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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판의 달콤한 유혹, 역대 '네거티브'전 그 속으로
정치 정치일반 2017.04.06 10:00:00역사상 최초의 현역 대통령 탄핵 결정. 지난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파면 선고가 이뤄지면서 3개월 넘게 계속되던 탄핵 정국이 끝났다. 국민들의 관심은 이제 오는 5월 9일 이뤄질 대선으로 향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공세,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 노골화하는 일본의 군국주의 바람 등의 대외 불안 요인. 저성장 국면에 들어간 가운데 저출산과 고령화, 가계 부채, 내수 부진 등의 내부 위험 요인. 이에 더해 탄핵 정국의 후폭풍으로 세대간·진영간의 갈등이 극에 달했는데도 위기 돌파의 정치 리더십은 잘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대 대통령은 인수위원회도 없이 임기를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좌표를 잃고 표류하고 있다는 비관론이 커지고 있는 이유다. 과거에도 이런 위기는 있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닥친 한국전쟁과 4·19혁명이 그랬다. 5·16 쿠데타와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신군부 쿠데타도 마찬가지였다. 위기를 겪으면서 후퇴할 때도 있었지만 결국 우리는 꿋꿋이 전진하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다. 그래서 준비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11명의 대통령을 살펴봤다. 역대 대선 과정에서 있었던 네거티브 전도 정리한다. 이를 바탕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을 국민과 함께 헤쳐갈 인물을 뽑게 될 다음 대선을 준비하고자 한다. 선거를 직접 지휘하는 전략가들은 네거티브 선거 운동을 중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긍정적인 메시지보다 부정적인 메시지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고, 부정적인 메시지를 더 정확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네거티브 선거는 정확하게 이 부분을 짚어내 효과적으로 상대편의 후보자를 공격한다. 치열한 공방이 오가는 선거판에서 네거티브는 정치인들에게 달콤한 유혹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역대 대한민국 역사에서도 네거티브 선거는 꾸준히 있었다. 4가지 네거티브 선거 사례를 꼽아봤다. ◇“노태우는 비(非) 보통사람” 13대 대선은 원색적인 비난이 두드러진 네거티브전이었다. 87년 6.29 선언을 발표한 뒤 치러진 이 선거는 오랜만의 직선제로 공방이 더욱 치열했다. 노태우 후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어 노 후보에 대한 김영삼(YS)과 김대중(DJ)의 견제는 상당했다. 또 단일화를 추진하다 실패한 뒤였기에 두 후보에게 있어 노태우의 당선은 많은 지지자를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노태우는 “보통사람”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유세를 시작했고, 두 후보는 비난을 시작했다. 군 출신으로 대중에게 상식적으로 “보통사람”이 아닌 이미지가 노 후보의 결정적 약점이었다. 민주당 김영삼, 평민당 김대중 후보는 노태우 후보에게 ‘4성 장군에 보안사령관을 지낸 비 보통 사람’, ‘선거 자금을 많이 쓰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비난을 가했다. 역으로 노태우 후보 측도 김영삼 후보에게 ‘비서 정치나 할 사람’, ‘용어도 제대로 구분 못하는 귀족 정치인’이라고 비난했다. 김대중 후보에겐 ‘과거가 위험한, 혼란만 가져올 인물’이라고 공격했다. 이들은 서로 정상적인 지지 호소와 함께 만화, 연설 등 각종 방법을 동원해 타 후보에 대한 비판을 노골화했다. 노 후보는 12.12 사건과 5.17조치, 6.29선언까지 정치 운영에 있어 군인 출신이란 점이 집중 공격 대상이었다. 김영삼·김대중 후보는 단일화 실패로 ‘약속을 안 지키고 대권에만 눈이 먼 어두운 대통령 병 환자’란 비판이 주를 이뤘다. 김영삼 김대중 후보의 상호 비방도 두드러졌다. 김영삼 후보 진영에서는 김대중 후보에게 “시간과 장소에 따라 말이 다른 못 믿을 사람”이라고 매도했다. 김대중 후보 진영도 김영삼 후보 진영에 “군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라고 맞받아쳤다. 비방은 주로 선전물, 지하 유인물 등에 나타났다. 각당 선거 관계자들도 선거전 중반이 넘어서면서부터 자제를 강조했지만 서로에 대한 원색적인 인신공격은 13대 대선 전반에 걸쳐 이뤄졌다. ◇1992년 14대 대선 직전 터진 ‘초원복집’ 사건 김영삼 당시 민자당 후보 캠프에 먹구름을 드리운 초유의 네거티브 사건. 국민당(정주영 후보 측)의 김동길 선거대책위원장이 92년 12월 15일 부산지역 기관장 7명이 같은 달 11일 오전 7시 부산 남구 대연동 초원복집에서 김영삼 민자당 후보의 당선을 위한 대책 회의를 가졌다고 폭로하고 이들의 대화 내용을 기록한 녹음 테이프를 터뜨렸다. 김 위원장은 당시 “이들 기관장들은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이 주재한 회의에서 지역 감정을 부추기고, 신문사 간부들을 매수하며, 상공회의소 등 민간단체들이 유세장 인원 동원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의견을 같이 한 뒤 이를 위해 적극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공개된 녹음 테이프에는 “잘못하면 혁명적 상황이 와서 전부 끌려가야 할 판”, “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어쩌니 하면 영도다리 빠져죽자. 당락을 불구하고 표가 적게 나오면 우리는 멸시받는다”, “하여튼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 등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이 이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최근 현대 수사하고 나서 많이 좋아졌어. 기가 많이 죽었는데 그대로 나왔으면 큰일 날 뻔 했어요. 지역 신문이 더 단결하면...”,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런데 원체 삐딱하니까. 숨어서 지금도 하고 있는데...”란 발언 내용도 공개했다. 당시 이 초원복집 사건은 14대 선거의 막판 변수가 됐지만 경상도 측에서 반대로 “우리가 남이가”라는 분위기가 거세지면서 보수 유권자들의 결집으로 이어졌다. 결국 선거는 정주영 후보 측의 ‘기획성 폭로’였다는 평가를 받으며 불법 도청에 대한 비난과 함께 김영삼 후보의 승리로 연결됐다. ◇2002년 ‘2차 병풍’ 사건 19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 두 차례에서 장남의 병역 기피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던 이회창 후보 사건. 이회창 후보의 두 아들이 체중 미달로 병역을 면제받은 것이 문제가 됐다. 97년 대선 때도 이 후보의 발목을 잡았던 아들 병역 기피 의혹은 또 한번의 결정타를 날렸다. 2002년 대선 6개월을 앞두고 전 군수사관인 김대업 씨와 민주당 설훈 의원이 또 다시 폭로 공세를 펼치며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이는 ‘2차 병풍’ 사건으로 이름 붙여졌다. 김대업 씨는 이 후보의 두 아들이 허위 진단서를 받아 병역 면제됐을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 후보의 부인 한인옥 씨가 장남 정연 씨의 병역 문제에 연루됐다고 폭로해 사건은 확대됐다. 검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청을 의뢰했고 녹취테이프는 ‘판독 불능’ 상태였다. 