 경험을 증언하기도 했다.
이러한 강제실종은 가족들을 산산이 흩뜨려놓기도 한다. 보고서는 “자녀가 미성년자인 경우 함께 끌려가기도 하고, 집안의 다른 보호자에게 보내지거나 양육할 사람이 딱히 없을 경우 고아원으로 보내지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정치범으로 체포된 이들의 배우자는 성별에 따라 연좌제가 적용되기도 한다. 보고서는 “대체로 아내가 정치범으로 체포되면 남편은 무조건 같이 끌려가며, 남편이 체포된 경우 아내에게 이혼 의사 여부를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며 “그러나 남편의 혐의가 무거운 경우에는 이러한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고 연좌제가 적용된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북한의 불투명한 법 제도가 강제실종 범죄를 가능하게 한다"며 "한국 정부는 북한 전체주의 체제가 지난 수십 년간 무엇을 범죄로 규정했고 처벌과 절차는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조사하고 기록될 수 있도록 형법과 형사소송법 등 북한의 과거 법령들을 공개자료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 "한국 정부가 입수한 북한 당국의 문서들을 대통령실의 지시 아래 전략적이고 과단성 있게 기밀 해제할 것"을 요청했다.
이 밖에도 중국에서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 국적 탈북민들에 관해 전면적인 수사를 위해 한국 정부가 경찰청·법무부·외교부·국가정보원을 포함하는 부처 간 태스크포스(TF)를 조직할 것, 해상 탈북으로 알려진 모든 사례의 익명화된 정보를 통일부 웹사이트에 공개할 것, 양자 정상회담에서 중국 내 탈북 난민과 탈북민에게 어떤 형태로든 법적 지위를 보장하는 외교적 합의를 논의할 것 등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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