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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표지석] <68>남원부 관아터
사회 사회일반 2020.01.05 15:20:57남원부(南原府)는 삼국을 완전히 통일한 고려의 행정구역 명칭으로 남원부 관아 터는 전북 남원시 하정동 남원문화원 인근에 있다. ‘춘향전(春香傳)’의 무대로 잘 알려진 남원이 현재는 소도시에 불과하지만 신라 때는 소경이 설치되고 고려 때는 부가 설치됐을 만큼 매우 번창한 도시였다. 남원부는 조선 시대에는 도호부(都護府)로 개칭됐으며 남원도호부는 1군(순창)과 9현(용담·구례·임실·운봉·장수·무주·진안·곡성· -
[역사의 향기/표지석] <67>대정성지
사회 사회일반 2019.12.29 13:23:29‘대정성지(大靜城址)’는 조선 시대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제주도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읍성(邑城) 터다. 표지석은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추사기념관’ 인근에 있다. 태종 18년인 1418년 대정현감 유신(兪信)이 주도해 쌓은 이 읍성의 둘레는 약 1.5㎞, 높이 5.3m다. 보성리와 인성리·안성리에 걸쳐 세워졌으며 동문·서문·남문 3개의 성문이 있었고, 문 위에는 누각이 문 앞에는 돌하르방이 서 있었다. 10여곳 -
[역사의 향기/표지석] <66>추사유배지
사회 사회일반 2019.12.22 16:58:54‘추사유배지(秋史流配地)’는 추사 김정희(金正喜)가 누명을 쓰고 귀양살이를 했던 곳으로 표지석은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에 있다. 이곳에는 표지석과 함께 김정희의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는 ‘추사기념관’이 들어서 있으며 그가 제주에서 생활했던 생가 일부도 남아 있다. 시와 서예·그림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김정희는 55세 되던 해인 1840년(헌종 6년) 제주도로 유배돼 1848년(헌종 14년)까지 9년간 이곳 -
[역사의 향기/표지석] <65>한남서림 터
사회 사회일반 2019.12.15 10:57:30한남서림(翰南書林)은 일제강점기에 고서적을 취급하던 전문서점으로 터 표지석은 서울 종로구 관훈동 인사동길에 있다. 1910년 서적상 백두용이 문을 연 한남서림은 초창기에는 운영이 어렵지 않았으나 차츰 재정난을 겪게 됐다. 문화재 수집·보존에 관심이 많았던 간송 전형필은 살림이 어려워진 한남서림을 후원했고 1935년 백두용이 사망하자 이듬해 한남서림을 인수했다. 한남서림은 우리나라의 고서적을 비롯해 주요 문화재 -
[역사의 향기/표지석] <64>조지서(造紙署)터
사회 사회일반 2019.12.08 17:19:31조지서는 조선 시대에 종이 만드는 일을 관리·담당했던 기관으로서 터 표지석은 서울시 서대문구 지하철 3호선 홍제역 1번 출구 인근에 있다. 태종 15년인 1415년 ‘조지소(造紙所)’라는 명칭으로 설립됐고, 세조 12년인 1466년에 기관 이름이 ‘조지서’로 바뀌었다. 이곳에서는 궁중과 각 기관에서 문서 작성 시 필요한 종이를 제작·관리했다. 또 문서 종이뿐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만드는 책의 종이 역시 조지서가 만들고 -
[역사의 향기/표지석] <63>양천리의 유래
사회 사회일반 2019.12.01 10:39:27서울시 은평구 녹번동에 있는 서울혁신파크 앞에는 ‘양천리(兩千里)의 유래’라는 표지석이 있다. ‘양천리’는 녹번동의 옛 지명이며 이는 조선시대에 붙여진 이름으로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는 뜻을 지닌다. 당시 이 지역은 북쪽으로 의주(義州)까지, 남쪽으로 부산(釜山)까지 각각 1,000리라고 해 ‘양천리(양 방향으로 1,000리)’라고 불렸다. 최근 들어 은평구가 통일의 전진기지로 주목받는 게 구의 다양한 북진정책 -
[역사의 향기/표지석] <62>부민관 폭파 의거 터
사회 사회일반 2019.11.24 13:41:53부민관(府民館) 폭파 의거는 일제강점기 때 애국 청년들이 친일파들의 친일 연설 도중 연단을 폭파한 사건이다. 그 터 표지석은 서울시 중구 서울시의회 앞 화단에 있다.부민관은 1935년 지금의 서울시의회 자리에 세워졌던 경성부립극장으로, 당시에는 강당과 회의실 등을 갖춘 다목적의 최신 회관이었다.부민관 폭파 의거는 조문기·류만수·강윤국·우동학 등 항일투쟁 활동을 하던 청년들이 주도했다. 대한애국청년당을 결성한 -
[역사의 향기/표지석] <61>삼군부(三軍府)터
사회 사회일반 2019.11.17 11:02:06삼군부는 조선 시대에 중요한 군무(軍務)를 의논하던 관청으로 그 터 표지석은 서울 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너편에 있다. 삼군부는 고려 말 이성계가 병권(兵權) 장악을 위해 설치한 삼군총제부(三軍摠制府)가 전신이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집권 2년 차 때 삼군총제부의 이름을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로 바꿨다. 삼군부는 의흥삼군부의 약칭이다. 삼군부는 기존의 십위군(十衛軍)을 중·좌·우군의 -