검찰은 음질이 양호하지 못해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밝혀낼 수 없었고 테이프는 증거 능력을 가질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결국 검찰은 대선 두달 전 수사를 마친 뒤 이 후보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김대업 씨는 2004년 2월 27일 수사관 자격 사칭과 명예훼손 혐의로 징역 1년 10월의 형을 받았지만 선거는 이미 끝난 뒤였다. 이회창 씨는 2002년 대선 당시를 회상하며 “저는 네거티브선거와 흑색선전의 직접 피해자이고 그 아픔은 지금도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라며 과거 의혹사건이 모두 100% 허위 날조된 것이었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2012년 이회창 후보의 기자회견 일부> 역사의 바퀴는 이미 굴러갔습니다. 다만 다시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번 선거에서 이런 타락선거로 대통령이 될 사람이 안 되고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더 이상 우리 정치가 네거티브 흑색선전에 좌우되지 않도록 현명한 판단을 내려 주십시오. 네거티브 흑색선전으로 더 이상 우리 정치가 후퇴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이제 대통령 선거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깨끗한 정치, 새 정치, 정치 혁신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문재인 후보는 어제 ‘어떤 음해를 해 오더라도 끝까지 네거티브를 하지 않고 정정당당 선거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문재인 후보가 직접 말한 이 같은 다짐이 진실되게 지켜지도록 노력해 주실 것을 문재인 후보측에 진심으로 촉구합니다. 민주정치에 대한 원칙과 신뢰가 쌓일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치매 걸린 대선주자’ 네거티브 캠페인을 수월하고 극복한 사례도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 당시 70대 초반의 상대적 고령이라는 이유로 상대측으로부터 ‘치매’에 걸렸다는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여당 소속 K의원은 1997년 11월 당원 필승결의대회에서 “국민회의 의원에게 직접 들었는데 김대중 총재가 회의 도중 ‘신기하 의원은 왜 안 보이나’라고 물었다. 괌에서 비행기 사고로 숨진 신 의원을 찾는 것으로 볼 때 김 총재의 정신이 예사롭지가 않다. 사고가 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김 총재를 대통령으로 뽑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TV토론에서 패널들에게 치매설을 거론하며 “내가 치매기가 있어서 신기하 의원을 여러 차례 찾았다는데 그런 일 없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치매기가 있는 모양”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다른 토론에서 “유세 현장에 내 앞에 있던 분이 ‘치매 걸렸다더니 멀쩡하네’라고 말했다고 청중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정수현·정순구기자 value@@sedaily.com 일러스트=구선아기자 -
[19대 대선 시리즈]① 11명의 대통령, 그 속의 사건과 인물들
정치 정치일반 2017.04.05 10:00:00역사상 최초의 현역 대통령 탄핵. 지난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파면 선고가 이뤄지면서 3개월 넘게 계속되던 탄핵 정국이 끝났다. 국민들의 관심은 이제 오는 5월 9일 이뤄질 대선으로 향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공세,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 노골화하는 일본의 군국주의 바람 등의 대외 불안 요인. 저성장 국면에 들어간 가운데 저출산과 고령화, 가계 부채, 내수 부진 등의 내부 위험 요인. 이에 더해 탄핵 정국의 후폭풍으로 세대간·진영간의 갈등이 극에 달했는데도 위기 돌파의 정치 리더십은 잘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대 대통령은 인수위원회도 없이 임기를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좌표를 잃고 표류하고 있다는 비관론이 커지고 있는 이유다. 과거에도 이런 위기는 있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닥친 한국전쟁과 4·19혁명이 그랬다. 5·16 쿠데타와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신군부 쿠데타도 마찬가지였다. 위기를 겪으면서 후퇴할 때도 있었지만 결국 우리는 꿋꿋이 전진하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다. 그래서 준비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11명의 대통령을 살펴봤다. 역대 대선 과정에서 있었던 네거티브 전도 정리한다. 이를 바탕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을 국민과 함께 헤쳐갈 인물을 뽑게 될 다음 대선을 준비하고자 한다.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부터 이제는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해방 당시 45달러에 불과했던 국민소득은 이제 3만 달러를 바라보고 있다. 70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11명의 대통령. 그 속의 사건과 인물들을 들여다봤다. ◇이승만 대통령(1~3대)-대한민국 헌법의 탄생...‘사사오입 개헌’으로 얼룩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은 1948년 7월 20일 대통령 선거로 당선됐다. 자유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하고 대한민국 헌법의 초석을 닦았다. 하지만 이후의 모습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친일파 청산을 하지 못한 것은 가장 큰 실착이었다. 사회 전반에 “친일을 하면 3대가 부자로 살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번져 나갔다. 6·25 전쟁 이후에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 부정한 방법들을 동원했다. 초대 대통령에 한해 연임 제한을 폐지했던 ‘사사오입 개헌’이 대표적이다. 1960년 3월 15일, 4번째 임기를 위한 대통령 선거에서 이 대통령은 100%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투표함 바꿔치기 등 각종 불법을 동원한 부정선거였다. 국민들은 반발했다. 피의 화요일이라 불리는 ‘4·19 혁명’이 전국에서 진행됐다. 이날 하루에만 186명의 사망자와 6,0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 1960년 4월 26일. 그는 국민들의 압박에 못 이겨 하야를 선언했다. ◇윤보선 대통령(4대)-장면 총리와의 동거 다음 정부는 대통령제에서 내각책임제로 권력 구조를 바꿨다. 1960년 8월 윤보선 민주당 최고위원이 4대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국정 운영의 실질적 권한을 가진 국무총리는 장면이 맡았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았다.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총리간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임기를 절반도 마치지 못했을 무렵, 대한민국은 또다시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파묻혔다. ◇박정희 대통령(5~9대)-눈부신 경제 성장, 뒤로 밀린 민주주의 1961년 5월 16일,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군인들이 민주 정부를 무너뜨렸다. 그 주역은 박정희 당시 소장. 내각책임제는 2년 여 만에 대통령제로 변경됐다. 쿠데타의 명분은 경제성장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화폐개혁을 단행해 음지에 있던 돈을 양지로 끌어올리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국민들은 생각보다 더 가난했다. 