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취임 20주년을 맞은 이웅열(사진) 코오롱그룹 회장이 신형 아라미드 섬유 등 첨단소재·바이오의약품을 적극 개발해 코오롱을 세계 굴지의 화학·바이오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기 위해 해외 경쟁사들과의 협력을 전방위로 확대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이 회장은 28일 ‘제16회 우정선행상 시상식’이 열린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단독으로 만나 “기존에 만들던 아라미드 섬유를 한층 향상시킨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며 “몇 가지 기술적 난관만 극복하면 시장에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그러면서 “신제품이 완성되면 아라미드 생산기지를 증설하는 방안도 본격적으로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라미드 섬유는 5㎜ 정도 굵기의 가느다란 실이지만 2톤짜리 자동차를 들어 올릴 정도로 강도가 높다. 불에 타거나 녹지도 않으며 500℃가 넘어야 탄화한다.
이 회장은 아라미드뿐 아니라 코오롱의 주요 계열사들이 추진하는 각종 신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세계적 화학·의료 기업들과 협업하겠다는 의지도 나타냈다.
그는 “세계 제일의 기술력을 갖추기 위해 어떤 글로벌 기업과도 손을 잡을 것”이라며 “코오롱의 기술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경쟁사라도 흔쾌히 동지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바스프나 듀폰 등 세계 일류 소재기술 역량을 보유한 기업과의 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이다. 기술협력에 다소 보수적인 화학 업계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발언이다. 이미 계열사인 코오롱플라스틱은 바스프와 함께 고부가 엔지니어링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옥시메틸렌(POM)을 만드는 합작사 ‘코오롱바스프이노폼’의 첫 삽을 27일 떴다.
지난 1996년 취임 이후 올해로 21년째(20주년) 코오롱을 이끄는 이 회장은 첨단 신소재와 바이오 신약 같은 다양한 신사업 육성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17~18일 이틀에 걸쳐 국내 5개 사업장을 돌며 제조 현황을 들여다보고 스마트팩토리 도입 등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혁신을 주문했다. 그가 이틀간 움직인 거리는 1,300㎞에 이른다.
이런 가운데 신사업들이 성장궤도에 오를 조짐을 보이면서 이 회장의 자신감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코오롱은 지난해 아라미드 섬유의 기술특허와 관련해 미국 듀폰과 벌인 6년간의 법적 분쟁을 매듭지으며 아라미드 섬유 수출길을 열었다.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아라미드 브랜드인 ‘헤라크론’이 특허를 위반했다고 소송을 제기한 듀폰에 벌금과 합의금을 합쳐 3억6,000만달러(약 4,099억원)를 물고 분쟁을 마무리하기로 지난해 합의한 것.
현재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연산 5,000톤 규모의 아라미드 섬유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다. 주문이 밀려들면서 공장은 완전 가동되고 있다. 증설에 대비해 아라미드를 연간 3,000톤 규모로 만들 수 있는 부지도 추가 확보해 둔 상태다. 이 회장이 밝힌 대로 신형 아라미드 개발이 완료되면 공장 증설도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이 회장은 “아라미드 섬유 사업이 올해 본격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면서 “다만 연간 실적이 얼마나 나올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밖에 코오롱플라스틱은 바스프와의 합작으로 세계 최대 단일 POM생산단지(연산 15만톤) 건설을 시작하며 고부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부문에서 시장 지배력을 키우고 있다.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은 강철과 같은 강도를 지녔으면서도 훨씬 가벼워 경량화가 화두인 미래 차량용 소재로 각광 받고 있다. 또 코오롱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차세대 경량화 신소재로 주목되는 열가소성 탄소섬유 복합소재 ‘컴포지트’를 올해 안에 양산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신소재뿐 아니라 바이오신약 분야에서도 코오롱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퇴행성관절염 세포유전자 치료제인 ‘인보사’에 대해 이르면 올해 말 국내판매 허가를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글로벌 임상 2상 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친 인보사는 올 들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 3상 승인을 받아 본격적인 3상 준비에 들어갔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인보사 생산공장 신축을 위해 지난달 말께 1,300억원의 유상증자를 결정한 상태다.
물론 이 회장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대내외 경영여건에 대해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2012년 10조원이 넘었던 코오롱그룹의 연 매출액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계속 9조원대에 머물고 있다. 세계 경기가 침체되고 중국 등 경쟁국이 저가 공세를 펼치는 상황에서 차별화된 고부가 신제품 개발이 절실한 형편이다.
이 회장이 이날 밝힌 환갑을 맞은 소회에서도 그룹의 신성장동력을 키워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묻어났다.
이달 18일 60세 생일이었던 이 회장은 “요즘은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내 남은 인생의 첫날이라고 생각한다”며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경영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코오롱그룹 산하 오운문화재단은 제16회 우정선행상 시상식을 열어 앞장서 타인을 위한 선행을 베푼 시민들을 선정하고 상금을 지급했다. 올해는 장애인 치과의료 기본권 보장에 앞장서온 치과의사 이긍호(대상)씨, 20년 넘게 말기암환자들이 인간답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해온 손정자(본상)씨와 선천성 왜소증으로 키가 102㎝에 불과하지만 종이컵을 수거해 장학금 기부를 실천하고 있는 이금자(본상)씨 등 6명이 상을 받았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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