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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양정무 교수 "눈높이 먼저 맞춰 보세요...미술, 어렵지 않아요"

미술사에 문학·철학·과학까지

맛깔나게 풀어놓은 6권 시리즈

누적 독자 수만 20만명에 달해

나영석PD 예능프로그램 출연해

유명인도 아닌 근대화가 이쾌대

포털 실검 상위권 끌어올리기도

미술이 어렵다는 건 편견일 뿐

이미 우리들의 삶 구석구석에서

영감 주고 중심 잡아주는 존재

고리타분한 교과서식 접근 말고

"그거 봤어?" 드라마처럼 보자

TV·저술·강연 등으로 미술 대중화의 아이콘이 된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가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아이돌 스타도 아니고 유명 정치인도 아닌 근대화가 이쾌대(1913~1965)의 이름이 포털사이트에서 급상승 검색어로 상위권을 점령했다. tvN의 나영석 PD가 신개념 예능프로그램으로 기획한 ‘금요일 금요일 밤에’의 코너 ‘신기한 미술나라’가 초상화를 주제로 방송된 직후였다.

“엽기적인 얘기하나 해드릴까요? 영국의 마크 퀸이라는 작가가 자신의 피를 조금씩 뽑아 4.5ℓ를 모아서 자기 얼굴을 만들었어요. 생명의 유한을 나타낸다고 하죠. 아무래도 살아가면서 우리 삶은 점점 좁아지잖아요. 작가들은 그 영역을 조금씩 넓히려고 노력하는데 그로 인해 불편할 수도 있지만 참고 볼 필요가 있어요. 스스로 누구인가 정체성을 찾은 것은 20세기 한국작가들도 마찬가지예요. 1945년 작으로 추정하는 이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은 화가라는 자의식은 붓과 팔레트로, 한국인임을 푸른 도포로 드러내면서도 댄디한 중절모를 써 동서양 문화에 대한 고민을 보여줬어요.”

출연진은 ‘우와’ ‘완전 퓨전인데’ ‘이 분도 검색해봐야겠다’며 탄성을 터뜨렸고, 대중도 화가와 그 작품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대화를 이끈 이는 양정무(53·사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다. 프로그램 출연자가 “이런 작품을 누가 사겠냐”고 딴지를 걸면 “이런 걸 사야 ‘쿨’한 느낌을 갖는거다”라고 맞받아치는 입담꾼이요, “아이작 뉴턴이 전염병이 돌 때 고향으로 피신해 있는 동안 위대한 발견(미적분의 창시)을 했고, 페스트 때문에 꼼짝없이 지내던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재밌는 얘기 한가지씩 꺼내 들려주던 게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 된 것처럼 흑사병 시대는 중세 과학과 문학의 발전을 자극했다”고 술술 풀어놓는 지식자판기다. 방송을 통해 그림으로 보는 역사부터 위작이야기와 거리예술 등이 큰 호응을 얻으며 양 교수는 스타가 됐다.

이보다 앞서 지난 2016년 5월부터 순차적으로 출판 중인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사회평론 펴냄)’ 시리즈는 1권이 5만부 팔린 데 이어 최근 출간한 6권까지 누적 집계 20만여권이 독자들을 찾아갔다.

이쾌대가 1945년 무렵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 /서울경제DB


어렵고 재미없다고 여겨지는 순수미술을 대중 눈높이에 맞춰 유쾌하면서도 유익하게 풀어주는 양 교수를 최근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만났다.

“어렵다는 편견이 문제일 뿐 미술은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해요. 일부러 박물관·미술관에 찾아가야 만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 항상 우리 일상 속에, 심지어 셀피를 찍기 위해 화가들의 초상화를 찾아보거나 맘에 드는 이모티콘을 살펴보는 것도 크게 보면 미술에 대한 고민이니 이미 우리는 삶 속에서 미술을 즐기고 있는 것이죠. 미술은 삶을 풍부하게 해줍니다.”

양 교수 자신이 그랬다. 고향인 대전에서 서울로 이사 온 게 초등학교 5학년 봄이었다. 친구도 없고 도시도 낯설었던 소년에게는 다락방을 오르내리며 백과사전을 파고드는 게 낙이었다. 난생처음 본 동굴벽화와 고대 신전부터 각양각색의 명화들이 가슴을 파고들었고 머리에 새겨졌다. 좋아하던 것을 대학 전공으로 택해 고고·미술사학과에 진학했고 미술사학자가 됐으니 요즘 표현으로는 ‘덕업일치’ 한 ‘성덕’이다.