박 대통령은 눈을 외부로 돌렸다. 서독으로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해 그들의 임금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 1965년에는 한·일 협정을 체결, 국교 정상화와 식민지배 피해 보상의 명목으로 5억 달러의 유·무상 차관을 지원받았다. 끌어모은 자금을 바탕으로 한 경제 성장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눈부셨다.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했고, 1965년 105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불과 12년 후인 1977년 1,000달러를 넘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빠른 경제 성장이었다. 박 대통령은 경제 발전을 이유로 독재를 합리화했다. 특히 헌법을 뜯어 고치고 유신체제를 선언하며 대통령직을 이어가려 한 것은 국민의 반발을 불러왔다. 견고하던 유신체제를 무너뜨린 시발점은 ‘YH무역’ 여공들의 투쟁이었다. 1979년 8월 회사의 부당함에 항의하던 여공들은 당시 제1야당이던 신민당사에서 농성했지만, 경찰은 야당 당사로 직접 들어가 진압에 나섰다. YH 여공 사건은 같은 해 10월 ‘부마 민주 항쟁’으로 번져갔다. ‘독재 타도, 유신 철폐’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결국, 1979년 10월 26일, 유신은 종말을 맞는다.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권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최규하 대통령(10대)-눈 앞에서 가버린 봄 민주주의가 눈앞으로 다가온 듯했다. 1979년 12월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10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빠른 시일 내에 헌법을 개정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국민들이 그토록 바라던 봄이었다. ◇전두환 대통령(11~12대)-‘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 되살아난 독재의 공포 희망도 잠시. 군사 정권의 공포는 되살아났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과 노태우 등의 세력이 반란을 일으켜 군부를 장악했다. 국민들은 반발했다. 다음 해 5월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신군부는 사회 혼란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정부가 장악됐고, 국회의 기능은 정지됐다. 신군부의 폭력 앞에 시위도 잦아들었다. 광주의 학생들과 시민들은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5월 18일 계엄령을 철폐하고 민주 인사를 석방할 것을 주장하며 광주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신군부는 시위대와의 협상을 거부하고 무력으로 이들을 진압했다. 10일 동안 군인들에 의해 희생된 사망 또는 실종자만 224명이었다.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봄은 또다시 멀어졌다. 개헌을 통해 독재 체제를 다진 그는 이른바 ‘체육관 선거’를 통해 11대·12대 대통령 자리에 연이어 선출된다. 민주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열망은 더 이상의 독재를 용납하지 않았다.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 1987년 6월, 대학생 박종철이 고문을 받다 숨진 사건은 도화선이 됐다. 국민들은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학생부터 넥타이 부대(직장인), 자영업자, 농민, 노동자 할 것 없이 모두가 민주화를 외쳤다. 마침내 1987년 6월 29일, 전두환 정권은 헌법 개정과 민주 선거를 약속했다. ◇노태우 대통령(13대)-“나, 이 사람. 보통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 1987년 12월, 국민들은 처음으로 대통령을 직접 뽑을 기회를 얻었다. 피땀 흘려 얻어낸 성취였다. 야당은 YS(김영삼 대통령)와 DJ(김대중 대통령)가 “서로 대통령이 되겠다”며 이전투구를 벌이는 바람에 단일화를 이루지 못하고 선거에서 또다시 패배한다. 대신 ‘보통사람’이라는 프레임으로 선거에 나선 신군부 출신의 노태우가 13대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노태우 대통령의 경제 성적표는 전두환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괜찮은 편이었다. 저유가 등으로 대외 환경이 좋았던 덕분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진행된 ‘88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데 이어 소련과 중국 등 공산국가와의 수교를 시작했다. 범죄와의 전쟁으로 사회질서를 바로 세우는 한편 분당과 일산 등의 신도시를 지어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군사 정권의 주역이었던 그의 과거는 사라지지 않았다. 퇴임 이후인 1996년 전두환 대통령과 함께 재판을 받고 22년형을 선고 받는다. ◇김영삼 대통령(14대)-권위주의적 통치의 종말과 함께 찾아온 IMF 외환위기 1993년 2월, 국회의원에만 9번 당선됐던 김영삼이 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그가 ‘문민(文民)정부’를 출범하면서 32년 동안 이어진 권위주의적 통치는 종말을 고했다. 구시대의 잔재를 지우려는 개혁 정책들이 쏟아졌다. 또 다른 군사 쿠데타의 불씨를 끄기 위해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해체하고 고위 공직자의 재산 공개를 제도화했다. 실시 전날까지 극비리에 부쳤던 금융실명제는 우리나라 경제가 한결 투명해지는 계기가 됐다. 김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초 80%를 훌쩍 넘었다.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1997년 전 국민을 고통 속으로 빠뜨린 IMF 외환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많은 기업과 금융 기관들이 문을 닫았고, 직장인들은 직업을 잃었다. 김 대통령의 지지율은 6%까지 추락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평가를 들었던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신화가 종말을 고하는 사건이었다. ◇김대중 대통령(15대)-햇볕정책과 노벨평화상 외환위기가 찾아온 직후 취임한 김대중 15대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를 지향했다. 그의 인생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투쟁 그 자체였다. 대통령이 된 이후로는 햇볕정책이라 불리는 대북 정책으로 남북 관계 개선에 힘썼다. 2000년 6월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열었다. 그 해 12월에는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도 받았다. 외환위기를 빠르게 극복한 것 역시 큰 성과였다. 4~5년은 걸릴 것이라는 외부의 예상을 보기 좋게 깨고, 불과 1년 반 만인 1999년에 IMF의 관리체제에서 벗어났다. ‘정보통신(IT)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명성이 시작된 것도 이 시기였다. 그는 벤처 산업에 각종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햇볕 속에도 어둠은 있었다. 2000년대 초의 신용카드 대란이 대표적이다. 인위적인 경기 부양을 위해 신용카드 규제를 완화하면서 시작된 사태다. 마구잡이로 남발된 카드로 가계에 빚이 쌓여가며 400만명의 신용불량자가 발생했다. 