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록 특파원의 뉴욕 포커스
트럼프와의 관세 전쟁은 장기전이다[김흥록 특파원의 뉴욕포커스]
사내칼럼
2025.02.16 17:44:45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직후 CNN은 트럼프의 가장 큰 정적은 민주당도, 중국도 아닌 미국 국채시장이라고 진단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바라보는 월가의 인식을 보여준 평가다.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을 잘못된 방식으로 추진하면 국채금리는 치솟기 마련이다.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이 새삼 주목 받는 이유다. 2022년 영국이 고물가에 시름하는 와중에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가 경기 부양책을 들고 나오자 채권 자경단이 시장을 들쑤셨다. 고금리의 맹폭에 시장이 휘청이며 금융 위기 그림자마저 드리우자 트러스 총리는 취임 한 달여 만에 퇴임했다. 트러스 총리의 몰락을 트럼프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물가를 자극할 수 있는 관세를 마구잡이로 남발하다가 실패한 대통령으로 전락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을 것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국채금리를 올리지 않기 위해 신경 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트럼프와 나는 기준금리가 아닌 장기금리를 보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대한 개입 욕구를 누르고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미국 내 에너지 생산을 강조하는 “드릴, 베이비, 드릴” 발언은 인플레이션 기대를 가라앉히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취임 이후 연일 쏟아내는 관세 발언도 실상은 예고를 위한 ‘포워드 가이던스’에 가깝다는 평가다. 미리 예고한 뒤 발표하고 실제 시행은 시차를 두는 패턴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취임과 동시에 10% 보편관세와 60% 대중 관세를 예고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각국으로부터 동시다발적 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있는 보편관세 대신 일대일 맞춤형 상호 관세를 내세우고 있다. 이 모든 행보에는 한 가지 목적이 담겨 있다. 절대로 시장을 놀래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최근 시장도 트럼프의 이러한 전략을 이해하는 분위기다. 취임 직전 4.8% 수준에 근접했던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현재 4.48%까지 내려왔다. 프리야 미스라 JP모건자산관리 매니저는 “투자자들은 시장이 밀릴 경우 대통령이 관세정책을 유동적으로 조정할 것이라는 이른바 ‘트럼프 풋’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효과를 확인한 트럼프는 앞으로 관세에 있어 지금과 같은 ‘명목적 강공, 실질적 신중’ 전략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관세 부과가 현실화한 현 시점부터는 물가지표 관리가 중점 점검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관세 영향에 따른 물가 상승세가 일시에 몰린다면 시장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2월 중국 관세는 부과하면서 멕시코와 캐나다 관세는 미뤘다. 물가 영향이 3~4월 지표에 몰리지 않도록 분산하려는 시도가 읽힌다. 이를 고려하면 4월 이후 예정된 각국 상호 관세도 무역적자 규모가 큰 상대국부터 순차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길고 험난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관세 카드를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인식을 같이한다. 관세를 협상 수단이자 무역적자 감소, 재정 수입 확대, 제조업 활성화 수단으로 보는 까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국가별 관세 외에도 철강·자동차·반도체 등 품목별 관세도 별도로 예고하고 있다. 외신들은 벌써 의약품 등 신규 품목 관세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다. 트럼프와의 관세 협상을 일시적 이벤트가 아닌 시장과 물가에 따라 속도와 강도가 조정되는 장기 협상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 어쩌면 4년 내내 새로운 이슈와 요구에 대응해야 할 수 있다. 불확실성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관점을 바꾸면 트럼프 임기 초반에 결정될 문제는 아닐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대통령 공백으로 한미 정상 간 만남이 기약 없이 미뤄지고는 있지만 우리 정부와 기업이 대응할 기회와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김광수의 中心잡기