그가 말하는 미술사의 진정한 매력은 다층적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라는 열린 텍스트를 다룬다”는 점이다. 작품을 직접 만나러 가는 그 길, 답사의 즐거움을 대학 시절 깨달았고 영국 유학 때도 수업 대부분이 현장과 연계돼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영국은 경험주의 국가가 분명합니다. 자기 눈높이에서 대상을 보는 훈련이 잘돼 있고 모든 수업은 학생의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미술을 교양의 틀로 여기고, 작품은 실물로 보기보다는 활자로 접합니다. 요리나 연애를 책으로 배우는 것처럼요. 미술의 용어도, 표현도, 질문도 어려워집니다. 고대 그리스 조각을 보면 ‘왜 발가벗었을까’가 먼저 궁금하지 저게 어느 신이고 인체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는 나중의 생각거리죠. 우리가 알고 싶은 게 무엇인지부터 솔직하게 들여다봅시다.”

그는 미술의 대중화란 눈높이를 ‘낮추는’ 게 아니라 ‘맞추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미술품은 비싸고, 미술은 어려우며, 부자나 즐기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미술이 부(富)와 결합하기 시작한 르네상스 시대 미술사가 전공인 양 교수는 “신분제 사회에서는 혈통이 귀족을 만들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자본과 부를 기반으로 한 문화귀족이 계층을 구분한다”면서 “자신의 부를 천박하지 않게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포장술로 미술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고, ‘어려운 용어’를 써서 집단의 폐쇄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어 어렵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TV·저술·강연 등으로 미술 대중화의 아이콘이 된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 /이호재기자


미술과 더 친해지기 위해 “미술을 주제로 얘기하는 버릇”을 제안하는 그는 “미술을 교과서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드라마 얘기하듯 ‘그거 봤어?’로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이어 “여기서 미술에는 명화도 포함되지만, 길거리의 새롭고 신기한 건물이나 조형물, 간판이나 가로등도 눈여겨 소중하게 보면 이야깃거리가 생긴다”며 “서울 같은 도시는 기와집부터 초현대 건물, 철학과 역사성 다른 것들이 공존하는 곳이라 호기심을 갖고 탐구할 거리가 무궁무진하다”고 덧붙였다.

미술사를 포함한 역사의 미덕은 과거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14세기 유럽이 페스트로 많은 생명을 잃은 뒤 이룬 르네상스의 찬란함을 설명하는 그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힘들어하는 우리 사회에 건네는 조언은 의미심장하다.

“인류사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전염병은 어느 시대고 사람들을 힘겹게 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위기와 기회가 공존해요. 전염병으로 인한 경제악화는 물론 ‘격리’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면서 더 자극적으로 변하게 합니다. 더 자극적이고 화제성 있는 이야기를 찾고 감정의 진폭이 커지는 경향이 나타날 겁니다. 반면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면서 그간 막연히 기대하던 ‘온라인 시대’를 실험하듯 경험한다는 것은 새로운 기회입니다. 새 시대에 영감을 주는 것도 미술이고, 감정이 위태로워질 때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것 또한 예술입니다.”

인터뷰 내내 방글방글 미소를 잃지 않는 양 교수의 목소리에는 어느덧 힘이 실려 있다. “외환위기 때 미술계가 끝장날 듯했지만 위기 속에서 생겨난 대안공간이 새로운 활력을 이끌었습니다. 지금도 더 작고 민첩한 비영리 신생공간이 생겨나던데 이참에 미술계의 새로운 10년·20년을 열어갈 새 플랫폼이 열릴지 모릅니다. 다들 힘내자고요!”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He is…

△1967년 대전 △1986년 경동고 졸업 △1986년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1999년 런던대 UCL 박사 △200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2006년 존스홉킨스대 방문교수 △2007~2009년 한국미술사교육학회 학술위원 △2013~2015년 한국미술사교육학회 회장 △2015년~ 한국예술연구소 소장 <주요저서>△2011년 ‘상인과 미술’ △2013년 ‘그림값의 비밀’ △2016년~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1~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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