그 결과 2002년 7.2%였던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다음 해 2.8%로 곤두박질쳤다. ‘홍삼 트리오’로 불렸던 김 대통령의 아들 삼 형제가 모두 비리에 휘말린 점도 국민의 정부의 어두운 모습이었다. ◇노무현 대통령(16대)-기득권과 싸우다 탄핵의 위기로 뒤를 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16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기득권과 싸우고 스스로 권위주의에서 탈피하려 했던 대통령이었다. 국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소통한 대통령이기도 했다. 그는 새 정부를 ‘참여정부’로 불러달라고 했다. 국민의 참여로 권위주의와 지역주의에서 벗어나고 부패 문화를 청산하겠다는 의지였다. 야심 차게 출발했지만 순탄치만은 않았다. 부동산 가격이 사상 최대 폭으로 치솟고 고성장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빈부 격차가 심화됐다. 특유의 직설적인 표현에 보수 세력이 반발하고 사회 갈등은 증폭됐다. 임기 시작 1년 만인 2004년에는 탄핵의 위기를 맞는다.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된 대통령의 발언이 문제였다. 탄핵안은 기각됐지만, 준비한 정책들을 밀어붙일 수 있는 적기를 놓치게 됐다. 임기 후 터진 친인척 비리는 ‘도덕성’을 강조하던 그에게 치명적이었다. 이 문제로 검찰 소환까지 당한 그는 심리적 고통을 이기지 못했고 2009년 5월 23일 사저 뒷산인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투신, 서거했다. ◇이명박 대통령(17대)-22조원 들인 녹조라떼 2008년 대한민국의 1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와 ‘국민 대통합’을 강조했다. 평사원에서 대기업의 경영인까지 승승장구했던 그를 국민들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시켰다. 경제를 살릴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747’ 공약으로 화답했다. 7% 경제성장과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이뤄내고 세계 7대 강국으로 우뚝 서겠다는 의지였다. 결과적으로 그의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녹색성장’을 목표로 추진했던 4대강 사업은 아직도 후유증이 크다. 22조원의 국민 세금을 투입했지만, ‘녹조라떼’로 불릴 정도로 수질이 악화된 강만 남았다. 자원외교도 ‘다른 나라가 버린 해외 쓰레기 사업’이나 사들인 전형적인 예산 낭비 사례였다. ◇박근혜 대통령(18대)-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제는 자연인으로 돌아간 박근혜 18대 대통령에게는 ‘역사상 최초’라는 타이틀이 여럿 붙는다. 대한민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자 아버지 박정희에 이어 딸 박근혜까지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서 최초의 부녀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박근혜 정부 4년은 ‘불통’의 시대였다. 국민들은 물론 소속 정당의 의원들조차 불통의 대상이었다. 유일하게 소통하던 이는 비선 실세인 최순실 씨였다. 민간인 신분인 최 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호위 하에 국정을 농단하며 마음껏 권력을 휘둘렀다. 결말은 최악이었다. 휘두른 권력은 흔적을 남겼고, 세상에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국회 청문회가 진행됐고, 특검이 출범했다. 92일 동안 특검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개입된 많은 이들을 구속하고 진실에 한 발자국씩 다가섰다. 그리고 찾아온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선고 당일. 헌재는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선고했다. ‘8:0’ 헌재 재판관들의 의견은 만장일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에 ‘첫 현직 대통령 탄핵’의 주인공이라는 오명을 남기게 됐다. /정순구·정수현기자 soon9@@sedaily.com 일러스트=구선아기자 -
[19대 대선, 다시 국가개조다] '휴먼 FTA' 하자더니...외국인 우수인력 유치 제자리
경제·금융 경제동향 2017.04.03 18:03:43한국은 고급 인력 유치 및 활용 부문에서도 아직 우물 안 개구리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4차 산업혁명 도래에 따른 경제 패러다임 변화에 발맞춰 영주권 요건 등을 대폭 완화해 고급 인재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국내 거주 외국인은 공식 통계에 잡힌 인원만 200만 명에 이른다. 법무부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은 지난 2000년 49만 명에서 지난해 205만 명으로 4배 이상 급증했다. 하지만 대부분 단순 노무직으로 전문직에 종사하는 인력은 손에 꼽을 정도인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 2월 현재 등록 외국인의 주요 자격별 현황을 보면 114만 명 가운데 비전문 취업 외국인이 26만4,000명으로 4분의1 수준인 23%에 이른다. 반면 기업투자(5,000명), 무역경영(5,000명), 상사주재(1,000명) 등으로 비중이 크게 낮다. 단순 방문을 통한 동거자(10만 여 명)를 제외하고 불법 체류자 등 비공식적인 숫자를 포함하면 비전문 취업 외국인의 비중은 더 높아진다. 이해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외국인 노동 시장은 단순기능 인력 중심”이라며 “선진국들처럼 전문인력 유입을 위한 제도 개선과 정책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실제 이민자의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은 물론 독일과 일본 등은 일찌감치 비자제도와 영주권 규제 완화를 통해 우수 외국인 인력 유치에 팔을 걷어붙였다. 독일은 고급인력의 경우 체류허가 단계를 건너뛰고 즉시 영주권을 받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 있다. 일본 정부 역시 올해 1월 해외 고급인력 유치를 위해 영주권 부여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이른바 해외 고급인재 그린카드제도다. 아베 신조 정부의 경기 부양책에 힘입어 고용지표가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인력난에 부딪히자 영주권 규제를 대폭 완화해 외국인 인재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 연구자와 기업 경영자 등이 1년 만에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제도를 3월부터 시행하는 것이 골자다. 재일 외국인이 영주권을 취득하려면 통상 10년 이상의 체류 기간이 필요하다. 2012년 고급 인재 점수 제도를 도입해 이를 5년으로 대폭 줄이더니 이번에는 1년 만에 가능하도록 했다. 한국도 이와 비슷한 정책을 2014년 12월 발표한 적이 있다. 외국인 전문 인력의 경우 1년만 체류해도 영주자격(F5)을 부여하고 전문직 취업비자(E1~E7)를 통합하는 취업비자 점수제를 도입하는 내용이었다. 소득 수준이나 투자 금액 등 일정 요건을 갖춘 외국인이나 석·박사에 재학 중인 유학생의 경우 부모의 동반 거주도 허용하기로 했다. 자유무역협정(FTA)에 빗대 ‘휴먼 FTA’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그러나 영주권을 1년으로 완화하는 제도는 결국 시행되지 않았다. 국내에서 학사 이상 취득한 외국인이 취업할 경우 전공이나 직종을 구분하지 않고 취업비자(E7)를 발급해주고 일부 요건을 완화하는 데 그쳤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름은 거창했지만 결과는 용두사미가 됐다”며 “부처 간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영주권을 완화했어도 세제지원 등 다른 메리트가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고급 외국인 인력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세종=김정곤기자 mckids@@sedaily.com -