[역사의 향기/표지석] <60>박인환 선생 집터
사회 사회일반 2019.11.10 17:31:38‘거리’ ‘지하실’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박인환(朴寅煥) 시인의 집터 표지석은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 빌딩 뒤편에 있다.1926년 출생한 그는 서울덕수공립소학교 졸업 후 경기공립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자퇴하고 한성학교를 거쳐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평양의학전문학교에 들어갔으나 학업을 중단하고 서울로 거쳐를 옮긴 뒤 ‘마리서사(茉莉書舍)’라는 서점을 운영했다. -
[역사의 향기/표지석] <59>나석주 의사 의거 기념터
사회 사회일반 2019.11.03 13:19:03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인 나석주(羅錫疇)는 의열단(義烈團)에서 활동했으며 1926년 12월 일본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에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일으켰다. 당시 나석주는 폭탄 투척 이후 일본 경찰과 총격을 벌이다 현장에서 자결했다. ‘나석주 의사 의거 기념터’ 표지석은 서울 중구 을지입구지하쇼핑센터 인근에 있으며 표지석 옆에는 나석주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황해도 재령군 출신인 나석주는 신흥무관 -
[역사의 향기/표지석] <58>3·1독립운동기념터 : 보신각 앞
사회 사회일반 2019.10.27 17:35:04서울 시내 여러 곳에 산재한 ‘3·1독립운동기념터’ 중 보신각 앞은 1919년 3·1독립만세시위의 중심지였다. 4·23국민대회 개최와 한성정부 수립 선포가 이곳에서 이뤄졌다. 표지석은 서울 종로구 관철동 보신각 앞에 있다. 서울 지역 3·1독립만세시위의 구심점이었던 보신각 앞은 제2의 독립선언서가 발표되기도 한 곳이다. 1919년 3월12일 보신각 앞에서는 문일평·김백원·차상진·조형균·김극선·명이항 등 기독교계 인사 -
[역사의 향기/표지석] <57>3·1독립운동기념터:세브란스병원
사회 사회일반 2019.10.20 10:00:38‘3·1독립운동기념터’는 서울시내에 여러 곳이 있다. 이 가운데 세브란스병원 자리는 1919년 3·1독립운동 거사를 위해 기독교 지도자들이 모였던 곳이다. 이 터의 표지석은 서울시 중구 서울역 건너편 연세세브란스빌딩 앞에 있다. 1919년 당시 이 자리에는 세브란스병원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濟衆院)이 구리개(현재 을리로)에서 서울역 건너편으로 확장·이전되면서 세브란스병원으로 이름이 -
[역사의 향기/표지석] <56>도화서(圖畵署)터
사회 사회일반 2019.10.13 17:41:09‘도화서’는 그림 그리는 일을 관장하던 조선시대의 관청이다. 현재 그 터 표지석은 서울 중구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4번 출구 옆에 자리하고 있다. 도화서는 왕실에서 필요로 하는 왕의 초상화와 행사에 필요한 병풍 등을 그려 공급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일반 백성이 이곳에 회화(繪畵) 작업을 의뢰하는 일은 없었다. 이처럼 도화서는 왕실 같은 특정 계층만을 위한 기관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차원에서 화가를 양 -
[역사의 향기/표지석] <55>한성부(漢城府)터
사회 사회일반 2019.10.06 17:30:29‘한성부(漢城府)’는 조선 수도(首都)의 행정구역과 수도를 관할하는 관청의 명칭 등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성부 관청의 터 표지석은 서울 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너편에 있다. 한성부 관청은 현재의 서울시청과 비슷한 업무를 하는 곳이었다. 주로 행정적인 업무가 많았지만 경제범죄를 처벌하는 등의 사범 기능도 있었다. 한성부 관할구역은 도성으로부터 10리(4km)로 했으며 관원으로는 현재 서울시장에 해당하 -
[역사의 향기/표지석] <54>사복시(司僕寺)터
사회 사회일반 2019.09.29 16:53:10‘사복시(司僕寺)’는 조선시대 임금의 가마와 말, 외양간, 목장 등을 관리하던 관청으로 터 표지석은 서울 종로구 종로구청어린이집 앞에 있다. 궁궐 안에는 사복시의 부속관아(附屬官衙)로서 내사복시(內司僕寺)가 있었다. 이에 사복시를 외사복시(外司僕寺)라고도 불렀다. 전국에는 사복시가 관할하는 목장이 여러 곳에 있었다. 이 목장들은 왕이 사냥할 때 필요한 말을 기르고 훈련하는 역할을 했다. 말은 명나라와의 외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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