의대 쏠림 막고 ‘한국판 딥시크’ 키우려면? [김광수특파원의 中心잡기]
경제·마켓
2025.02.09 17:06:10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杭).’ 중국 저장성의 성도인 항저우는 예로부터 빼어난 경치를 바탕으로 중국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지금은 첨단산업의 전진기지로 떠올라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인공지능(AI) 모델 딥시크를 포함해 유니트리·딥로보틱스·브레인코 등 일명 ‘6룡’이 이곳에서 중국의 미래 산업을 이끌고 있다. 항저우는 어떻게 첨단산업의 전진기지로 떠올랐으며 항저우 소재 대학을 나온 청년들이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어낸 비결은 뭘까. 최근에야 주목받고 있지만 항저우는 중국 내에서는 산학 연계를 토대로 가파르게 성장한 도시로 정평이 나 있다. 중국 최고 정보기술(IT) 기업 반열에 오른 알리바바를 중심으로 테크 기업들이 이끌고 저장대·저장이공대 등이 기술 인재를 키워내고 있다. 항저우는 2018년 발간된 ‘중국 스마트시티 백서’에서 중국 335개 도시 중에 인터넷과 사회 서비스 지수가 가장 높은 스마트시티로 꼽히기도 했다. 기자가 2019년 항저우 저장대로 해외 연수를 갔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당시만 해도 저장대의 인지도가 낮았던 터라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다. 중국을 대표하는 도시인 베이징이나 상하이가 아닌 왜 항저우냐는 이유에서다. 기자가 1년간 머물렀던 저장대 위취안 캠퍼스는 최근 주목받는 이공계 인재들이 공부하는 공대가 위치해 있다. 간혹 농구장에서 같이 땀을 흘렸던 중국인 학생 상당수는 청년 사업가로의 의욕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아침부터 교내 식당에서 책을 들고 한 손으로 밥을 먹는 그들로부터 “마윈처럼 훌륭한 기업가가 되겠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에도 저장대 기숙사는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대부분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수재 소리를 듣던 그들이 의대가 아닌 이공계를 선택한 배경에는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의사 대우가 신통치 않은 탓도 있다. 이공계를 나와 취업하면 연봉이 훨씬 높다. 또한 창업을 한 뒤 실패한다고 해도 두려움은 크지 않다. 사업에 실패하면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빚더미에 빠져 재기 불능에 빠진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우리나라와는 천양지차다. 텐센트·알리바바 같은 빅테크의 적극적인 투자를 받아 유니콘으로 성장한 스타트업도 수두룩하다. 알리바바로부터 연봉 1000만 위안(약 20억 원) 제안을 받은 딥시크의 ‘천재 소녀’ 뤄푸리처럼 인재에 대한 금전적 보상 역시 확실하다. 첨단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중국 당국의 계획에 따라 인재를 키우는 대학의 지원 역시 제2, 제3의 딥시크 출현을 기대하게 만든다. 중국 정부는 5년마다 5개년 계획을 세워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고 일관된 정책 지원에 나선다. 중국 전역에서 4000개 넘는 AI 기업들이 경쟁하며 성장하는 것은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덕이라는 진단이 나오는 배경이다. 눈에 띄는 점은 대학들이 인재 선발과 교육 과정의 자율권을 쥐고 글로벌 인재를 키워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평준화만 강조하는 교육 환경에서 인재 선발 자율권 요구조차 못하는 국내 대학 현실과는 대조적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5년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전 정부의 정책을 뒤집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미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자력 관련 학과에서 자퇴생이 쏟아지며 생태계 자체가 무너졌던 뼈아픈 경험이 있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나라 수재들이 왜 의대에만 쏠리냐고 이기적이라 손가락질만 할 수는 없다. 전 세계를 뒤흔든 ‘딥시크 쇼크’를 계기로 한국의 인재 육성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 할 때다.