[19대 대선, 다시 국가개조다] 말로만 "신시장 개척" 요란...對이란 투자 외제차 1대값도 안돼
경제·금융 정책 2017.04.03 18:03:37지난해 5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1962년 수교 이후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이란을 방문했다. 히잡(이슬람 전통 두건)을 쓰고 사상 최대인 263명의 경제사절단을 대동한 박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한국 기업·은행의 이란 진출 확대, 교역 규모 3배 확대 등에 합의했다. 서방의 대이란 경제 제재가 풀리며 저성장에 신음하는 우리 경제의 돌파구를 이란을 통해 만들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1년이 다 돼가는 지금, 성적표는 암울하다. 3일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우리 기업의 이란 투자 금액은 지난해 4만5,000달러(약 5,000만원)로 외제차 한 대 값도 안 됐다. 2015년 ‘0’원에서 늘기는 했지만 요란했던 선전에 비하면 초라했다. 이는 우리 기업들이 신시장 개척, 수출 이외의 해외 시장 진출에는 소극적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 전 대통령이 2015년부터 2년 연속 정상회담을 하고 중국을 제치고 세계 경제의 ‘엔진’으로 떠오른 인도 공략도 저조했다. 지난해 투자액은 3억 417만달러(약 3,402억원)로 전년보다 오히려 2.7% 감소했다. 인구가 10억 명이 넘어 ‘기회의 땅’이라 불리는 아프리카 역시 지난해 1억4,900만달러(약 1,667억원)를 투자해 전년과 비슷했고 2014년(3억1,900만달러)의 절반에 불과했다. 기업들은 신산업 진출 면에서도 ‘우물 안’에 갇혀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등에 따르면 빅데이터 기술 수준은 미국이 100점이라면 한국은 77.9점에 그쳤다. 일본(87.7점), 유럽연합(EU·88.9점)에 10점 이상 뒤졌다. 사물인터넷(IoT)은 80.9점, 인공지능(AI)은 70.5점이었다. 특히 AI는 중국(66.1점)과 약 4점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유니콘기업(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 수도 2월 현재 한국은 3개(쿠팡·옐로모바일·CJ게임즈)에 불과한 반면 미국은 99개, 중국은 42개에 달했다. 기업이 도전을 꺼리는 이유는 뭘까. 가장 재미있는 분석은 ‘재벌 3세’ 경영 체제로 진입하며 기업가 정신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중견기업의 한 상무는 “주요 기업 대부분이 창업주의 손자·손녀 세대가 경영권을 쥐면서 새로운 것을 개척하기보다 선대가 이룩해놓은 것을 지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새로운 사업을 안 해도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므로 도전을 꺼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도 문제다. 김보경 한국무역협회 연구원은 “최근 심야버스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콜버스’, 온라인 자동차 경매 ‘헤이딜러’ 등의 스타트업이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규제가 적용되며 위기를 겪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부의 아마추어적인 지원도 개선해야 할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한·이란 정상회담에서 건설 수주와 관련해 여러 양해각서(MOU)가 체결됐다고 발표됐는데 이후 중국에 상당부분을 빼앗긴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MOU 발표 이후 중국 기업들이 소식을 접하고 더 싼 가격에 사업을 제안해 가로채 갔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조용히 일을 진행하면 될 것을 정상회담 성과를 선전하기 위해 요란하게 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회는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동기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의 경영권 규제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편인데 국회에서는 상법 개정으로 이를 더욱 옥죄려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결국 빠른 의사결정을 막아 신시장·신산업 개척이 더뎌질 수밖에 없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새로운 산업이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는 계속해서 저성장 수렁으로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연구위원은 “기업이 신사업 진행에 앞서 정부에 법 해석을 의뢰하면 정부가 처음에는 ‘불법이 아니다’라며 허가하다가 기업이 만일에 대비해 공문을 요구하면 그때 가서 하지 말라고 돌변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지난 정부에서 규제 체계를 모든 것을 허용하되 일부 금지하는 것만 열거하는 ‘네거티브’로 바꾼다고 했지만 이렇다 할 변화가 보이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확실한 전환을 촉구했다. /세종=이태규·서민준기자 classic@@sedaily.com -
[19대 대선, 다시 국가개조다] 창업정책 '청년·숙련 투트랙'으로 가야
산업 기업 2017.03.30 17:30:56한 업종에서 오랜 시간 근무해 업무 노하우를 쌓은 숙련 창업자일수록 비숙련 창업자에 비해 생존율과 수익성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정부의 창업지원을 청년창업뿐 아니라 40대 이상 숙련창업으로 확대해 ‘청년·숙련창업 투트랙’으로 전환하는 정책 패러다임의 대변화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경기침체와 기업 구조조정으로 40~50대의 실직이 급증하고 있어 산업계 경험이 풍부한 중장년층을 기술창업으로 유도하는 숙련창업 드라이브가 시급한 상황이다. 현재 고용시장에서 퇴출된 중장년층은 치킨집으로 상징되는 자영업으로 몰렸다가 공급과잉으로 줄줄이 폐업한 뒤 빈곤층으로 전락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30일 IBK경제연구소가 창업기업 대표자 2,449명을 대상으로 생존율과 영업성과를 분석한 결과 해당 업종 경력 15년 이상 숙련 창업기업의 4년 후 생존율은 85.4%로 5년 이하 비숙련 창업기업의 77.1%보다 8.3%포인트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또 15년 이상 동종업종에서 일했던 창업자의 경우 기업의 매출액 증가율과 영업이익률(창업 3년 후)이 각각 5.1%, 6.2%로 5년 이하 창업기업보다 각각 2.1%포인트, 0.8%포인트 높았다. 연령대별로 매출증감 및 자산성장률 등의 창업성과가 통계로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함께 창업 실패 후 정부 지원을 받아 재도전에 나선 기업들의 생존율과 경영성과 역시 첫 창업기업 대비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경험이 많을수록 경영성과가 더 좋은 셈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창업정책은 지금까지 청년창업 활성화에 치중해 지난해 청년창업 전용예산은 492억원인 데 비해 시니어 전용예산은 49억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 청년창업은 5,000억원의 전용정책예산이 별도로 배정된 반면 시니어 전용 정책예산은 전무하다. 서경란 IBK경제연구소 중소기업팀장은 “일자리 창출과 성장률 제고를 위해서는 청년창업보다 숙련창업 유도가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라며 “창업정책 방향을 기존 청년·시니어 등 연령기준에서 현장경험과 전문성을 우위에 두는 창업정책의 패러다임 시프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박해욱·강광우기자 spooky@@sedaily.com -
