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저가 원두커피를 앞세워 매장을 크게 늘려왔던 이디야에 빨간불이 켜졌다. 커피전문점 시장이 프리미엄 커피와 초저가 커피로 양분되면서 이도저도 아닌 이디야의 정체성이 모호해지면서 샌드위치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위기 타개를 위해 해외 진출을 비롯한 조 단위 매출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보여주기에 급급한 무리수라는 비판은 물론 양적 팽창도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전국 1,800여개에 달하는 이디야의 점포당 매출은 지난해 2%가량 감소했다. 매년 폭발적으로 매장 수를 늘린 덕에 전체 매출은 늘었지만 경쟁력 척도인 점포 수익성은 하락세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이디야 관계자는 “커피전문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아예 비싸거나 아주 저렴한 브랜드를 선택하는 고객이 늘었다”며 실적 부진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디야의 2015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355억원, 163억원. 2012년 매출(420억원), 영업이익(30억원)과 비교하면 급성장세다. 하지만 지난해 초저가커피가 주류로 부상하면서 이디야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쥬시·커피에반하다·빽다방 등이 1,000원~1,500원 커피를 내놓고 단골손님을 야금야금 빼앗아 갔고, 급기야 편의점들이 500원짜리 원두커피까지 출시하며 판을 뒤흔들었다. 2,000~3,000원대 커피로 승부해온 이디야로서는 다른 커피전문점에 비해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커피 품질에 대한 불만도 고객 이탈을 부채질하는 요소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말 주요 커피전문점 7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소비자만족도 조사에서 이디야는 맛 부문에서 전년도에 이어 2회 연속 꼴찌로 추락했다. 가격 대비 최고 품질의 커피를 제공한다는 문창기 이디야 회장의 경영철칙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걱정스런 외부 시선을 의식해서였을까? 문 회장은 국면 타개용으로 국내 매장 확충과 해외 진출을 선언했지만 터무니없는 목표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문 회장은 지난달 말 이디야 창립 15주년 간담회에서 2020년까지 매장 3,000개와 가맹점을 포함한 전체 매출 1조원을 달성하겠다고 강조했다. 본사 매출로만 지금보다 4배 가량 많은 5,000억원을 거두고 해외에서도 1,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청사진이다.
하지만 지난해 이디야 전체 볼륨은 5,000억원(본사 매출 1,355억원 포함) 수준이다. 경기침체로 가성비 좋은 초저가커피에 소비자가 몰리고 있는 데다 국내 최다인 이디야 매장이 지금도 포화상태인 상황에서 5년 내에 두 배로 몸집을 불리기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 회장이 히든카드로 꺼내 든 해외 진출도 변수가 많다. 이디야는 2005년 중국시장에 야심차게 뛰어들었지만 3년 만에 철수하며 쓴맛을 봤다. 지난해에도 동남아 공략을 위해 태국 진출을 준비했지만 막판에 백지화했다. 국내에서 약화된 브랜드 이미지로는 아무리 가격 경쟁력을 내세우더라도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냉정한 진단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500원짜리 아메리카노가 등장하면서 이디야의 최대 무기인 ‘가성비’가 위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가격에서 승산이 없고 브랜드 정체성이 모호해졌다면 매장 고급화와 고품질 커피로 승부해야 하는데 지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이지윤기자 lu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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