윤민혁의 실리콘밸리View
대인 량원펑의 딥시크가 한국 AI에 준 기회[윤민혁의 실리콘밸리View]
사내칼럼
2025.02.02 17:50:05
‘소국이라 하기에는 땅이 넓고, 대국이라기에는 속이 좁아 중국’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한때 중국이 속까지 넓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중국의 대인 기질을 보여준 사례가 인공지능(AI)계를 뒤흔들고 있는 딥시크인 듯하다.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의 행보는 실로 글로벌 최고경영자(CEO)의 면모를 보여준다. “오픈AI는 신이 아니다. 그들이 반드시 최전선에 있을 필요는 없다. 딥시크는 기회를 틈타 이익을 얻는 게 아닌 기술 최전선에서 발전을 이끄는 데서 출발했다”는 말부터 포부가 다르다. 딥시크는 일단 저렴한 사용료로 주목받았다. 량 CEO는 가격을 낮춘 이유에 관해 “원칙은 폭리를 취하지 않고 약간의 이윤을 남기는 것”이라며 “모델 개발 비용이 감소하기도 했지만 모두가 보편적으로 AI 혜택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설계도를 공개하는 오픈소스 정책을 취한 데 대해서는 “상업적이라기보다는 문화적 행위인 오픈소스로 존경과 문화적 매력을 얻을 수 있다”며 “진정한 경쟁 우위는 혁신을 이끄는 조직과 문화이고 뛰어난 인재들은 타인이 자신의 혁신을 따르는 데서 큰 성취감을 얻는다”고 했다. 설계도를 독점하면서 얻는 일시적인 기술 우위 대신 혁신과 개방으로 인재를 취하겠다는 뜻이다. 특히 혁신에 대한 생각에서는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던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의 신경영 선언까지 떠오른다. 량 CEO는 “미국과 중국의 진정한 격차는 독창성과 모방의 차이다. 이것이 바뀌지 않는다면 중국은 항상 추종자에 머물 수밖에 없다”며 “미국이 딥시크에 놀란 것은 중국 기업이 혁신의 기여자로 게임에 동참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과거 중국 기업들은 타 기업의 기술혁신을 따라해 수익을 창출하는 데 집중하고 혁신을 등한시했지만 이는 당연한 도리가 아니다”라며 “이제 무임승차에 머물지 않고 기여하는 국가가 돼야 한다”고 일갈한다. 누군가는 딥시크가 오픈AI 최신 모델을 학습했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AI 생성 데이터를 학습하는 ‘증류’ 기법은 오픈AI와 구글을 비롯한 미국 기업들이 개발한 것이다. 이는 곧 그들도 암암리에 타 AI가 만들어낸 데이터를 학습 중임을 뜻한다. AI 개발사들이 데이터 무단 학습을 문제 삼는 것은 자가당착이기도 하다. 왜 AI 생성 데이터가 필요해졌을까. 그간 인터넷에서 무단 학습해온 데이터가 고갈된 탓이다. ‘룰’은 같았다. 딥시크가 제한된 자원 속 장인 정신에 가까운 최적화와 극한의 창의성으로 혁신을 이뤄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찬탄과 경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딥시크 쇼크의 진정한 의미는 ‘더 많은 AI 가속기가 승리를 보장한다’는 기존의 공식이 무너졌다는 데 있다. 쩐의 전쟁에서 밀리던 한국 AI 모델이 오픈AI·구글·메타 등 미국 빅테크를 따라잡을 수 있는 길이 제시된 것이다. 오픈소스 모델이 오픈AI를 비롯한 최선단 AI와 경쟁할 수 있음을 증명한 점도 인상적이다. 폐쇄형 생태계로 독자 노선을 걷던 네이버 등 국내 정보기술(IT) 대기업들은 전면적인 전략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한국만의 독자 개방형 AI 생태계가 세계 시장을 주도한다면 이상적이겠으나 실현이 힘들다면 우방인 미국의 메타가 주도하는 라마 생태계에 빠르게 올라타 한국만의 영역을 구축해야 한다. 이처럼 AI의 판이 흔들리는 것은 후발주자에게는 기회 요소다. 그간 한국은 AI 혁신 속 ‘을’이었다. 말실수인지는 모르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그래픽메모리(GDDR)를 만드는지 몰랐다”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발언은 한국 기업들이 수많은 ‘하청업체’ 중 하나일 뿐이라는 씁쓸한 진실을 확인하게 한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도 이번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아 TSMC와 같은 ‘슈퍼을’로 거듭날 준비를 해야 한다. AI 가속기에서 AI 추론 특화반도체(ASIC)로의 대세 전환까지 놓친다면 한국 반도체에는 이제 미래가 보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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