[19대 대선, 다시 국가개조다]'쌈짓돈' 전락한 특수활동비, 사용 내역 낱낱이 공개해야
산업 기업 2017.03.26 17:16:42지난 2015년 5월 홍준표 경남지사는 2011년 의원으로 있을 때 받은 국회 대책비, 이른바 ‘특수활동비’를 아내에게 생활비로 줬다고 고백했다. 얼마 후 신계륜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특수활동비 일부를 아들 유학비로 쓴 적이 있다”며 “특수활동비는 개인적인 용도로 써도 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즉각 비난 여론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특수활동비도 엄연히 국민 세금에서 나오는 돈인데 개인 ‘쌈짓돈’으로 유용하는 게 말이 되냐는 비판이었다. 국회도 부랴부랴 “제도를 개선하겠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이때만 해도 금방 잘못된 관행이 고쳐질 줄 알았다. 하지만 약 2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별로 바뀐 게 없다. 무엇보다도 ‘특수활동비의 사용 내역 비공개’ 규정이 아직도 그대로 살아있다. 지난 19대 국회 때 사용 내역을 일반에 공개하자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흐지부지 폐지됐다. 홍 지사나 신 전 의원처럼 개인적으로 쓰는지 마는지 여전히 알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특수활동비 예산은 2015년 8,810억원에서 올해 8,890원으로 오히려 불어났다. 최근에 특수활동비 개혁은 다른 굵직한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잊혀진 상태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일부 예산이라도 우리나라 특수활동비처럼 공개가 전혀 안 되는 일은 없다”며 “지금 대선 이슈 때문에 정치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없어졌는데 하루빨리 공론화시켜 개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도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알 수가 없는 예산을 운용한다는 건 중진국·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라며 “세금을 투명하게 쓰자는 너무도 당연한 원칙이 무시되고 있으니 답답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특히 국민이 선거로 뽑은 국회의원의 경우 특수활동비 사용 내역을 대중에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수활동비는 국회에도 많이 들어가지만 전체 비중은 국가정보원·국방부·경찰청 등이 훨씬 많다. 올해 국가정보원과 국방부·경찰청의 특수활동비 예산은 각각 4,947억원, 1,814억원, 1,310억원으로 전체 90%에 이른다. 이들 세 기관은 국가·수사 보안상 은밀하게 수행해야 할 일에 특수활동비를 쓰는 경우가 많으므로 사용 내역 공개는 불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특수활동비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투명성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도진 조세재정연구원 국가회계재정통계센터 소장은 “국가 예산의 사용은 어떤 식으로든 공개해 감시가 이뤄져야 하는 게 원칙”이라며 “보안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최소한 국회의 별도 위원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등 방법으로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세종=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
'먼저 먹는게 임자' 새나간 보조금 지난해만 4,700억
산업 기업 2017.03.26 17:16:34서울경제신문이 지난 2016년 감사원 감사 결과를 전수조사한 결과 부정 적발된 보조금이 30건에 달했고 총 4,695억3,000만원의 누수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민간이나 지방자치단체 사업에 지원하는 국가보조금은 한 해 60조원에 달해 누수가 많은 대표적인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정부 역시 이를 막기 위해 제도 개선 노력을 해왔지만 아직도 누수가 여전한 것이다. 유형별로는 보조금 부당·과다 지급 사례가 2,927억5,00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사업 수행은 하지 않으면서 보조금을 타가거나 사업에 필요한 비용을 뻥튀기해 과다한 돈을 지원받는 식이다. 경상남도는 2013~2014년 수산업 종사자들의 경영을 지원하기 위한 종합지원센터를 짓겠다며 40억원의 보조금을 타갔다. 하지만 경상남도는 계획과 달리 민간법인인 A연합회에 지원센터 소유권을 주고 말았다. 연합회는 한발 더 나아가 센터를 주어진 목적대로 쓰지 않고 공간 대부분을 식당 등의 업체에 임대해줬다. 연합회는 임대 사업으로 매달 780만원의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정부의 어이없는 실수로 보조금을 낭비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공공공사 사업에서 기업에 사업비를 줄 때는 최초 발주금액이 아닌 실제 낙찰가격을 기준으로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국토교통부는 전국 ‘지방하천 정비 사업’의 사업비 지급 시 낙찰 차액을 빼지 않아 1,683억의 보조금을 과다 지급하는 결과를 낳았다. 경남 수산업경영인종합지원센터나 예술의전당 사례처럼 보조금을 원래 목적 외로 유용한 케이스도 746억원 규모로 적지 않았다. 보조금을 집행하고 남은 잔액을 반납하지 않는 경우는 532억8,000만원이었다. 감사원에서 적발된 건은 전체 보조금 부정의 극히 일부다. 보조금 부정은 검찰·경찰에 수시로 적발되며 국민권익위원회에도 매년 수백건의 부정 의심 신고가 들어온다. 기획재정부도 2014년 말부터 보조금 부정 수급에 5배의 징벌적 과징금 부과, 100억원 이상 보조 사업에 적격성 심사제도 도입 등의 제도를 개선했지만 효과는 미진하다. 다만 ‘국고 보조금 통합 관리망’이 오는 7월 본격 운영될 예정이어서 1조원 이상의 보조금 누수를 막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김정훈 조세재정연구원 부원장은 “보조금은 사람 몸으로 따지면 심장에서 먼 모세혈관에까지 뿌려지기 때문에 강력한 관리·감시망이 필요하다”며 “보조금 사용·집행 현황과 수급자 명단 등을 통합 관리하는 전산망 구축과 이후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간 협조를 통한 원활한 운영이 보조금 개혁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서민준·강광우 기자 morandol@@sedaily.com -
[19대 대선, 다시 국가개조다] 살수차처럼 뿌려대는 R&D예산...원천.실용.첨단이름으로 중복도
경제·금융 경제동향 2017.03.26 17:16:22“연구개발(R&D) 예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살수차처럼 ‘뿌려주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원천기술을 개발하려면 초기 투자비용이 어느 정도 들어가고 실패도 용인해야 하지만 일정 조건만 되면 돈을 주니까 너도나도 일단 돈부터 받고 보자는 식입니다.” 예산 당국의 한 관계자는 R&D 예산이 눈먼 돈으로 불리는 이유 중 하나는 정부의 공급자 중심의 예산배분 체계도 한몫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R&D 예산이 아직도 산업경제 시대의 추격형 양적 지원의 함정에 빠져 있다는 지적은 정부 내에서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과거 우리 경제의 고속 성장을 이끌어온 노동·자본 중심의 추격형 전략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이미 한계에 도달했는데 R&D 예산은 아직도 여기에 치중돼 있다는 얘기다. R&D 예산은 지난 2003년 6조5,000억원에서 2017년 3배 이상 19조5,000억원으로 늘었다. 정부와 민간을 합친 한국의 R&D 투자(2015년·OECD 기준) 규모는 65조9,594억원(583억달러)으로 더 비약적인 양적 성장을 이뤘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1위(4.23%), 규모로는 6위 수준이다. 하지만 내실은 기대만큼 성과가 좋지는 않다. 한국경제연구원이 R&D 투자를 많이 하는 50대 국가를 선정해 매출액 대비 투자율(투자 집약도)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은 3%로 미국(8.5%), 일본(5%), 독일(4.3%)에 비해 떨어진다. 이는 민간이 아닌 대학의 기초연구 경쟁력에서도 나타난다. 세계 3대 과학 저널인 네이처의 대학 기초연구 경쟁력 순위(2016년)에 따르면 서울대는 57위에서 68위로, KAIST는 83위에서 94위로 떨어졌다. R&D 예산의 연구주체별 비중(2014년 기준)을 보면 대학(23.2%)과 출연연구기관(27.5%)의 비중이 기업(20.7%)보다 높다. 아직도 대학과 출연연 중심으로 정부가 정한 상용화 연구에 매몰된 전형적인 추격형 R&D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대학과 출연연, 전형적인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민간 R&D 비중이 70%에 달하는데 정부 R&D의 개발연구 비중이 48.9%에 달해 민간과 중복 투자의 우려도 크다는 지적이다. 현실이 이러다 보니 정부는 4차 산업혁명 등 국가전략 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하기 어렵다. 산업·학교·연구원은 정부 과제 수주를 위한 무한 경쟁에 나서며 차별화된 R&D가 아닌 손쉬운 과제 따내기에 목을 매고 있다. 정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2015년 이후 두 차례의 R&D 혁신 방안까지 마련했다. 민간 수탁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 예산을 배분하는 프라운호퍼 방식을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제도적 기반은 어느 정도 마련됐지만 아직 현장까지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R&D 예산을 눈먼 돈으로 만드는 또 다른 고질적인 병은 부처 간 칸막이다. R&D 예산이 편성되는 과정을 보면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국가과학기술심의회에서 대부분 결정하는 구조다. 인건비·필수개발비 등을 제외한 70% 정도는 국과심에서 사실상 결정하고 기획재정부에 통보하면 미세 조정하는 방식이다. 예산 삭감도 어려울뿐더러 부처 간 중복 문제도 걸러내기 쉽지 않다. 실례로 스마트 카의 경우 미래부는 원천기술, 산업통상자원부는 실용기술이라는 명목으로 각각 예산을 타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R&D 예산의 전반적인 재수술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이왕재 나라살림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예산 당국은 편성의 문제보다 집행의 문제를 지적하는데 사실 기존의 관성과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재정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고려할 때 예산의 편성부터 심의·집행까지 전 부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역시 R&D 예산의 양을 늘리기보다는 효율화하는 쪽에 방점을 찍을 계획이다. 예산 당국의 한 관계자는 “국내 R&D 예산은 이미 성숙기에 진입했다”며 “더는 늘리기 어렵다는 게 정부의 판단” 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4차 산업혁명 등 다른 미래 성장동력에 예산을 더 투입하려면 기존 분야에서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세종=김정곤기자 mckids@@sedaily.com -
[19대 대선, 다시 국가개조다]245조 달하는 정책자금...허술한 지원구조에 '먼저 먹는 게 임자'
경제·금융 경제동향 2017.03.26 17:16:192005년 중소기업청 국감자료 때의 자료다. 2003년 이후 1년여간 211개 업체가 중소기업 자금을 4회 이상 중복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규모는 무려 5,055억4,700만원에 달했다. 정부는 실태 파악과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겠다면서 겨우 사태를 무마했다. 상황은 나아졌을까. 대구지검 특수부는 2015년에 국가연구개발사업 연구개발비 가운데 111억원가량을 빼돌려 회사 운영 경비 등으로 사용한 19명을 적발해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에는 공사비와 자본금을 부풀려 정책융자금 31억원을 대출받아 가로채고 회삿돈 16억7,000만여원을 빼돌린 회사 대표가 검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게 정부의 정책자금 유용인 셈이다. 이처럼 눈먼 돈, 새는 돈에 국가재정이 병들고 있다. 국가보조금(59조원)과 연구개발(R&D) 예산(20조원) 등은 이미 ‘먼저 먹는 놈이 임자, 못 먹은 놈은 바보’로 업계에는 알려져 있다. 심지어 기업과 금융을 살리기 위해 투입됐던 수십조의 공적자금(정책자금)도 때에 따라서는 눈먼 돈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국가 경제의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국 국민들에게서 거둔 혈세로 충당되는 탓이다. 정치가 경제 논리를 압도하는 현실에서 정부 재정의 누수 위험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국가재정이 한정된 상태에서 자원 배분이 왜곡되는 현상도 나타난다. 정책금융도 개중 하나다. 경쟁력 있는 기업들에 대한 일시적인 유동성 문제를 해결해 소기의 성과도 물론 내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정책금융이라는 산소 호흡기에 연명하는 좀비 기업이 넘쳐나지만 정치 논리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26일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올해 산업은행·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은 186조7,000억원의 정책금융을 공급한다. 이는 지난해보다 무려 8조원이 늘어난 규모다. 정책금융은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 164조1,000억원에서 2년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소폭 감소했지만 올해 다시 늘어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물론 정책금융 전체가 눈먼 돈은 아니다. 정부는 정책금융의 목표를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고 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하며 시장을 육성하는 데 두고 있다. 실제 정책금융이 주요 기간산업을 키우고 수출 및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등 고도 성장기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고 기업 구조조정에 긴급자금을 수혈하는 등 시장 안전판 역할도 해냈다. 하지만 관 주도의 정책금융은 정책 금융기관 간의 기능 중복과 민간의 영역을 침해하는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정책금융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재원의 효율적 배분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재원은 한정돼 있는데 1970~1980년대나 지금이나 자금 공급 방식의 기본 틀은 바뀌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여전히 눈먼 돈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지적이다. 정책금융은 주로 정부가 출연한 기금 등이 보증을 하고 은행권을 통해 공급한다. 정부가 보증하는 만큼 대출금리가 일반 은행권 대출보다 낮다. 하지만 서류 중심으로 이뤄지는 허술한 대출구조, 중복 지원 등이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게다가 대기업에 비해 약자인 중소기업은 경쟁력이 없어도 무조건 살려야 한다는 정치 논리는 수십 년째 중기 정책금융의 쏠림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정부가 중소기업의 금융권 대출에 보증해준 규모는 한국의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4.06%에 달했다. 금액으로는 56조원 규모다. 이는 그리스(9.24%), 일본(5.68%)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것이다. 이탈리아(0.80), 프랑스(0.37), 미국(0.14), 덴마크(0.01) 등은 1% 이하에 불과했다. 정부 보증 의존도가 거의 없다는 얘기다. 이러다 보니 정책효과는 기대만큼 나지 않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15년 현재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좀비 기업 수는 전체 기업의 15%에 달한다.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라는 얘기는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한다는 얘기다. 김준경 KDI 원장은 “정부의 정책금융 과잉지원이 신규 기업의 진입과 부실기업의 퇴출을 어렵게 하고 있다”며 “이는 결국 국가 재정을 갉아먹고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해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김정곤기자 mckids@@sedaily.com -
[19대 대선, 다시 국가개조다] '사업증액' 편법요구에도 '예산폭탄'
경제·금융 경제동향 2017.03.26 17:16:16쪽지예산도 ‘눈먼 돈’이라는 해묵은 관행 중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9월 부정청탁금지법의 시행 이후에는 사라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여야의 힘깨나 쓴다는 중진 의원들은 쪽지예산 대신 예산안 조정소위원회 증액요구 사업 등을 통해 해당 지역구에 수십~수백억원씩의 예산 폭탄을 안겼다. 정부도 공식적으로 청탁금지법으로 신고하겠다고 했지만 신고 건수는 ‘0’건 이었다. 지난해 10월 예산 당국인 기획재정부는 “국회 상임위원회나 예산결산 특별위원회를 통하지 않고 비공식·비공개로 예산을 요구하는 예산은 부정청탁으로 간주하고 2회 이상 반복하면 신고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러자 국회는 증액 요구 사업을 대폭 늘리는 방식으로 피해갔다. 올해 예산안의 증액 요구 사업은 4,000여건, 금액으로는 무려 40조원에 달한다. 올해 정부 예산안의 10%에 달하는 규모다. 지난 2016년 예산안의 증액 요구 사업이 3,000여건, 9조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우회 통로로 사용된 것이다. 증액 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쪽지예산을 없애겠다며 처음에는 예산안 조정소위원회를 공개했지만 여야 3당 간사로 구성된 증액 소위에 들어가자 심의를 비공개로 돌렸다. 정부 역시 증액 요구 사업을 모두 검토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임의 판단이 어려운 만큼 정책과 관련된 사업은 각 당의 요구액을 중심으로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결과는 국회의 뜻대로였다. 정부 예산안 대비 4,000억원가량 증액된 사회간접자본(S0C) 예산은 여야 유력 정치인들의 지역구로 배분됐다.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의 지역구인 순천에 있는 국가정원 관리와 보수공사는 각각 정부 편성 예산보다 5억원, 4억원 증액됐다. 순천 유·청소년 다목적 수영장 건립(15억원), 순천대 체육관 리모델링(6억2,600만원) 사업은 원안에 없던 항목이 신규로 편성됐다. 친박 핵심인 최경환 의원의 지역구 경북 경산을 지나는 대구선 복선 전철 사업은 당초 590억원에서 110억원이 증액돼 총 700억원이 배정됐다. 자기유도·공진형 무선전력 전송산업 기반구축사업 예산도 당초 20억원에서 10억원 추가로 편성됐다. 정진석(공주·부여·청양) 당시 원내대표의 지역구를 통과하는 보령~부여 국도 40호선 사업비는 정부 원안인 125억2,900만원보다 40억원 늘었다. 공주 지역도 공주박물관 수장고 건립을 위해 7억6,000만원이 신규 편성됐다. 야권도 지도부의 지역구를 중심으로 예산 증액이 이뤄졌다. 국민의당은 당시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의 지역구인 전남 목포 예산이 대폭 늘었다. 호남고속철도 광주~목포 구간 공사 예산은 정부 원안인 75억원의 8배가 넘는 655억원 늘어났다. 보성~목포 임성리 철도 건설 예산도 1,561억원이었던 원안에 650억원이 추가로 투입됐다. 이밖에 전남 해양수산과학원 목포지원청사 신축 비용으로 10억원이 신규 편성됐다. 홍기용 인천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지역구 예산 수요는 있는데 상임위나 예결위에서 충분히 논의가 되지 않기 때문에 쪽지예산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며 “예산심의 절차가 좀 더 투명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이뤄진다면 눈먼 돈도 줄이고 예산심의가 왜곡되는 현상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김정곤기자 mckids@@sedaily.com -
[19대 대선, 다시 국가개조다] "대한민국㈜ 대신 민간주도 혁신 유도를"
산업 기업 2017.03.22 16:23:12경제계가 대선주자들에게 전달할 제언문에서 특히 강조한 것은 시장경제와 기업 자율성이다. 새로 들어설 정부에 대해 정책 일관성을 주문하면서 정부주도형 성장공식인 ‘대한민국 주식회사’를 과감히 포기하고 민간 주도의 파괴적 혁신을 유도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상의 회장단은 22일 발표한 제언문에서 경제계와 새로 들어설 정부가 ‘2인3각’ 플레이를 통해 국가 경제를 변화시키자고 주문하면서 ‘공정사회·시장경제·미래번영’의 3대 틀과 9대 과제를 제시했다. 공정사회의 틀을 마련하기 위해 △경제주체 상호 간의 신뢰 회복 △기업 지배구조 개선 △고용 이중구조 해소 등의 과제를 건의했다. 특히 경영 관행의 선진화를 원하는 국민 요구에 따라 기업 지배구조를 꼭 바꾸되 해법은 시장에 맡겨달라고 요청했다. 지난해 말 도입된 스튜어드십코드에 따라 기업 스스로 투명성을 높이고 책임경영을 실천해 나갈 테니 상법개정 등을 통해 규제를 강화하지 말아달라는 호소다. 시장경제의 틀과 관련해서는 △정책의 일관성 유지 △혁신기반 재구축 △서비스산업 선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제계는 정부 역할 재정립을 강조하며 새 정부가 출범하는 5년마다 정책 방향이 바뀌지 않도록 인기가 없더라도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성장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정부 주도 성장 공식을 버리고 민간 주도의 파괴적 혁신을 유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대한상의 자문위원)는 “경제에 대한 안정성이 확보돼야 미래 예측 가능성도 높아져 기업들이 사업을 벌일 수 있다”며 “차기 정부는 일관적으로 정책을 펴 경제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언문은 ‘메이드 인 코리아 신화’가 저물고 있다고 지적하고 정부가 정해준 것만 하는 포지티브 방식의 연구개발(R&D) 시스템을 연구자가 아이템을 제시할 수 있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4차 산업혁명을 뒷받침할 인프라 투자와 신재생에너지 개발 등 지속가능 인프라를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미래 번영의 틀과 관련해서는 △성장-복지 선순환 △교육 혁신 △인구 충격에 대한 대응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성행경기자 sain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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